『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어떤 소설은 읽을수록 생생한 감각이 살아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프다, 춥다, 피부를 통해 전해오는 이런 감각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과하는 내내 느껴진 감각과 이미지는 책을 덮고 난 뒤에도 흩어지지 않고 강하게 응축되었다.
소설 속에는 목공일을 하다가 손가락 마디가 잘린 인선이 등장한다. 내 손바닥에도 바늘로 찌를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도의 어느 밤, 눈 속을 헤매다 냉골 바닥에 몸을 뉘인 경하 때문에 내 몸이 얼어 죽지 않을까 착각했다. 아픔과 추위. 결국은 고통이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전하려 했던 것도 70여 년 전 제주의 고통이다.
빨갱이를 소탕하겠다고 미군정과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자행되었던 민간인 대학살의 참극, 그중에서도 제주의 이야기를 한강만의 깊고 시린 문체로 만나면서 나는 생각했다. 작별하지 말고 어떡해야 할지.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살다 보면 희미해질 날이 오겠지. 민족의 슬픔 따위야 던져두고 나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날이 더 많겠지. 우리는 인위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틈틈이 되새길 수 있도록. 그것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이고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최선일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손에 들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린 한강의 최근작이다. 실제와 환영의 뒤섞인 덕에 한바탕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실제 벌어졌던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