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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Jun 10. 2024

좋아하는 작가의 책장을 훔쳐 읽는 기쁨

『읽는 기쁨』-  편성준

홀딱 벗은 알몸보다는 얇은 천으로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를 가린 사진이 더 야하다. 가린 걸 들췄을 때 뭐가 나올지 상상하는 게 애간장을 녹이기 때문이다. 『읽는 기쁨』을 쓴 편성준 작가는 그걸 (애간장 녹이는 걸) 참 잘한다. 단, 그가 벗기는 것은 몸이 아니라 책.


작가는 직접 읽고 난 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문학작품 중 51권을 골라 『읽는 기쁨』에 담았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스포일러는 쏙 빼고 매력 포인트만 아슬아슬하게 소개한 덕분에 마지막 장을 덮고 났더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들더라. 당장 51권의 책을 읽어 홀딱 벗기고 싶다! 이미 읽은 책조차 또 펼치고 싶다! 


유쾌한 글솜씨가 밑바탕에 깔리고 그 위에 책과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예술을 접하며 쌓은 깊이 있는 안목이 얹어져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나는 편성준 작가의 팬이다. 그의 글이 좋다. 그래서 작가가 진행하는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하여 나의 글쓰기 랜선 스승님으로 모시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 스승님이 올리는 독후감은 유심히 읽는 편이다. 읽고 좋은 책만 소개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혼비를, 요조를, 백수린과 권여선을, 김멜라 등의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 딸이 시험을 봤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가서 치르는 시험이었다. 그때 이 책을 들고 갔다. 더블린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방과 카페에서 딸을 기다리는 동안 『읽는 기쁨』을 읽으며 '읽는' '기쁨'에 제대로 빠졌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책을 들고 와준 남편 땡큐!)  


아일랜드 더블린 카페에서 읽는 기쁨에 빠지다


맘에 드는 구절에 힘껏 밑줄을 그었다. 51권을 한꺼번에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먼저 읽어볼 책 옆에는 조그맣게 별표도 그렸다. 휴대폰으로 재빨리 검색했다. 이북으로 출간되지 않은 책이 많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황정은의 『일기』를 구매하여 바로 읽었다. 황정은이 진행하는 책 소개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어 오래전부터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미루다 미루다 『읽는 기쁨』덕분에 읽게 된 것이다. 작가만의 색채가 분명한 글이라 역시 좋았다.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 부희령의 『구름해석전문가』를 차례차례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미 사둔 윌리엄 서머싯 몸의『달과 6펜스』를 읽은 뒤 하나씩 읽을 심산이다. 


책 이야기는 언제 누구와 해도 신나지만 글쓰기 멘토로 삼은 작가의 책장을 훔쳐보며 추천까지 받아서 기분 째진다. 이 책의 부제는 '내 책꽂이에서 당신의 책꽂이로 보내고 싶은 책'이다. 그의 책장에서 책을 가져와 나의 (디지털) 책장에 꽂았으니『읽는 기쁨』의 미션은 컴플리트 되었다고, 작가와 출판사에 고하는 바이다. 





* 이 책에는 51권 말고도 여러 책이 등장하는 데 그중 하나가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며 몇 달 전 대대적으로 책정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정리했나 싶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아직 내 책장에 있다! 괜히 기뻤다는. 또 읽어야지.


* 하지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책장에서 사라졌다. 괜히 아까웠다는. 번역 잘된 것으로 다시 읽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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