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섭 Feb 06. 2022

스타트업은 지분구조를
처음부터 잘 짜야한다.

첫 단추가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된다.

창업팀은 처음부터 지분 구조를 잘 짜야한다. 첫 단추부터 잘못되면 뒤의 모든 것들이 다 잘못된다. 창업 경험이 없는 창업자들이 창업 시에 지분 구조를 나이브하게 만들었다가, 나중에 큰 고민을 하는 것을 너무도 자주 본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특히 대학병원 창업이나 교수, 의사가 관여하는 경우에는 지분 구조가 잘못 짜인 경우가 흔하다.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풀타임이 아닌 자문 역할 (본업은 따로 있으면서, 가끔 코멘트만 하는 역할)을 하시는 교수, 의사들이 지분을 5%, 10% 씩 가지고 있으면 절대 안 된다. 그런 구조에서 어느 대표가 일을 열심히 하고 싶겠으며, 어느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하겠는가. 


초보 창업가, 혹은 사업을 잘 모르시는 자문들은 지분 10%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벤처캐피털이 투자계약을 맺을 때 스톡옵션 풀을 보통 10% 정도로 잡는다. 팀에 필요한 C-level 급의 풀타임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쓸 수 있는 '전체' 스톡옵션이 총 10% 정도라는 것이다. 정말 회사의 주축이 될 핵심적인 분들을 모셔오기 위해 특별히 쟁여둔 여분의 지분이 다 합해서 10%라는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아무리 유명한 교수나, 의학적인 전문성이 뛰어난 의사라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파트타임 자문 정도의 역할을 하면서 지분 5%, 10%를 가져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례로,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어느 스타트업이 상장 준비를 위해서 특별히 모셔온 CFO에게 드린 스톡옵션이 얼마인지 아는가? 1% 정도이다. (그 CFO는 결국 성공적으로 그 팀을 IPO로 이끌었다.)


또 이렇게도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 DHP가 시드 투자를 집행하면 보통 지분의 5% 내외를 취득한다. (사실 더 낮은 경우도 많다.) 즉, 수억 원의 투자금과 함께 나를 포함한 20명에 가까운 파트너가 상시 커뮤니케이션하며, 수십 명의 자문가가 (즉, 수십 명의 의사가) 지원하며, 오피스아워, 외부 초청 강연, 데모데이, 뉴스레터, 내부/외부 네트워킹 행사 등의 리소스를 쓰고, 후속 투자를 위한 VC 소개, 임상 연구나 테스트베드를 위한 병원 연결 (빅 5와 수도권 주요 2, 3차 병원을 포함한다), 심지어 보도자료까지 대신 써주면서 받는 지분이다. 근데 아무리 전문가라도 한 명의 파트타임 자문이 지분 10%를 가져간다고?


그렇다면 그런 외부 자문들이 지분을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가?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보통은 0.5%, 아무리 많아도 1% 정도라고 대답한다. 1%면 정말 충분하고도 남는다. (참고로, DHP 창업 전에 내가 개인 엔젤이나 자문으로 활동할 때, 나는 0.5%를 말씀드렸다.) 나머지 지분은 대표님이 경영권을 방어하시고, 정말 실무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풀타임' 공동창업자와 C-level에게 가야 한다. 그래야 일단 회사가 돌아간다. 대표자가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동기가 생기고, 경영권도 확실하며, 책임에 대한 보상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표자는 지분을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가? 이 부분도 정답은 없겠으나, 창업 시를 기준으로 100% 에 가까울수록 깔끔하다. 공동창업자가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대표님의 지분이 80%는 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여러 번의 외부 투자를 유치하면서 지분이 희석되더라도, 대표자가 유의미한 수준의 지분을 유지할 수 있다. 매 라운드마다, 외부 투자자들이 10~20% (때로는 그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을 감안하면, 초기에 대표님의 지분이 높을수록 경영권 방어가 유리하다. 특히 현실적으로, 상장 심사 시에도 대표님의 지분율이 낮은 것은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참고로, 같은 이유로 공동 창업자들 사이에서 지분을 1/n 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모든 투자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지분 구조는 대부분의 투자사에서 딜 브레이커가 된다. 나도 지분을 25% 씩 나눠가진 회사와, 33% 씩 나눠가진 회사를 검토한 적이 있으나, 결국 투자하지 않았다. 지분 구조가 투자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으나, 주요한 이유는 되었다.)


최근에 만난 한 팀도, 처음에 지분 구조를 너무도 잘못 짜신 탓에 대표님의 고민이 너무도 크셨다. 외부의 자문 역할을 하는 의사, 교수들이 지분을 대거 가지고 계신 탓에, 창업 시부터 이미 대표자가 의사결정권을 온전히 가지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심지어 이 외부 자문들 중에 자신의 지분이 낮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다고 했다.


나는 이 분들이 악의가 있거나, 탐욕스러워서 이런 지분 구조가 만들어진다고는 보고 싶지는 않다. 그분들은 지분 10%가 회사에서 얼마나 거대한 지분인지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사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지분 구조에 대한 감 자체가 없을 수 있다. 


혹시 그래도 지분 욕심이 나신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시라. 외부 자문이 지분을 낮게 가져가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는 그 분들이 더 큰 보상을 얻는 길이다. 지분 구조가 합리적으로 짜여야만, 회사가 회사로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주주가 해피해진다. 더 정확히는, 모든 주주가 해피해질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추게 된다. 외부의 자문이 과도한 지분을 가져가면, 회사 자체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모든 주주가 불행해지는 '충분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창업자, 외부에 자문으로 참여하시는 교수님, 의사들은 이 부분을 필히 숙지하셔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