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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Apr 19. 2023

서울병

230415

 이젠 정말 다 나았다고 생각한 병이 재발하고 말았다.

 수서역에 내려 기차 밖으로 쏟아지는 사람들을 볼 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9호선 급행을 가득 메운 인파에 구겨져서 이동할 때는 아직 서울에는 안전불감증이 만연하구나, 이렇게 이동을 해야만 하다니 정말 불행하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IFC에 내린 순간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서울병이 스믈스믈 재발하고 말았다.

 근무지의 시골에서 일주일 내내 볼 수 있는 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의 젊은 사람들을 한 시야에 담아서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하나같이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저 틈바구니에 있을 수 있다면 뭐든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 서울에 짧지 않은 시간 살았고 실제로는 별 것 없었다 - 착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어디서 할지, 다양하면서도 유명한 가게들 중 어딜 골라야 할지, 그런 고민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다음날 삼성역에서 시간을 보내며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범람하는 사람들과 선택지를 가진 거대한 공간. 이런 공간이 한 곳뿐인 것도 아니고, 지하철을 타면 군데군데 있는 그런 도시. 갑자기 여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이며 경기도에도 살아 봤고, 지금은 지방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냉철하게 생각하면 일상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다. 같이 시간을 보낸 서울에 사는 친구는 평소에는 대형 가구점이나 할인마트를 전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지방에는 없는 프랜차이즈가 많다며 불평불만인 나도 서울이며 경기도며 살 때는 지방에는 없는 그런 곳에 1년에 한두 번밖에 가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하다. 선택지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 갔다는 것은 평소에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또 유행하는 것들을 근처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정 그렇다면 서울로 놀러 가는 것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지 꼭 살아야 할 필요까지는 없는 일일 것이다.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날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퇴근하고 난 친구들은 일하고 와서 피곤하고, 각자 약속이 있어 바쁘다. 어차피 피곤하고 바쁘기 때문에 같은 서울경기에 산다고 해도 자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차갑게 생각하며 서울병을 잘 억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모처럼의 서울인지라, IFC며 여의도 밤거리며 삼성역이며 여기저기 쏘다니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다리도 피곤하고, 메고 다니는 가방이 어깨를 아프게 하고, 지하철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서울에 있으니 기차역에 주차해 둔 차 생각이 스믈스믈 났다. 다행히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갈 때가 될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발을 내딛고 얼마 안 있어서 서울병이 발병하는 것 같더니, 서울에 조금 있으니 간사하게도 지방병이 발병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기차가 역에 도착하고, 나는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깨를 아프게 하던 배낭과 디저트 가게의 종이가방을 차의 뒷좌석에 싣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집까지는 막히지 않는 길을 40분가량 달려가야 했다. 핸드폰을 볼 수도 유튜브를 할 수도 없이 온전히 운전에만 집중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훨씬 편했다. 서울병이 찾아오려 할 때면, 냉철하게 장단점을 놓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생각을 했다. 스스로가 지방의 삶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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