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이 다 가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챙겨 먹자며, 여자친구가 사다 준 무화과 한 박스가 냉장고 한 편에 자리 잡았다. 제철의 끝물임에도 무화과는 정말 맛있었다. 뭉툭한 칼로도 가볍게 갈라질 만큼 부드러운 무화과를 갈라내니, 마치 잼처럼 반짝이는 과육이 드러났다. 반으로 갈라낸 걸 한 입 베어무니 풍성한 단맛이 거북하지 않게 느껴졌다. 확실하게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맛있는 무화과를 갈라 짝꿍과 나눠먹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챙겨 먹으라는 당부에 냉장고를 드나들 때마다 스티로폼 박스 안의 무화과 한 알씩을 꺼내, 꽁지를 잘라 내고 반으로 갈라 먹었다. 결코 짝꿍과 나눠먹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혼자서 소소하게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과일이 그렇듯, 한 상자가 전부 다 맛있는 것으로 차 있지는 않았다. 개중에는 흰 부분이 더 많은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맛있어 보이는 것을 먹었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맛있는 걸 고르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걸 남겨둬야, 다음에 여자친구가 집에 왔을 때 맛있는 걸 나눌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래서 그 뒤로는 덜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먹었다. 혼자였다면 하지 않을 선택이겠지만, 함께 맛있는 것을 나눠먹는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덜 맛있는 걸 나 혼자 먹기로 한 것이다. 다음에 집에 온 여자친구와 함께 갈라 먹은 무화과는 다행히 잘 익은 것이었다. 한 상자에 이렇게 맛있는 것만 모여 있다니, 무화과 상자를 잘 고른 것 같다고 여자친구는 말했다. 함께 나누기 위해 맛있는 무화과를 미뤄두기를 잘한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맛있는 무화과를 미루는 것이 우리 관계와 단편적으로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것을 보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함께 하는 좋은 순간을 위해 상대적으로 밍밍하면서도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것. 짝꿍에게 긍정적인 것만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
앞으로도 짝꿍에게 혼자 먹은 무화과가 참 맛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자연스럽게 맛있는 무화과를 함께 먹는 사람이 되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