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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무지개 Nov 23. 2016

프랑스 왕 프랑수아가 사랑한 트뤼프(truffe)

역사 속 에피소드 4. 트러플(truffle)이 붐을 일으킨 배경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트러플도 힘을 얻게 된다. 르네상스(Renaissance불어, Renacimiento스페인어)는 re: 다시, nacimiento: 탄생, 즉 재탄생, 부활, 재생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서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걸쳐 암흑의 중세시대 때에 억압받던 인간 고유의 자유와 예술, 학문 등이 '휴머니즘'에 기초하여 다시 살아난 혁신 운동이다.

휴머니즘의 그리스, 로마시대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로 인간성의 존중, 개성의 해방 및 고전 문화의 부흥이 주된 내용으로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된다.


그 틈을 타 트러플도 드디어 프랑스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경로로?


1869년 서양 송로버섯에 관해 언급한 최초의 작가 중의 하나인 샤틴(프랑스 작가)에 의하면 그 당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 François 1er)에 의해서라고 한다.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 영토에 집착한 나머지, 전쟁을 일으키며 이탈리아를 침범했는데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고 만다.


1525년과 26년에는 마드리드로 호송되어 그곳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이 스페인 왕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카를 5세(Karle V)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로부터 무수한 조약과 약속을 하면서 풀려나 조국으로 돌아온다. 샤틴은 마드리드에서 프랑수아 1세가 트러플 맛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다른 시각으로 이것을 유추하고 있다.


그것은 마드리드로 호송되기 전 이탈리아에서 트러플 맛을 봤다는 게다. 그 당시 스페인 카를로스 1세의 왕실에는 트루파(트러플의 스페인어)를 소비하지 않았으며, 사악한 존재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트루파의 '트'자 발음도 못 하게 한 강력한 왕실 법이 있었으리라.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이 르네상스 운동으로 인하여 트러플의 소비도 '아름다움으로 등극하여' 고급 만찬으로 떠올랐다. 자고로 프랑수아 1세는 르네상스형 군주로 취급받고 프랑스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왕의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 


프랑수아 I, 위키페디아 사진 참조


프랑수아 1세가 프랑스로 돌아와 고급 요리에 트러플 향을 배게 한 특별한 요리를 정찬 때 조금씩 조금씩 끼워 넣었다. 그래서 트러플 아니, 프랑스어인 트뤼프(truffe)는 혁신적인 붐이 일게 되고, 마침내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멋진 고급 요리의 재료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프랑수아 1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미식가였으며 로맨스에 묻혀있던 남자? 글쎄......


그가 한 말 중 유명한 말:


아! 이게 그냥 말이 아니고, 한 편의 시구나! 이런 감성을 가진 남자였으니 세심한 미각의 소유자인 게 확실하구나! 그래서 프랑스 남자가 로맨스 하다는 거구나! 이리하여 서양 송로버섯은 상류 사회의 깊은 사랑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프랑스 식단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 세상 일은 아무도 몰라~ 




한국 최초, [트러플 연구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1. 트러플에 관한 소개, 트러플 넌 누구니? 

2. 역사 속 에피소드(1), 기원전후 옛날 사람들도 이 버섯을 먹었을까? 

3. 역사 속 에피소드(2), 언제부터, 왜 돼지는 트러플을 찾아 나섰을까?

4. 역사 속 에피소드(3), 트러플은 악마의 버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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