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순간
살린 식물보다 죽인 식물이 월등히 많다. 대부분 죽어 나갔다고 보면 된다. "화분이 주고 싶었어." 이런 나에게 친구가 삼색 달개비를 건네며 한 말이었다. 우리집에는 나 이외에 다른 동물도 식물도 살 수 없다는 농담을 오래 해 왔다. 그 농담을 과장 좀 보태 백 번은 들은 친구가 나에게 화분을 건네며 한 말이 저거다. 식물을 주려는 게 아니라, 이 화분이 주고 싶었어.
본인은 식물덕후라는 칭호가 과분하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내 주변에 이 친구만큼 화분을 오래 여럿 키운 사람이 없다. 달개비는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그중 작은 화분에서도 잘 자라는 종류라고 했다. 화분은 살구색과 분홍색을 층을 쌓듯 덧칠한 산뜻한 핑크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흙의 색이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색이 변한다고 했다.
선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건네는 사람의 의도와 마음이 그대로 100%의 선물이 될 때도 있고, 받는 사람이 받아 주는 것 자체가 선물일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누가 선물을 주는 쪽이고 누가 받는 쪽인지 상호 이해가 어긋날 때도 있다.
살아있는 존재를 선물로 받는 것은 부담스럽다. 돌봄 노동에 취약한 것인가 고민도 해 보았는데 그럴 수도 있고, 너무 잘 돌보려 할 것이기 때문에 미리 피곤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관리 책임이 내게 있는 다른 존재의 생사 때문에 애를 쓰는 일은 되도록 줄이고 싶다. 쉽게 죽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이 화분을 주고 싶었어. 달개비가 죽으면 다른 식물을 심어 줄 수도 있으니 말해. 아니면 컵이나 장식품으로 써도 괜찮을 거야. 한동안 화분으로 쓰면 아래쪽에 흙 색이 배어 들어 근사한 황토색이 될 거야. 내 화분 중에는 색이 제법 변한 것도 있어. 사진 볼래?
말이 많은 친구가 아닌데 설명이 길어지는 걸 보니 귀여웠다. 반가운 얼굴로 고맙다고 말하고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물었다. 색이 변하는데 보통 얼마나 걸린대? 이런 핑크톤 말고 다른 색도 있어? 우리나라 회사에서 만든 거야? 색이 변하는 화분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있었어? 친구는 나에게 선물을 주었고, 나도 친구에게 선물을 주었다.
처음 화분을 꺼냈을 때 내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친 물음표를 친구는 아마 눈치챘을 거다. 그리고 그래서 물음표를 급히 회수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질문도 몇 가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화분을 받는 나를 보며 가까운 소중한 사람을 위해 동원한 노력과 성의에 일종의 안도감을, 어쩌면 고마움까지 느꼈을지도 모른다.
안도감과 고마움이라는 단어가 담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무게를 상상한다. 친구가 느낀 감정은 한없이 0에 수렴할 수도 있고, 제법 묵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본능이 얼굴에 물음표를 찍는 찰나의 순간, 애써 그 표정을 회수했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내가 이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는 거니까.
날씨가 추워질 때쯤 한 번씩 돌아보기 좋은 생각 아닌가.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 사소할 수 있는 일에도 본능과 촌각을 다투며 애를 써서 안도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물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에스프레소 잔으로 반 컵. 친구가 준 화분 속 삼색 달개비는 육 개월째 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