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경 Jun 02. 2019

갈등을 촉진하는 방관의 시각들.

서로를 향할 때 우리는 생존한다.

난 누군가를 꼰대라 칭하며 비꼬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꼰대라는 비꼼은 틀림과 옳음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생각의 다양성도 배제한다)
이른바 꼰대질이라는 상황은 주로 인생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조언을 해준 상황에서 상호 간에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대화의 실패 상황이다. 이때 선배가 옳은 조언과 지적을 한다 할 지라도, 꼰대라 지칭하는 상황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꼰대라는 용어는 매우 폐쇄적인 용어다. 옳은 소리더라도 잔소리 듣기 싫은 후배들 만의 전유물이다. 후배들은 자기들을 이해 못하고 공감 못하는 선배 탓을 한다. 공감과 이해에 부여된 과잉 권력 때문일까... 이제 꼰대라는 닫힌언어가 대중 언어가 되었다.
(즉 진짜 상대방에게 닫혀 있는 게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

꼰대질과 함께, 세대별로 의견 차이를 대변하고, 책임 지우는 시각이 있는데 이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꼰대가 닫힌 개념이기 때문에 갈등을 조장시켰고, 세대 탓은 닫힘을 추구하기 때문에 갈등을 촉진한다. 이 두 시각은 어떤 측과측 간의 갈등만 조장할 뿐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하려는 의도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세대 차이와 꼰대로 단절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발상이다. 단절을 촉진시키는 시각으로 단절을 대하면, 더 단절될 뿐이다.

더 많은 경험은 죄가 아니며 더 적은 경험도 죄가 아니다.  더 젊은 나이가 옳다는 징표가 되지 못하듯 더 많은 나이도 옳다는 징표가 아니다.

피곤 하더라도 기분 나쁘더라도 서로를 향할 때, 우리는 공존의 길에 들어선다. 연약한 인간은 공존의 길을 바탕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