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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청년 Oct 10. 2020

과학은 문학처럼 반성하는 힘을 갖지 못하는가?

    김훈 작가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문학이란, 자기 주변을 반성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힘을 갖는 거예요. 가령 자연과학, 생물학, 화학 등이 훌륭한 학문이지만, 이 학문들은 인간 자신을 반성하는 기능은 없어요. 물리학으로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나요? 사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나요? 이건 인문학이 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인문학만 가지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어요. 자연과학, 경제학 같은 학문과 합쳐져야 가능하죠.   


고등학교 때는 이과, 대학부터 지금까지 해양학을 선택해서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그의 말은 ‘바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너가 사람 되겠니?’라고 읽혔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꽤 서운했다. 선생의 말을 되짚어 보면 첫째, 과학으로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없다. 둘째, 과학으로 사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셋째,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으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과학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다. 문학은 전혀 모르고 과학은 조금 아는 나는 그의 말이 틀렸다고 조리를 세워 지금은 반론할 수 없기에 그의 말이 옳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다. 


      첫째, 나는 바다 공부를 하면서 나의 한심스러움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대기 중에 증가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숲과 바다가 각각 25%씩 흡수해서 없애고 있다. 바다가 이렇게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수십억 년 동안 성실히 모아둔 바닷 속 완충제 덕분이다. 지금 바다는 흡수된 이산화탄소를 중화시키느라 가지고 있는 완충제를 계속 소모하고 있다. 나는 바다의 이런 순환과 역할을 알고 나서부터 일상에서 쓰고 있는 플라스틱, 종이컵, 나무젓가락, 빨아 쓰는 행주, 테이프 클리너가 불편해졌다. 드립 커피를 내릴 때 컵, 드리퍼, 드립 서버를 데우고 그냥 버려지는 물(커피 도구를 데워서 커피를 내리면 더 맛나다)이 많다는 것을 인식했다.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을 대신할 과학과 기술을 인간이 개발해서 이 문제를 제시간에 해결할 것이라는 희망 같은 게 나는 없다. 그러니 남들보다 더 움직이고 덜 쓰고 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조금은 낙후된 삶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직접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막연히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나는 바다 공부를 하면서도 사회적 문제들의 맞고 틀리고를 판단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해양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증가라던지 그에 따른 해양 산성화는 하나의 거대한 가설이였고, 기후변화는 정말 오지 않을 미래 이야기였다. 과학은 관측을 토대로 ‘합의된’ 사실을 말할 수 있다. 논문에 현장에서 관측하고 보고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 값, 바닷속 pH, 지구 평균 기온/수온과 신문에 보도되는 이상 기후 징후들 (태풍, 홍수, 열대야)간의 일치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석유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대 문명을 유지하는 인류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인류는 지구에서 자연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틀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셋째, 인문학이 과학과 힘을 합쳐도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바다는 산성화되어 가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지구 환경에 얼마나/어떻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 알기 위해 다양한 기후변화 예측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시나리오마다 미래가 천차만별이다(무엇을 믿으라는 것인지). 과학이 계속 발전하고 있긴 하나 기후변화에 대해 우린 지금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과학은 이렇게 불완전하다. 희망이라면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과학 지식이 완벽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과학자의 겸손한 태도가 과학을 계속 배우고 경험하고 다듬게 하고 결국 이전보다 완전해지도록 만든다. 


      쓰고 나서 보니 바다 공부를 통해 발견한 지식이 아니라 바다라는 자연을 이해하려는 공부 과정이 나를 변화시켰다는 것이 더 맞는 듯하다. 과학만 한 사람도 문학을 읽고 반성한 사람만큼은 아니어도 사람 됨됨이를 갖출 수 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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