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동적으로 현장결제를 하고 이 영화를 봤다. 충동관람에 동기는 이제 제법 말을 잘하는 조카와 대화를 하기 위한 이야깃거리가 필요해서다. 보고 와서 조카에게 이모랑 같이 보러 가자고 했더니, “이모 나는 슈퍼마리오 보고 싶어”라고 해서 “아, 나와 조카는 취향이 다르구나. 음..어쩌지? 난 슈퍼마리오는 관심 없는데..보러 가야하나? 일단 못 들은 척하자.”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여러 사람이 이 영화를 본터라 보고 왔다고 하니 자신의 감상평을 들려주는데 나와 같은 소감은 없어서 글로 남겨둔다.
내가 제일 듣고 놀랬던 건 한국인 감독이 만든 것이고,
불은 한국인을 뜻하고, 웨이드가 삼킨 숯은 김치란다. 이민자의 차별 뭐 그런 걸 보여준 영화라는데…
만약 감독이 그렇게 의도한 거라면 난 감독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 한 관객이다.
타인은 바꿀 수 없고, 나나 타인이나 바뀌지 않으며, 타인을 바꾸려는 노력은 헛수고에 어리석은 것이며,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너 자신이나 바꿀려고 노력해라 라는
내 편견이 어쩌면 틀렸다고 말해주는 영화 같았다.
그래서 영화 내내 불편했다.
단순히 보면 웨이드(남)의 사랑이 엠버(여)를 변화 시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랑은 한 인간을 변화시키기에 부족하다. 금방 휘발되며, 금새 질린다.
웨이드의 엠버에 대한 믿음이 엠버를 변화시켰다.
이상하게도 엠버는 자신도 잘 믿지 못하는데 웨이드는 그런 엠버를 잘 믿는다.
난 이부분이 제일 이해가 가질 않는데, 아마 웨이드는 기질 자체가 잘 믿는다.
자신을 잘 믿는만큼 남도 잘 믿는 듯
나는 단시간에 사랑하기는 쉬워도 신뢰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의심하는거 아닐까?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타인을 믿기란 너무 어렵지 않나? 나만 그런가?
그렇다. 상대를 변화시키려면 상대가 변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생각보다 꽤 오래
나처럼 사람 못 고쳐쓴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상대의 단점이라든지 실수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역시 너 그럴 줄 알았다.”면서 삼진아웃을 카운팅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를 믿어보려는 마음이 깔려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먼저 하더라.
엠버가 자신을 믿지 못해 웨이드에게 못되게 굴지만,
웨이드는 엠버가 쏟아낸 말들이 서운하긴 하지만, 믿고 기다린다.
결국, 엠버는 정해진 삶에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으로 웨이드와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간다.
엠버가 바뀌는 걸 보면서,
그동안 살면서 웨이드처럼 누군가를 저렇게 믿어준 적도 없는 주제에
사람 못 고쳐쓰네. 사람 안 변하네라고 함부로 떠들고 다녔다.
한심하고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를 믿어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것이다.
믿음으로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내 자신이고 싶지 타인은 아니다.
나는 기질적으로 의심이 많아 나도 타인도 결국에는 온전히 믿지 못한다. 슬프네.
앞으로 나는 겨우
사람은 누군가의 믿음으로 바뀔 수 있다고 누군가에게 대답해 줄 수 있고,
사람은 안 변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너 그 사람 온전히 오랫동안 믿어준 적은 있고 하는 얘기야?라고 반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