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대로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답겠지
티비를 보다 마음이 저렸고 내심 화가 났다. 인간의 이기심과 호기심으로 자연의 법칙을 인위적으로 훼손하는 행동 때문이었다. 문득 보게 된 강좌에서 찰스 로버트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연구와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흥미로운 이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세상의 만물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다양성을 포옹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지만 독일에서 나치당 히틀러로 인해 잔인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파란 눈, 금발 머리, 그리고 8등신의 건장한 육체. 이것이 히틀러가 추구하던 우세한 인종의 특징이었다.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당연히 낙오자가 되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비이성적인 결과를 보게 된다. 인간을 교배시켜 우수한 DNA만 배양한다는 말이 안 되는 이론을 실행했다. 종교를 떠나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히틀러의 잔인함과 억지스러움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 없던 것은 강아지 역시 품종 개발 때문이었다.
말 못 하는 개들은 이미 자신의 환경에 어울리게 만들어졌을 터인데 더 좋고 예쁜 품종을 원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이상하게 진화되어 온 것이다. 그 예로 강사는 두 가지 품종을 언급했는데 개인적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닥스훈트가 나왔다. 닥스훈트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부터 시작된 품종이고 독일에서 사냥개로 키워졌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리 짧은 소시지 견을 사냥개로 키웠었다고?라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의 닥스훈트가 아닌 예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사냥개 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지금보다 다리가 훨씬 길고 아랫배가 상당히 슬림했다. 오소리를 쫓아내는 용맹함이 그려질 정도로 튼튼하고 긴 다리가 기능적이었다. 요즘은 배가 땅에 다을랑말랑 하는 닥스훈트를 보는 게 정말이지 흔하다. 그나마 운동을 좋아해서 산책을 즐겨하는 주인을 만난다면 행운이지만. 대부분의 닥스훈트는 나이가 들며 점차 허리 디스크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뒤뚱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만 하지 않는다.
못생긴 생김새가 귀여운 게 특징인 퍼그도 시간이 갈수록 눈이 커지고 코가 납작해졌다. 그래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부작용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전에 산책을 하다가 퍼그 종류를 만나게 되면 숨이 가쁘게 쉬어지는 소리가 너무나 부담스럽고 안쓰러웠는데, 원래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우세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쫓다 보면 항상 부작용이 따르는 것 같다. 생각이 좁아지고 편협 해지며 다름을 인정하질 않는다. 다름이 결국은 차별을 하게 되는 폭력이 가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획일화된 생각들이 만연한 한국에 사는 것이 참 자유롭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정상적인 삶’ ‘정상인’ 이러한 규정된 틀 속에서 또는 규정한 시간의 약속대로 선택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 모두 숙제인 것 같아 괴로울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성형수술의 왕국, 사교육 시장, 행복순위 꼴찌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해외를 잠시나마 나갔다 오는 것이 숨통을 트이게 해주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그 어느 누구도 비슷함이 없어 서다. 머리 색부터 자유분방한 곱슬머리, 얼룩이 져도 무심하게 메고 다니는 에코백, 특이한 모자 등 다채로운 색감들이 즐비하다. 같은 옷과 모자여도 인종마다 소화하는 느낌이 다르다. 여기서 누가 더 예쁘고 우세하고 이러한 피라미드 식 사고가 발동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개성에 대한 자신의 만족이 더 잘 느껴진다. 누가 뭐라 한들 상관하지 않는 마인드를 느끼게 되니 나 역시도 움츠러들던 어깨가 조금 느슨해진다. 매일 서울에서 타는 지하철은 상대적으로 모노톤이다. 다들 비슷하다. 비슷하면 친밀감이 들어야 하는데 왜 인지 더 긴장감이 느껴진다. 다들 비슷비슷한데 왜 이리 경쟁을 하고 누가 누가보다 우세하고 잘 나간다 우쭐대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