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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an 30. 2021

데미안 허스트에게 주고 싶은 알약

알약을 단숨에 먹기에는 아름다워

잠시 손바닥에 얹었다.

세 가지 효능을 투명한 캡슐에 나란히 넣었나 보다.

초록색, 흰색, 주황색.

초록색은 푸른 자연을 못 본 사람을 위한  Plant-G,

흰색은 복잡하고 얽힌 잡스러움을 비우는 작업을 도와주는 백지화 촉진제,

주황색은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사무직 사람들을 위한   비타민- D.

예쁜 색감의 배열이 줄법한 좋은 효능만을 생각하며 물 한 컵을 마시며 목에 넘겼다.

열흘 넘게 한참 동안 부어있던 윗배가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생각했다. 데미안 허스트에게 이 약을 보여주고 싶어라.


영국 대표 yba 현대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는 이런 알약을 보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허스트는 사람들이 약에 대한 무한 신뢰와 믿음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약국에 진열된 약들을 보면, 죽음과 부패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람들은 병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의 외관만을 그리고 그것이 제공할 좋은 점들만 보고 믿는다. 부작용은 옆으로 잠시 미뤄둔 채로... 이 약이  몸을 몇 차례 훑는 순간 서서히  체내의 나쁜 것은 비워지고 좋은 것들로 채워질 것이라 상상하며 약을 먹는 동시에 희망을 삼켜버린다.


허스트는 이런 약들의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색감이 악화되는 병들을 깔끔하게 치유하고 사람들의 기분을 한층 올려주는 힘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약에 대한 무한 신뢰를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 안에 내재된 것이 얼마나 독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의 집합체인지 모른 채.

그는 미술 역시 알약 같은 역할과 효능이 발현되길 바랬다.

이러한 알약들을 차례차례 배열하며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약에 대한 맹신, 건강과 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구, 제약 산업의 속임수 끝이 없는 싸이클을 데미안 허스트는 기존의 약으로 상징적인 작품들을 만든다.

Damien Hirst, <약국>전경 at Tate Modern, 2012, Photo: Andrew Dunkley
Damien Hirst , 빈 공간, 2000

약을 먹기 전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허스트의 질문이다.


 “지금까지 내 병을 고쳐주고, 나를 건강하게 해 준다고 굳게 믿었던 약들은 그저 하나의 디자인된 이미지였을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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