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시간의 알리바이를 넘어서

간편소설 여덟

어제가 그제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 속에서 뚝, 뚝 손가락 마디를 꺾고 있던 의지가 말했다.


“아,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보다.”


옆에서 대자로 뻗어 있던 시간이 느긋하게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했다.


“여행? 돈이 있어야 가지?”


맞는 말이었다. 심심해서 해본 소린데, 돈이 없어서 못 간다니 기분이 영 껄쩍지근했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일을 받았고, 그래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제도 바쁘고, 어제도 바쁘고, 오늘도 바쁜 나날 속에서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던 의지가 말했다.


“자, 이젠 돈이 있으니 여행을 가볼까?”


옆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돈이 홱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했다.


“여행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일 쌓인 거 안 보여?”


맞는 말이었다. 당장 의지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마감시간밖에 없었다. 마감시간, 마감시간, 마감시간의 연속이었다.


로스터기 안에 담긴 커피콩처럼 달달 볶이던 의지는 마침내 까맣게 탈진해 버렸다. 그러자 마감되지 않던 마감시간들이 알아서 마감되었다. 바야흐로 돈과 시간을 양손에 거머쥐는 순간을 맞았지만, 여행은 불가였다.


시름시름 앓던 의지가 회복된 것은 돈을 쥐고 있던 손이 치료비며 약값으로 가벼워진 다음이었다. 그 때문에 듣게 된 충고. [여행을 가려면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시간의 한마디가 심장에 어퍼컷을 날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의지는 전선처럼 가늘고 길게 뻗어 있는 길 위에 섰다. 돈 벌러 가는 길은 아니었다. 어디 먼 곳으로 비행을 시작한 철새의 깃털 같은, 그래서 동경과 그리움의 기압골을 따라 불려가고 불려올 바람을 품은 작은 배낭 하나가 의지의 등 뒤에 매달려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