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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Sol Sep 13. 2019

명절 홀로서기

'이해할 수 없는 의무감'

명절을 지내는 엄마를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의무감'이었다. 할 도리는 해야 욕을 먹지 않는다는데, 형체 없는 이 의무감을 왜 이탈하지 못하는 것일까. 늘 답답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런 그를 뒤로 한 채 묵묵히 산적을 뀄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어.

내게도 이해할 수 없는 의무감이 있었다. 한국식 딸의 의무. 엄마를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의 일을 같이 해야 한다는 의무. 차별적인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고야 마는 결론. 나는 그것에 질려버린지 실은 꽤 오래되었다. 가족들을 설득해 해외여행을 끌고 나가지 않는 이상 반복되는 연례행사.


어디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이토록 기이한 구조 속, 여성들의 익숙한 고통만 끝없이 대물림 되는 명절이라는 존재.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제는 그 실상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관습이 아닌 악습의 잔재가 일 년에 두 번씩 내 목을 졸랐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덜컹거리는 한강 근처의 카페에 앉아 있다. 일부러 노을이 지는 시간에 맞추어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짊어지고 나와 한 시간 반 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치즈 케이크까지 시켜 글을 쓰고 있으니, 더욱이 명절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추석'이 대체 뭐였지, 하고 검색까지 해봤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절 가운데 하나로 음력 8월 15일.”
“수확 경축적 의례.”
“가윗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이하 생략-”


오늘은 2019년 9월 13일이다. 4차 산업혁명, 무인 자동차 주행, 5G 시대라는 말을 누구나 다 들어봤을 2019년의 한 복판이다. 그런 시대에, 이제 더 이상 순순히 앉아 전을 부치고 있을 정도의 인내심이 더 이상 내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어제부터 시작된 명절 홀로서기의 일환으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금요일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여느 때처럼 하루를 보내고 나니 더욱이 명절의 의미를 모르겠는 것이었다. 어제는 그냥 평소 때보다 일을 조금 덜한 목요일이었을 뿐이었고, 오늘 역시 조금 더 여유로운 금요일일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망설였던 일을 드디어 하고 나니, 놀랍게도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걱정이 무색할 만큼 바뀐 것이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크게 임팩트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추석, 가장 충격적인 것은 ‘너나 해’ 무대인 것)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난 후, 문득 오늘은 지독하게 복잡한 서울을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로 왔다. 물론 출발하기 전에는 엄청나게 귀찮았다. 글이야 사실 집에서도 쓸 수 있는 것이고, 평소에 관심도 없는 한강변 카페를 꼭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생전 처음 해보는 일들의 연속성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느지막이 집에서 파스타를 해 먹고 카페로 향했다.

그렇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온 카페였건만, 막상 이곳에 오니 전망은 예상보다 별로였다.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오늘 노을은 크게 아름답게 지지도 않았고,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앉을자리를 겨우 찾을 정도로 층간을 헤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또다시 나는 깨달았다. 명절과 상관없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았구나.



사실 이 점은 어제도 느낀 것이었다. 어제는 작업실에 일하러 가기 전, 서울시립미술관에 잠깐 들려 전시를 보았다. '안은미래'전을 보러 갔던 것이었는데, 그 전시도 좋았지만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미술관을 채우고 있는 연령대였다. 가족단위 관람객은 물론이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분들이 전시장을 메우고 있었다. 심지어 여느 주말에 갔을 때처럼 사람이 많았다. 누군가는 고속도로에 갇혀 있고, 누군가는 명절날 듣는 빻은 소리에 고생하고, 누군가는 화를 억누르며 주방 일을 하고 있을 시간, 누군가는 문화생활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다. 모두 각자가 내린 선택의 결과다. 누군가는 실천했고, 누군가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머리로는 보이콧하지만, 나까지 그러면 어떡하냐'는 심정. 나도 잘 안다. '내가 같이 안 하면, 엄마가 고생하잖아'라는 걱정.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이 고리를 나부터 끊지 않으면 달라질 것은 영원히,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나는 이제야 내렸다. 사실 이 역시 예전부터 '머리로는' 알고 있던 것이다. 실천을 못했을 뿐이었지.

이렇게 카페에 태연히 앉아 글을 쓰며, 걱정했던 것들은 막상 해보면 별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다음 명절에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63 빌딩 스카이라운지 카페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걸으려 할 때, 숱한 걱정이 앞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선택의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순간들 역시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1년이 아니라 몇십 년 후를 바라본다면 오늘 내가 내린 선택에 후회는 없다.

하늘을 반으로 가른 것처럼 드리워진 먹구름 아래로 붉은빛이 내려가고 있다. 꼼짝없이 두 시간 동안 글을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 빛이 더 붉어졌다. 그와 동시에 아랫배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올 가을의 첫 정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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