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이랑 연애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연애하는 모든 이들은 저마다 일정한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 연락 빈도의 문제, 취향의 문제,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성격의 차이 등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다름' 때문이다. 연애 시작 후 초반에는 정말 멍멍이 보다 못할 만큼 싸우게 되고, 서러움과 서운함을 더할나위 없이 느끼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 훅 치고 들어오는 물음이 있다. 나 이 사람이랑 계속 연애해도 될까?
'이미 잘 맞는 것'은 0.01%에 불과하다는, 난데없는 깨달음
기껏해야 한 남자와 오-래 연애하는 내가, 연애에 대해서 뭘 그리 똑똑한 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결심하고, 행동했던 것 중 가장 잘했다고 자부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하루가 멀다하게 이별이 날 유혹하던 그 때, '이 남자와 잘 맞다고 생각한 것은 0.01%에 불과하다'고 깨달은 것이다.
0.01%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은 몇 가지 없었다. 커피와 카페를 좋아한다는 것과 편식이 없다는 것, 밤낮 가림 없이 1-2캔의 맥주를 사랑하는 것과 바쁜 일상을 사랑한다는 것 뿐. 남친과 나는 영화보는 취향, 여행의 취향, 적절한 연락의 빈도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달랐다. 특히 여행의 취향은 너-무나도 달라서, <밥-영화-커피> 조합의 데이트를 벗어나기 까지 2년이나 걸렸다.
처음 1년 반 정도는 정말 눈만 마주치면 싸웠다. 대체 이 남자랑 왜 연애를 한다고 나댔는지(내가 고백했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연애를 했는지(내가 고백했으면서), 스스로 바보 멍청이라고 수백번 생각했었다. 연락하는 빈도에서 시작해 남사친의 존재와 적절한 관계에 대한 끝없는 논란,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오는 오해. 모든 것이 정말 괴롭고 힘들었다. '이 사람이랑 계속 연애하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은 365일의 364일을 고민했다. 아마 남친도 그만큼 고민했을 지도. 1년 반 동안.
친구를 붙잡고 힘듦을 토로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하면서도, '헤어질거야!'하고 무수히 선언을 외쳤었음에도 헤어지지 않은, 열렬히 싸우고 난 어느 순간에, 난데없이, 문득, 불현듯이 '이 사람과 맞춰가야 할 것이 99.99%다'라고 깨달은 것 때문이었다. 결국 헤어지지도 않을거면서 주변사람들만 질리게 만든 못된 년이 바로 나였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랑 연애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 사람이랑 계속 연애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에
'이 사람과 맞춰가야 할 것이 99.99%다'
라고 난데없이 깨달았고
'어차피 다른 사람과 연애해도 맞춰가야 할 것이 99.99%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이랑 연애해도, 이 과정은 겪겠구나'
하고 체념했다.
99.99%보다 낮은 정도를 맞춰갈 수 있는 다른 남자(혹은 여자)들이 존재한다고 말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만약 다른 남자였다면 '앞으로 맞춰가야 할 것이 40% 밖에 없다'고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상대와 나의 다름을 서로 타협하고 배려하며 맞춰나갈 '의향' 혹은 '의지'가 얼만큼 되느냐가 중요한거지.
소중한 만큼 노력하는 것, 사랑 - by 우리 아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난다. 다름, 그러니까 서로 잘 맞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고 타협하고 배려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의향에 대해서 고민 할 때 보통 '감정의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감정의 정도가 기준이 되면 아마 연애 초기에 많은 연인들이 헤어지지 않을까. 물론 이 또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개의 경우 연애 초반에는 감정의 정도가 엄청나게 깊거나 진하거나 하지 않다. 나 또한 그랬고. 내가 이 남자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앞으로도 감당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할 때 생각지도 못하게 아빠가 내게 한 마디 던졌다.
"나는 널 키우는게 정말 힘들었다. 내 딸인데 어쩜 나랑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지. 가족과 연인이라는 관계는 다르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에서든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은 다르지 않아. 네가 내 딸임에도 참 다르다고, 내가 널 포기했니? '다르다'는 것이 이별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는 '다름'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말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니? 딸, 누군가를 사랑할 때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해. 노력을 하지 않고 상대에게 바라기만 한다는 것은 네가 사랑할 줄 모른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단다. 네 사랑에 대해 네가 노력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네게 소중하다는 증거다. 사람은 모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잖니."
아빠의 말이 맞았다. 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는 과연 얼마나 노력했었나. 내가 내 입으로 말하는 사랑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 통화를 마친 그 날,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금만 더 여유롭게 생각해 보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게 20년이 넘는게 겨우 1-2년에 모든 것이 맞춰질 순 없잖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나도 노력을 해보자.' 하는 생각이, 어리숙한 다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조금 이상한 뿌듯함도 느꼈다. 내 사랑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여자'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기분이어서(개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조건
때때로, 아니 종종, 아니 어쩌면 더 자주 아빠는 내게 좋은 연애 상담사가 되었다. '아빠, 대체 남자는 왜이래?'하며 아빠한테 전화할 때가 꽤 있었다.
연애 초반, 아빠와 통화하며 '헤어지는게 맞을까?'하며 토로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아빠가 물었다.
"네가 꼭 그 아이랑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뭐니?"
"서로 맞춰가는게 너무 힘들어. 아무리 대화를 하고 맞춰나가도 끝이 안보여, 아빠."
"그래서, 정말 도저히 못 맞추겠는 것이 무언인데? 네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니? 누가봐도 정말 문제가 있는 아이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날 때리거나 소리지르는 것도 아니었고, 여자문제가 복잡한 사람도 아니었으며(너무 단조로워서 놀랐다) 질병이라 생각할 만큼의 성격적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술을 가까이 두는 사람도 아니었고, 술을 마신다고 연락이 두절되는 일도 없었다(이런 일은 오히려 내게 있었다). 그저 '자잘하게' 맞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자주, 끊임없이 부딪치다보니 지치는 거였다.
"누가봐도 모난 사람이 아니고, 누가 들어도 '절대 그건 안되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 더 지켜봐도 되지 않겠니. 딸, 진짜 연애가 2년부터라고 생각한다. 2년 정도는 누구나 자신을 속일 수 있지. 아닌 척, 멋진 척, '척' 할 수 있는 것들의 기간이 2년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에도 정말 네가 이 남자와는 힘들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땐 정말 헤어지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연애하는 주기가 빨라진 요즘이라고 하더라도 네가 어떤 식으로든, 어떤 관계든 사람과 연을 맺고 끊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음 좋겠다."
아마 내가 5년 째 이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도 '딸 아무한테도 안줘!'하면서도 '2년만 버텨보라'며 이별을 회유한 아빠 때문일지도. 결혼하기 전까지 10명이랑 연애하라며. 한 남자와 5년째라니, 웬말이야 이게.
어쨌거나 내게는 이별을 고해야 할 너무나 명백한, 콕 집히는 강력한 이유가 없었다. 뭐,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다만, 이별을 고하기엔 그 이유들이 너무 자잘했다고나 해야할까. 아니, 누구랑 사귀던 안 맞는 부분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데 누구와 연애를 하더라도 했을 고민 때문에, 심지어 그게 그렇게 중대하고 결정적인 사유가 아닌 것 같은데 헤어진다고 하는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 일지도.
기승전 '대화'
나는 대화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자 강력한 무적수단이다. 그동안 나눴던 수 많은 대화에서 남친이 살아온 방식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하나씩 알아왔다. 그 또한 대화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이해해 왔으리라. 그래서 내가 답할 수 있는 베스트는 언제나 대화 뿐이다. 안타깝게도. 사실 뭐 내게 그리 많은 사람이 조언을 구하거나 그렇지 않는다.
니, 사람마다 연애하는 상대가 다르고 살아온 세계가 다른데 어떻게 모두에게 통하는 '법칙'이나 '조언'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내 연애엔 통한 어떤 방법이 타인에게도 통하리란 법은 절대 없다. 개인의 삶과 역사가 어떠한 법칙으로 일반화 될 수 없으니까. 어쨌거나 연애엔 법칙이 없다. 내 연애가 내 친구의 연애와 같을 수 없고, 내 남친이 친구의 남친과 같을 수 없다. 법칙 없이 공감만이 존재하는 것, 그것이 연애다.
결국, 나는 '대화를 시작으로 자신의 연애에 딱! 맞는 해결 방법을 찾으라'는 아주 무책임한 결론을 위해 이렇게 장황한 이야길 꺼낸거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