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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선생 Mar 19. 2020

망각의 한계

영화 " 이터널 선샤인" : 사랑에 다시 한 번 속다.

 아침에 눈을 뜬 조엘(짐 캐리)은 평소와 다름없이 직장으로 향한다. 그저 영문 모르게 생긴 차문의 상처가 기분 나쁠 뿐, 그에게 있어서 별다를 일 없는 아침 출근길이다. 그러나 갑자기 몬투악으로 떠난다는 기차의 소리에 그는 충동적으로 그 기차를 타고 몬투악으로 향한다. 그 누구와도 약속한 적 없지만, 마치 최면에 걸린 듯이...무언가에 홀린 듯이... 몬투악행 기차에 올라탄다. 그렇게 떠난 몬투악에서 그가 찾으려 했던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무엇엔가 끌린 듯 왔을 뿐...몬투악에 도착해서 그는 한 여자를 만난다. 오렌지 스웨터를 입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조엘이나 클레멘타인이나 둘 다 서로를 처음 만나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전에 만났던 것처럼 서로에게 끌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시작될 무렵, 화면은 차 안에서 오열을 하고 있는 조엘의 모습이 보이며,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한다. 그중에는 잊어버리는 기억들도 있고, 머릿속 깊숙이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 자신들만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기억이 좋은 기억이던 나쁜 기억이든 간에 자신들의 머릿속에 담고서 살아간다. 사랑에 대한 기억은 더욱 그렇다. 자신이 겪었던 사랑이 심장을 터지게 할 만큼 설레었던 사랑이었든지, 아니면 가슴을 찢을 정도의 아픈 사랑이었든지,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은 가슴속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퇴색되고, 지워진다. 때로는 왜곡되어 사실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들은 가슴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툭 불거져 나온다. 가끔 그에 관련된 물건을 발견한다든지, 특정 장소를 지나가거나 할 때, 혹은 자신에게 남겨진 그 사랑의 습관을 발견할 때, 그 기억은 가슴속 어디에선가 나타난다. 그게 의도된 것이든 의도되지 않은 것이든 말이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옛날의 사진첩을 넘겨보듯이 하나씩 되새겨보기도 하고, 지저분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툭툭 털어버리려고 한다. 그리고는 시간이 주는 망각에 기대서는 "다 괜찮을 거야"를 되뇌인다. 하지만, 망각을 통해서 기억이 하나둘씩 흐려지기는 하지만, 그 당시의 자신의 마음과 느낌들은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게 된다. 시간이 주는 망각이라는 혜택조차도 마음과 느낌들은 어찌할 수 없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은 이러한 망각도 어찌하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마음과 느낌에 대한 이야기이다.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헤어진 후,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찾아가지만,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으로 대한다. 알고 보니 클레멘타인은 어느 정신병원에서 기억을 삭제하였고, 이 사실을 안 조엘도 그녀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의뢰를 한다. 하지만, 기억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조엘은 자신이 클레멘타인과 가졌던 기억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또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허물어 저가는 기억 속에서 그녀의 기억을 한 가닥이라도 잡기 위해서 기억의 삭제를 피해서 여기저기 다른 기억들로 도망 다닌다. 지워져 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느끼고,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서 점점 사라져 가는 기억들을 되새기며,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클레멘타인의 모습에 안타까워한다. 결국에는 클레멘타인에 대한 모든 기억을 삭제당하고 만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돌발적으로 기차를 타고 몬투악으로 떠나는 조엘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몬투악에서 클레멘타인을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던 순간까지는 앞부분과 동일하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사실을 안 그 정신병원의 간호사 매리(커스틴 던스트)가 기억삭제를 의뢰한 사람들에게 삭제 기록을 보내면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클레멘타인과 조엘도 매리가 보낸 테이프를 받게 되고, 이 테이프의 내용을 듣게 되면서, 자신들이 서로 2년간 사귄 연인이었고, 서로에게 지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헤어지고, 기억삭제를 의뢰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전히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고 지겨웠었다는 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서려 한다. 그러나 기억을 삭제하는 중에도 그들의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기억한다. 결국 서로에게 실망하고 서로가 맞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서로를 붙잡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남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면, 저 멀리 어딘가로 그 기억들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나는 기억의 잔상들과 그 느낌들은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아릿하게 마음 한 켠을 적신다. 그리고 잠시 순간이나마 그때로 돌아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건, 좋지 않았건 상관없이 말이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추억을 아프면서도 따뜻하게 꺼내볼 수 있는 흑백 사진첩 같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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