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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nsucht Jan 14. 2024

PSALMS of the KOREAN PSALTERS

II. 피득 선교사 (Alexander A.Pieters)

시편에는 문학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노래!이다.

시편을 선율에 담아 노래하여 Vol.1.2.3 총 6개 음반으로,  2021년 5월 발매한 시편찬송 음반을 선물 받았다. music by 서울 모테트 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 지휘 박치용] 고려서원

그래서 구약성서 최초 번역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명 피득 선교사


찬송가 75장 주여 우리 무리를 - 시편 67편

찬송가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 시편 130편

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 시편 121편

의 작사가로 21C 새 찬송가에 나와있기도 한

Alxander Albert Pieters (1872-1958)이다. 

1898년 이 땅 대한민국!
한글 최초 구약성경이 출간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년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만주 심양의 동관교회에서 번역, 출간 한 『누가복음』이 최초였다. 이는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1898 년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Alxander Albert Pieters (1872-1958) 한국명: 피득)가 총 편의 시편을 번역하여 『시편촬요」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것이 최초의 한글 구약 성경이다.


이삭 프룸킨 (Aisik Frumkin)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러시아(Ecoternoslav)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서 1872년에 태어난 그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어려서부터 유대인 회당학교에서 히브리어를 배워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항상 히브리어로 시편과 기도문을 암송하였다.

Gynasium(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독일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를 말할 줄 아는 청년이었다. 1895년 4월 7일 당시 스물세 살의 청년 피득은 러시아의 열악한 생활환경과 미래에 대한 좌절감 속에서 고향을 떠나 호주로 가려고 이집트의 항구도시 포트사이드(Portsaid)로 갔으나 호주에서 되돌아오는 사람들로부터 호주의 악조건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호주행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가려고 홍콩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발길을 돌려 동부 시베리아로 가서 철도건설 노동자로 취직을 하려고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ck)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중  일본인 교회에서 미국인 선교사 알버터스피터 스를 만난 것이다. 그렇게 1895년 4월 19일 그곳에서 기독교 교리를 공부하고 예수를 영접한 이 유대인 청년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개종하고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선교사의 이름을 따라 ’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로 개명하게 된다. 평범한 철도건설 노동자가 될 뻔하였던 피득에게 미국 성서공회 성서 매서인 혹은 권서(勸書, coporteur) 자격으로 한국에 가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한 사람은 일본 주재 미국 성서공회 총무인 헨리 루미스(Henry Loomis, 1839-1920) 목사였다. 그렇게  피득은  5월 미국 성서공회에 속한 ’권서’로 성경을 들고 이 땅에 오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전국을 다니며 쪽 복음을 파는 권서인으로서 활동을 하며 어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에게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도록 하게 하고 싶은 갈망은 1898년 편에 해당하는 [시편촬요]를 번역하고 출간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편촬요]는 시편을 히브리 원문에서 직접 그리고 혼자 단독으로 번역하였다.

사회계층 구별 없이 모든 한국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자를 쓰지 않고 순 한글로만 번역했다.

또한 시편을 번역하는 동안, 틈틈이 그가 번역한 시 편중에서 찬송가로 부를 수 있도록 찬송가 가사도 작사하였고, 그가 작사한 17편의 찬송가 가사는 [시편촬요]와 같은 해 출간된 초기 한국교회의 무곡조 찬송가집인 [찬셩시]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구약 국역의 선구자일 뿐 아니라 권서인(勸書人)의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하고 미북 장로회 목사가 되어 한국에 다시 선교사로 파송되어 1911년판 한글 구역 구약 번역에 부분적으로 참여했고, 1938년 판 개역 성경전서를 완간하는 일에 구약본문을 최종 확정하는 주역의 역할을 했다.

메마른 땅에 단비 같은 이러한 노력은 그가 한국에 온 지 2년 남짓 한국어에 능통하여 이를 번역하고 출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되고 한국을 사랑하고 택하셔서 한글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게 됨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1898년에서 1938년에 이르는 약 4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구약 번역>을 위해 헌신한 피득 선교사의 노고와 섬김으로 한국 민족과 교회의 역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피득 선교사를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꼭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시편촬요 #시편찬송가 #피득선교사

#한국최초구약성경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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