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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hea Apr 04. 2016

제 8화. 나쁜 본능

여름이 자취를 거의 감추기 전


공식적이지 않지만 우리는 어느덧 연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금요일 늦은 밤


[나 지금부터 자전거 탈 건데 같이 갈래?]


[응, 좋아~ 중간에서 만나자]


그가 앞서 달리고 나는 비상등을 켜고 새벽에 자전거 질주를 했다


선뜻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자전거가 내는 속도는 마치 나를 하늘 위로 떠올리는 기분이 든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산책로를 거침없이 밟으며 자동차 소리도 물소리도 다 삼켜버린 듯한 새벽의 정적과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 페달 소리만이 있다


한참을 달린 뒤 잠시 의자에 앉아 풀 벌레 소리도 듣고 진한 포옹도 한다


나는 자꾸 이 남자가 탐나고 가지고 싶고 또 한편으로는 파괴해버리고 싶다


너무 마음에 드는 걸 가지면 파괴를 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뒤틀린 욕망처럼..


그의 마음을 어떤 것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만큼 나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암묵적으로 터부시 되는 성적 욕망의 판타지 ‘쓰리썸’ 이었다


나이도 있는 만큼 성적인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던 도중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남자도 흔히들 가지고 있는 쓰리섬 판타지를 가지고 있을까?


만약 내가 제안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웃긴 얘기지만 나는 스킨십에 엄청난 거부감이 있었고 이 문제로 여태까지의 연인들과 항상 문제를 겪어 왔다. 따라서 나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한 환상도 로맨스 따위도 전혀 없었다


다만 나는 그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실험대 위에 올라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기연아, 너도 성적 판타지가 있을 거 아니야]


[남자라면 뭐.. 다 그렇긴 하지, 왜?]


[넌 어떤 거 해보고 싶어?]


[글쎄.. 딱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아서 모르겠는데?]


[만약 여자가 두 명인 경우는 어때?]


[ㅎㅎ 제대로 판타지네, 뭐 남자면 한 번쯤 꿈꾸긴 하지만 내 경우에는 잘 모르겠는데, 왜 그런 게 갑자기 궁금해?]


[아니야, 만약 내가 상대를 찾아서 너한테 제안한다면 어떨까 해서]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직접 해보자고?]


[뭐, 기회가 된다면.. 어때? 해볼 생각 있어?]


[진짜.. 해보고 싶어?]


[궁금하긴 해, 너는 어떤데?]


내 추측으로는 분명 관심이 있는데 자꾸 나한테 대답을 떠넘기려는 그의 태도가 사뭇 못마땅하다


[아.. 갑자기 네가 그런 소릴 하니까 모르겠어.. 왜 하고 싶은 건데?]


[별다른 이유 없어, 그냥 궁금 하다니까?]


[그럼 진짜 다시 진지하게 물어볼게, 정말 해보고 싶어?]


[응, 난 그래. 넌 어떤데?]


[그래.. 네가 해보고 싶으면 해보자, 그런데 상대는 어떻게 구하게?]


뭐 이런 것 까지 나한테 물어보나 괘씸한 생각도 들지만 일단 끝까지 떠보기로 한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볼게]


찝찝하게 마무리를 하고 카톡 대화창을 꺼버렸다


나는 왜 이런 되지도 않는 개드립을 친 걸까.. 또 관계가 부서지는 전초전을 시작하고 싶은 건가 나는

퇴근을 하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이 제안을 승낙한 사람은 없었다. 만나는 사람 전부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관계가 깊었던 사람 중에 단 한 명도 이런 식으로라도 해보자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떠보자는 내 심보가 정말 얄궂고 못됐지만 한 편으로는 작은 배반감마저 들었다


‘그래.. 역시 전적으로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나를 사랑하고 마음이 깊다면 이런 제안을 내가 아무리 해보고 싶다고 한들 승낙하진 않았겠지’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두 가지 욕망이 인다


다른 남자와 다를 바가 없으니 서둘러 이 관계를 끝내야 하겠다는 냉철한 마음과 그의 묘한 매력에 이끌리는 나 자신이 있다. 


나는 연예인은커녕 남자한테 한 번도 섹스어필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이 남자는 뭔가 티는 정말 안 나고 겉모습도 평범하게 생겼는데 성적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관계를 가지거나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의 실망은 더 커졌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그에게 첫 번째 이별 통보를 한다


[기연아, 우리 이제 이쯤에서 그만 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그래.. 또 나다운 최후의 모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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