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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an 18. 2017

별안간 진짜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D+43,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 1

오늘은 춘이가 컨디션이 좋았는지 보채지도 않고 낮잠도 꽤 자서 나 역시도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았던 하루였다.

엄마라는 롤이 익숙해지면 하루단위로 오락가락하는 이 변동성이 조금은 줄어들까.


임신과 출산을 하며 제일 큰 변화는 바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에 때때로 압도되는 것이었다.

특히 출산 직후부터 현재까지는,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그 걱정의 빈도와 강도가 매우 쎄서 내가 병에 걸렸나 할 정도였다.

이를테면, '춘이가 자다 갑자기 숨막히면 어쩌지?' '이러다 내 팔목을 못쓰게 되면 어쩌지?' '춘이를 안다가 떨어뜨리는 거 아냐?' '남편이 갑자기 어디가 아프면 어쩌지?'부터 '춘이 사춘기 되서 개기면 나 못참을꺼 같은데?' '춘이 어린이집 갔는데 이상한 선생님 걸리면?'등등 지금 쓰면서도 나 왜 이래 하는 것들 말이다.

잘 있다가도 그런 요상한 생각이 들때면 갑자기 이 연약한 애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지고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그런 와중에 오늘은 컬러테라피 선생님이 컬러테라피스트 멤버들에게 명상 미션을 주었다. 오랜만에 각잡고 자는 춘이 옆에서 명상에 들어갔다.

내 명상의 목적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였다.

전과 다르게 눈을 감으니 오른쪽 어깨와 등, 손가락 관절에 통증이 너무 강렬해 내가 세운 명상의도에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춘이를 계속 안고 있어 내 몸이 맛이 가긴 갔구나 그래 이름까지 외운 그놈의 릴렉신 호르몬이 내몸에 아직도 그득하구나 하는 생각들을 지켜보며 일단 호흡에 집중했다. 호흡에 집중하다보니 통증에 대한 감각은 옅어지고 어떤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로 남편과 춘이와 세계여행 중 어느 햇살 내리쬐는 호숫가에서 앉아 셋이 나란히 명상하는 장면이었다.

(출처:calm)

너무도 구체적이고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실상은 남편이 춘이한테 '니네 엄마 왜 저러니?' 낄낄 대며 집중안하고 나를 놀릴테지만 결국 셋이 나란히 눈감기에는 성공할, 바로 그 장면. 그 이미지가 떠오르고 계속 호흡에 집중하자 앞으로에 대한 자질구레한 걱정들이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그린 장면이 꼭 현실화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지금 춘이는 옆에서 자다가 몸부림을 치며 방구를 붕붕 껴대고 있고 남편은 미친 코골이를 시전 중이다.

그래 이렇게 평온하고 충만한 지금을 만끽하자. 까먹더라도 계속 계속 되돌리자.


로얄블루의 깊은 내면으로의 탐색에의 의지와 올리브그린의 내려놓음이 함께한 오늘 명상은 아마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남편이 '쟤 무섭게 왜 저래' 킥킥대며 찍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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