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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an 27. 2017

별안간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D+49, 마치 생애 첫 영화관람인듯

지난 주말에는 출산 후 첫 외출을 시행했다.

전날 자기 전 막수유를 하고는 새벽에 갑자기 허기져 콘프레이크를 먹는데 망할놈의 눈물이 울컥. 그냥 갑자기 정체모를 스트레스가 확 올랐다.

'아 이제는 한번 나가야 할 시점이 왔다. 내일이다!'

훌쩍대면서도 먹을껀 먹고 앱을 열어 영화를 고심해서 하나 예매했다.


당일, 독립운동작전이라도 시행하듯 정교하게 나갈 시간과 들어올 시간, 수유시간을 맞추고 버스정류장 버스 도착시간까지 체크했다. 남편에게는 쿨하게 '3시간 후 올거니 알아서 잘 해.' 라며 남편 잠바와 임부복 바지를 팽팽히 땡겨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한쪽 주머니에는 수유패드를 챙겨 집을 나섰다.

어수룩하게 해가 질 무렵이었다. 집 앞에 나와 눈을 뽀드득 밟고 걷는데 왠지 모를 쾌감마저 솟았다.

그리 드나들던 입구인데 모든게 새로워보였다.

버스를 타고 부릉부릉. 정거장을 세 개나 지나 쇼핑몰 앞에 도착했다.

하 이 쇼핑몰이 안생겼었더라면 어쩔 뻔 했냐며 혼자 속으로 호들갑을 떨고 문을 열었더니 그 후끈하고 탁한 공기가 밀려왔다. 예전엔 쇼핑몰의 그 탁한 실내가 싫어 잘 가지 않았는데 이날만은 그 공기마저 사랑스러웠다.

'내 관절은 아직 릴렉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아직 흐물거려. 조심해야해.' 애스컬레이터를 타며 지나치게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영화관으로 올라가서 팝콘파는 매점 앞에 섰다.

여느 때처럼 캬라멜팝콘과 콜라를 양손에 사서 우적거리며 입장하고 싶었으나 순간 팝콘안에있을지 모를 미처 익지 않은 옥수수알갱이가 내 약해진 치아에 영향을 줄까, 고개를 돌렸다.

영화관 매점에서 팝콘 나초 외 다른 메뉴는 거의 먹어보지 않아 순간 당황했다. 모유수유에도 영향을 안주면서 저녁을 먹지 않고 나온 나의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할 메뉴를 신중하게 선택하느라 꽤 오랜시간 서성댔다.

그래 허기도 달래고 소시지는 그래도 나름 잡고기니까 튀긴 옥수수같은 거보다 몸에 덜 나쁘겠지라며 택도 없는 생각을 하곤 핫도그와 비타민워러를 주문했다.

왠지 건강식을 고른 거 같아서 스스로 대견해하며 영화관 입장. 조심히 상자를 뜯어 핫도그를 한입 물고는 영화 상영전 광고를 보는데 세상에 이리 짜릿할 수가 없었다...........


영화 시작. 그냥 대사 하나하나가 머리에 쏙쏙 박혔다. 이 몰입도로 공부를 했으면 뭐가 되도 됐겠다.

마리옹 꼬띠아르를 좋아해 얼라이드란 영화를 망설임없이 선택했고 거기에 아름답고 반전이 있는 사랑이야기라기에 나의 일탈!을 채워주기 적합하겠다시퍼 골랐었다. 근데 웬걸, 왜 중간부터 출산하는 장면, 애기가 응애하고 우는 장면 등등 곳곳에 애기가 등장하기 시작. 집에 있는 춘이가 생각나 결국 끝날 때는 하도 울어 모자로 얼굴을 힘껏 가리고 나왔다.................

남편의 카톡이 왔다. '애기가 밥 먹고 싶어하는거 같은데 어쩔까?' 쿨하게 나온 나지만 결국 영화관을 나와 오분만에 실내복과 필요한 몇가지를 날라다니며 사고는 뛰....어왔다.. 사실 마음은 한참 세일하는 옷가게에 있었으나 춘이의 배고파 난리치는 얼굴이 떠올라 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마치 생애 첫 영화관람인듯한 외출이 세시간만에 마무리됐다.


배우들 연기는 좋았으나 스토리는 약간 진부했던 그 영화가 아직도 그렇게 울만큼 슬픈 영화인지는 전혀 판단이 안선다. 그냥 영화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밖에는...

다음엔 그냥 씬나는 애니메이션이나 봐야겠다 다짐하고는 간만에 두다리 쭉 뻗고 상쾌하게 잤다. 끝.


아, 세시간만에 춘이를 다시 보니 어찌나 더 사랑스러운지......춘이도 좋고 나도 좋고 남편도 좋....나? ㅋㅋ 암튼 앞으로는 주말에 잠시라도 혼자 꼭 외출하겠다 다짐했다.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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