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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Mar 22. 2017

 별안간 어머님

D+107, 내 멋대로 셀프 백일상 준비하며 지금 여기 깨어있기

드디어 많은 엄마들과 전문가들이 입모아 얘기하는, 육아사의 중요한 한 기점이 된다는 백일이 우리 춘이에게도 찾아왔다.

돌이켜보니 고작 100일인데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1. 쭈쭈 젖꼭지를 더 이상 안 쓰고(안쓴지 한참 되었고!)

2. 수유쿠션도 더 이상 안 쓰고

3. 수유 시 한쪽 다리를 받치기 위해 썼던 목욕탕 의자도 안 쓰고

4. 나에게 기적의 30분을 선사했던 피셔프라이스 바운서도 안 먹히고

5. 나에게 기적의 20분을 선사했던 백효* 신생아 아기띠도 안 먹히고

6. 화이트 노이즈 앱도 안 먹히고

7. 조리원표 그린맘 젖병도 안 먹히고

8. 흑백 초점책도 안 먹히고


1. 밤에 한번에 오래 주무시며

2. 일어나자마자 벽에 달린 샤오미 카메라와 눈인사를 하고

3. 소리를 내서 웃으며 저희에게 즐거움을 하사하시고

4. 일명 주먹고기 촵촵도 일찌감치 시작하셨으며

5. 아기침대 가드에 있는 범퍼의 땡떙이 무늬와 시끄러울 정도로 옹알이 대화를 하시고

6. 그동안 머리가 무거워서 하다 화내고 하다 화내고를 반복하다 그저께 마침내 뒤집기에 성공하셨으며

7. 대변을 누시고는 기저귀 갈라고 엄마에게 불호령 옹알이 명령을 내려주시고

8. 낮동안 식사횟수는 신생아때와 비교할 수 없이 무려 2-3시간에 한번씩.

9. 젤 중요한!! 50일 이전 그렇게 저녁 6시만 되면 앙칼지게 우시더니 이젠 이유없이는 그렇게 울지 않으신다.!!


너무나 졸음이 쏟아지는 지금 대략 생각나는건 이 정도이다. 정말 다행히 50일 정도부터 드라마틱한 변화들이 일어나서 조금 정신을 차리며 살 수 있었고, 확실히 100일 즈음이 되니 웃을 일들이 더 많이 생기는 듯하다.


원래 무슨 기념일을 수제로 예쁘게 챙기는 스타일이 못되는데, 참 자식...이란 존재가 이런 것인지 나도 우리 춘이에게 나름 의미있는 백일상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처음엔 그냥 거실 좌식 테이블에 빌려온 범보의자에 앉혀서 대략 하려 했으나, 앉혀놓고 보니 춘이 표정이 영 억울해보였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왔는지 옷방 베란다에 짱박아두었던 큰 책상을, 그것도 베란다문사이에 낑겨 넣을때 이삿짐 아저씨들도 고생했던 그 책상을 혼자 낑낑대며 거실까지 끌고 나와 세팅했다.

옮기면서 계속 든 생각은 '이거 놓쳐서 이 나무때기에 나 깔리면 저기서 해맑게 떙땡이 무늬와 옹알이 하고 있는 춘이는 아빠 퇴근 전까지 혼자 살게 되겠지..'였다. 정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조심성을 다 쏟아부어서 옮긴듯 하다.

책상을 옮겨놓고 저 위에 하얀천을 뭘로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고 검색해보니 이것도 일이었다. 생각보다 비쌌고 또 싼건 주름이 져서 영 거슬리고.. 아, 이불을 깔자. 마침 있는 흰 이불을 깔아보니 영 그럴듯. 뒷 배경에 주로 현수막을 치던데 현수막은 좀 과하다 싶어 집에 있는 매트를 뒤집어 놓으니 나름 흰 배경도 완성!

그 다음 무엇을 올려놓을까.

제일 먼저 춘이를 떠올리며 컬러링 작업을 했다. 눈을 감고 춘이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명상을 잠시 하는동안 각양각색의 컬러가 내 머릿속을 왔다갔다했다.

눈을 뜨고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을 열심히 색칠하며, 춘이가 어떤 컬러를 가지게 되던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을 다짐했다.



다음날, 날이 너무 좋아 아기띠에 춘이를 앉히고는 산책 겸사겸사 수수팥떡집을 찾아나섰다. 이 봄정취가 너무 낯설면서 설레어서 굳이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까지 가서 마침 주문이 들어와 한팩이 남은 수수팥떡을 사들고 들어왔다. 이 긴 시간동안 춘이는 아기띠에서 한번도 깨지않고 떡실신..세상구경 시켜주고 싶었는데..ㅎㅎ

그 뒤로 2일에 걸쳐 남편 퇴근 후 수유를 잽싸게 하고는 다음 수유텀이 오기 전까지 얼른 동네 다이소와 꽃집 등을 들락거리며 뭐 산것도 없는데 바쁘기만한 저녁을 보냈다. 나와 춘이에게 의미가 깊은 화분도 올려놓고 컬러를 맞추기 위해 알록달록 과일도 정성들여 골랐다.


전날 저녁, 사실 세팅이랄것도 없지만 난 이리 놓고 저리 놓고 한참을 백일상 배치에 푹 빠져 놀았다. 다해놓고는 그 어떤 프로젝트를 끝냈을때보다 더 보람을 느꼈다. 하 이게 엄마의 마음인가? 혼자 감동하며....ㅋㅋ

무엇보다 별거 아니더라도 하나하나 춘이를 생각하며 안하던 셀프 뭐시기를 하니 새로운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 또 내가 지금 춘이를 키우고 있구나 이 순간에 머물며 온전히 지금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보며 기뻤다.


앞으로도 틈틈이 다신 안 올 지금 이 시간들에 깨어있으며 춘이와 많은 추억 만들어야지.

넌 어떤 빛깔의 사람으로 자랄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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