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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운장 Jan 13. 2020

지리산 오케스트라의 정체

지리산 노고단 대피소

낯선 곳. 거긴 언제나 INN 있습니다.

대지를 돌아다니며 불과 하루 이틀 눈을 부쳤던 그곳.

INN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저 멀리 어둠 속에 자연이 있다. 산과 산이 포개져 있고 달빛이 산 사이를 비춘다. 그 어두운 새벽,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저 멀리 산들을 보고 있었다. 자고 싶다… 죽도록 자고 싶었다..


우리가 레몬일 때, 우리가 가진 건 시간밖에 없을 때, 뭔가 해야 되는데.. 뭔가 해야 되는데.. 생각만 하며 거리를 헤맬 때 우리는 아무거나 해야 했다.


지리산에 가자

친구 권효준이 가자고 한 걸까.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 전의 일이라 사실 뚜렷한 기억이 나진 않지만 중요한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강렬한 경험이었고, 이 경험을 우리는 잊지 않고 매번 만날 때마다 화제에 올리고 있다.


지리산 종주를 하자고 결정을 하고 그 전전날 나는 집에 있는 뒷산을 올라갔다. 약 2시간짜리의 코스. 처음으로 산 등산화를 신고 올라가는데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2박 3일을 계속 걸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객기다.


전날 밤 마트에 가서 즉석밥과 참치를 샀다. 2박 3일 내내 먹을 양식을 가방에 넣고 올라가야 했다. 등산 경험이 일천 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등산에도 경험이 중요했고, 그 경험이 필요 있는 물건과 필요 없는 물건을 구분한다.


다음날 지리산 화엄사에 당도한 우리는 절 앞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신발끈을 질끈 묶는다. 드디어 시작이다. 한국 산꾼들의 로망 화대종주. 화대 종주는 지리산 화엄사부터 대원사까지 가는 종주 길이다. 모두 그렇게 걷는다고 하여 우리도 주저 없이 이 코스를 선택했다.


화엄사 구경을 하고 시작된 길은 계속 오르막이었다. 끊임없이 오르막이었다. 등산의 경험이 거의 없고 근육도 없고 살만 쪘던 나는 허벅지와 무릎이 끊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한발 한발 내딛으며 올라갔다.


3인조 할아버지 그룹이 내려왔다. 종주를 끝내고 내려오는 길인 모양이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땅콩이 가득 든 비닐봉지 하나를 주시고는 하산길에는 필요 없으니 등산하는 자네들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백두대간에서 만나

하며 작별했다. 그 땅콩이 산을 올라가는데 얼마나 큰 보탬이 되었는지 모른다. 힘이 들 때마다 땅콩을 씹어가며 올라간 끝에는 노고단 산장이 있었다.


화대 종주를 하려면 꼭 이곳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 지리산 산객은 이 곳의 추억이 많으리라. 즉석밥을 끓여먹고 휴식을 취했다.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부서진 교회를 갔던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때의 그 장소로 돌아가고 싶다. 가슴 한쪽이 저리는 느낌이다.

내일 또 일찍 나가려면 잠을 자야 했다. 산장은 만실이었고 우리 방에는 술을 한잔 걸친 산객 아저씨들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다. 한두 명 코를 고는 게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아저씨들은 코를 골아댔다. 우리는 훗날 이 사태를


지리산 노고단 오케스트라

라고 부르게 된다.

밤새 한숨도 못 잔 나는 새벽에 나와 저 멀리 겹쳐 있는 검은 산들을 바라본다. 달빛에 저 멀리 산들이 보이고, 수묵화 같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 광경이 인상 깊었으리라. 잠을 자지 못했지만 새벽의 산은 순수했다.


다음날 등산 스틱에 의지한 채 다리를 절며 12시간을 걸어 세석 산장에 도착했다. 끔찍한 하루였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객기 부리지 말라고. 그다음 날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도달했다. 야호.


천황봉에서 최단 거리인 중산리로 하산했다. 대원사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고 우리는 너무 힘이 들었고 먹을 거라곤 즉석밥과 참치캔 밖에 없었다.


친구 효준과 나는 가진 게 시간과 객기 밖에 없었다. 우린 이 화중 종주를 계기로 우리 둘을 억지 산악회라고 불렀다. 우린 억지로 간다고.


그 뒤로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때보다는 등산 경험이 쌓였고 제법 괜찮은 장비와 먹거리로 큰 산을 오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기억난다.


내 첫 번째 산장 노고단 대피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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