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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운장 Aug 16. 2021

응급의학과 의사의 에세이

<만약은 없다> 리뷰

군 시절 시골의사 박경철의 에세이를 본적이 있다. 일과가 끝나고 내무반에 들어와 혼자 읽는데 엄청난 몰입이 왔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묶은 책인데 소재가 자극적이었다. 의사 생활이 원래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십몇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하는 내용은 할머니가 손자인 갓난아기를 끓는물에 끓였다는 것이었다. 치매 노인이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남궁인이란 이름은 몇번 들어본적이 있다. 강서구 피씨방 살인 사건때 썼던 글을 본적이 있다. 문체가 비장하다. 글쓰는 이의 심성이 비관적이거나 나쁘게 말하면 멋을 좀 부린 느낌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만약은 없다>는 응급 의사인 남궁인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병원 에피소드로 가득한 책이다.

끔찍한 에피소드

박경철의 에세이를 읽을 떄와 비슷한 감각이 왔다. 그 중에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한 중년의 남자가 깨어난 뒤 이제 정신과 치료도 잘 받겠다고 하고 두 시간 뒤에 투신 자살로 다시 응급실에 실려온 사연이 있다. 다른 이야기는  한번 내원했던 말기암 환자가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응급실에 교통사고로 죽음에 직면한 여자가 실려왔다. 이후 실려온 사람은 비교적 경상인 중년의 남자였는데 얼마전 내원했던 말기암 환자였다. 극심한 통증에 이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려 차를 몰던 도중 끔찍한 고통에 그만 교통사고를 내버린 것이었다.


비장한 운명론을 느끼다

읽다보면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제발 이 환자가 살아나길. 하지만 독자가 희망하는 반전의 스토리는 없다. 죽은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산다. 매일밤 그가 돌보는 환자는 100여명이 넘었다. 죽어서 들어오는 사람, 살아서 나가는 사람, 살아서 나가지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수많은 사연이 있다. 어떤 대목은 의사가 히어로 무비의 캐릭터 같이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한 의사가 짊어지는 짐은 만만치가 않았다.


바쁜 하루 까칠한 의사에 대한 공감

그리고 왜 의사들이 그리 까칠한지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 의사와 면담을 해보면 보통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말투 때문이다. 권력에 휘둘리는것처럼 느껴진다.  그 부분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이국종 교수 조차 자기를 노가다라고 표현한다. 돈은 많이 받을지 몰라도 격무의 연속이다. 사람이 일단 잠을 자지 못하면 예민해질 수 밖에 없고 체력에 한계에 부딪히면 나 위주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환자를 성심성의껏 돌봐야겠다는 결심을 하더라고 시간이 지나면 감정 노동을 할 수가 없음을 느낄 것이고 또한 감정이 무뎌져 갈 것이다.


환자와 환자 가족 입장에서는 고통과 죽음이 비일상적, 특별한 일이라면 의사들에게 죽음은 흔한일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일로 점점 무뎌져 갈 것이고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돌봐야 하는 환자는 많고 시간은 없고 에너지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까칠하고 포악해져 간다.

환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선 병원 시스템이나 의사와 간호사들이 돌보는 환자수가 줄거나 해야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알수가 없다.


하지만 읽다보면 글의 퀄리티가 후반부로 갈 수록 점점 떨어진다. 초반부의 밀도 있는 글들 이후 신변잡기적인 내용으로 흘러가며서 지루한 감정이 들었다. 에세이집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1,2장 반짝 괜찮은 글이 있고 그 다음엔 그냥 그저 그런 글들을 붙인다. 페이지는 채워야 겠고..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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