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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gar 소영 Nov 23. 2018

행복한 이유 만들기

하루가 행복했던 이유가 나 였어

하루가 가득 행복했다.  대봉!

내가 너의 표정을 그려주기 전에는 너는 다만

하나의 대봉일 뿐이었다.

내가 너의 표정을 그려주었을 때

너는 우리에게로 와서

행복을 전하는 대봉이 되었다.    

( 김춘수 / 꽃 = 읽고서~ )



전화벨이 울리고 "어서 내려와 봐~" 하는 소리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채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옆 동네 언니가 장보고 들어가는 길에 나에게 "대봉"을 나누어 주려고 온 것이다.

핑크색 에코백에 이름처럼 커다란 대봉 10개가 담겨 있었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어야 하는 감이라며 아주 달콤할 거라고 장담한다며 나에게 안겨주었다.  단단한 대봉을 품에 안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붉은색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듯하고 주황색에 더 가까운 색일까.  식탁 위에 10개 모두 꺼내어 두었다.  옹기종기 모인 모양새가 왠지 미소를 번지게 했다.  아직 먹을 순 없지만 언니가 장담한 것처럼 분명 진하게 달콤할 것 같은 기대에 한 번 더 미소를~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대봉을 선물 받았다며 자랑했다.  이야기를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더 크게 설레었다.  분명 언니에게 대봉을 받아 품에 안았던 순간 반가웠고 적당히 고마웠다.  식탁 위에 올려두고 조금 더 고맙고 즐거웠다.  가족들에게 대봉을 소개하면서 고맙고 즐거웠고 설레었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식탁 한편에 모아둔 대봉에 눈길이 갔다.  뭐지 ~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순간 나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며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다.  며칠 전 구입해 아직 펼쳐보지 않은 책 (생각의 탄생)까지 올려두고서 '찰칵' 사진을 찍는다.  행복했다.

 

                    

만족함으로 사진을 찍고 그대로 앉아 책을 읽었다.  물론 독서의 시간은 그리 길진 못했다.  예사하지 못했던 대봉의 출연으로 나는 다양한 순간을 만들어냈고,  기쁨이 조금씩 더 커져가는 것도 느꼈다.  나의 이런 모습으로 가족들도 한번 이상 웃었다.  나만큼 대봉이 특별해 보였는지 아들 녀석이 손가락으로 대봉 하나를 꾸욱 눌러 상처를 냈다.  상처에 흠짓 놀란 아들 녀석은 조용히 사라졌고,  잠시 뒤 식탁으로 돌아온 나는 손톱에 상처가난 대봉을 발견했다.  아주 잠깐 동공이 흔들렸지만 별일 아닌 듯 네임펜을 가져와 상처 난 대봉에 '밴드'를 그려 넣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대봉에 눈, 코, 입...  그들은 웃고, 울고 있었다.

오늘 난 분명 특별한 대봉을 만난 것이다.  


우연히 이웃이 선물한 대봉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나는 작은 기쁨의 싹을 잘 가꾸어 나의 하루가 가득 행복해지도록 만들었고, 나와 함께 하는 가족 모두에게도 선물했다.  나는 행복을 만들어 내고 나누어 주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  우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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