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잘못이었다라고 생각한 것이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이 된 날.
어제의 일이다.
당직근무가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 아무도 없는 적막하고도 심심한 집에 들어가자니 답답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빠르게 가고싶지 않았다. 용산에 들러 게임CD라도 하나 사갈까?라고 고민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 5분이면 오던 버스가 당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보지 못했던 버스번호가 내 앞을 자꾸 지나갔다. 이상한 마음에 안내판을 보았지만 집회로 인해 안내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 뭐, 이만큼 기다렸으니 금방 오겠지? '
라는 마음으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10분을 더 있고나니 버스가 안오는게 아닐까? 노선이 변경된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시작했다. 몸도 지쳤는데.. 빨리 집에가고싶은데.. 라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약간 돌아가는 것으로 봤었던 그리고 우리집 근처로 가는 버스가 왔다. 상황이 대충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이 버스를 타고 가는게 낫겠다라는 마음에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한번도 타보지 않았던 버스의 구석에서 익숙한 노선을 지나면서도 난 용산에 들렀다갈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몸을 더 움직이고 싶지 않았는지 어느새 한강을 건너고 있었고, 터널을 통과하기위해 버스가 가는 중이었다.
' 어? '
터널로 들어가리라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돌아간다. 황급히 어플을 켜서 노선을 확인해본다.. 생각보다 엄청 많이 돌아서 간다.. 참.. 집 한번 가기 힘들다.
뭐, 딱히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가서 혼자 누워있는것보다 하루쯤은 이렇게 가는것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그저 버스가 내가 원하는 정류장에 도착할때까지 창밖을 응시했었던 것 같다.
지나왔던 한강을 또 마주하며, 한강을 크게 돌았고 보지못했던 동네의 풍경을 지나 15분이면 도착했을 집앞 정류장에 40분이 걸려서 도착했다. 그런데 지친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안좋은 것은 아니었다. 항상 지나면서 마주했던 한강의 모습이 아닌 또다른 한강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가보지 못했던 다른 동네의 건물과 사람들, 풍경들을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힘들도 짜증날법하게 돌고 돌아서 도착했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계발서나 청춘을 위한 메세지에는 하루를 알차게 살아라, 보람차게 살아라라고 메세지를 던지곤 한다. 그리고 그 메세지들은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여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아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목표를 위해서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한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마치 RPG 게임에서 캐릭터 육성법이 있고, 그 육성법을 모두가 따라가는 것처럼. 육성법과 다르게 키워진 캐릭터는 최적화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내 하루 중에서 쓸모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그런 생각으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달려온 나에게 어제의 그 사건은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정류장에 빠르게 도착하는 버스를 타지 않아서 한강의 다른 얼굴도 볼 수 있었고, 내가 알지못한 새로운 동네의 풍경도 알 수 있었다. 무미건조한 혹은 지루한 내 삶과 기억 속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잘못 올라탄 버스가 나에게 새로운 경험들을 선사해주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버스를 잘못 올라탄 것이 굳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종점에서 내가 걸어온 혹은 뛰어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잘 살아왔는지 혹은 재미있게 살아왔는지 생각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나의 이런 드문드문 신선한 기억들이 직선으로 그어진 내 삶에 가지처럼 무늬로 남아 알찬 삶으로 느껴지는 요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잘 살기위해 살아오는 삶보다는 이런저런 사건으로 그 굵직한 선에 스크래치도 그어지고, 곡선도 그어지는 것이 그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을 되돌아보았을 때 심심하지않은 인생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렇게 생각을 하고보니 어제의 그 잘못탄 버스는 내가 잘못탄 것이 아닌 내가 지루한 삶에 새로운 것을 가져오기 위해 올라탄 새로운 버스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