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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대 질서

모두가 설계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by 몰경계

모두의 고민


가끔 커리어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본다.


"앞으로 내가 뭘 더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인턴이 저만큼 일하는 기분을 느껴요."


"디자이너 면접을 보는데 데이터와 비즈니스의 구조까지 물어보더라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요."


그 고민들은 기획자의 고민과 멀지 않다. 나는 어떤 기획자이지?라는 고민은 주니어의 딱지를 떼는 순간부터 끝없이 이어진다. 데이터분석형으로 프로덕트의 세부 내용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는 기획자인지, 비즈니스의 임팩트를 중시하는 기획자인지, 서비스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기획자인지, 기능개선하고 운영만 전담하는 기획자인지, 이도저도 아닌지...


모든 고민은 일의 성취감, 커리어의 로드맵과 연관되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않고, 모든 경로는 스스로 정해야만 한다. 특히 기획자는 너무도 애매하고 모호한 포지션이다.






변화하는 시대 질서


시대가 변하고 있다. AI가 인턴을 대체한다. 인턴조차 AI를 사용한다. 모든 분야에서 AI를 활용하지 않는 인력은 없다. 자기만의 확고한 커리어가 있고, 분명하고 깊은 도메인 지식이 있지 않으면 기획자로서든 디자이너로서든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변화하는 시대 질서.


AI의 등장은 결국 모두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과 같았다. 오더를 받고, 주문위탁생산하는 업체처럼 기획서를 찍어내고, 디자인을 양산하고, 개발물을 복제하듯 살아서는 더 이상의 기회는 없는 세상이다.


몇몇 사람은 오해한다. AI 시대가 되었고, 프롬프트 놀이로 대부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더 편해진 것 아니냐고.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편해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당장은 간단한 코딩은 커서든 클로드 코드든 무수히 많은 도구가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주겠지만, 그것에 종속되는 만큼 '사고하는 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AI가 업무의 전반을 장악하는 시점에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인간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없다.


"디자이너가 왜 데이터까지 봐야 해요?"

"이제는 내가 인턴보다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시키는 것만 해야 하는 기획자인가요? 답답해요"


그 고민들은 무료하다. 무의미하고 어쭙잖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요구사항은 더 다양해지고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세태다. 공급은 쏟아져 나오고 수요는 줄어드는 데 한가한 고민을 할 시간은 없다. 개인을 품어줄 역량이 없는 조직이라면 얼른 빠져나와야 한다. 이유를 묻고, 불안해하고, 답답해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






AI와 인간의 할 일은 다르다


많은 전문가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인간 유형을 몇 가지로 구분하여 예견한다. AI에 무지한 사람, AI를 활용하는 사람, AI를 만드는 사람.


나는 거기에 한 번 더 쪼개보고 싶다. AI 도구를 활용하여 설계하고 판단하는 사람과 AI 도구를 당장의 업무에만 활용하는 사람으로.


MCP로 AI 도구를 자신의 업무 환경에 통합하느냐 마느냐, 어떤 AI 도구를 활용하느냐 마느냐, 어떤 프로세스의 단축을 가져왔고, 얼마큼의 비즈니스 성과에 기여했느냐는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얼마큼 자신의 사고력을 유지, 확장해왔느냐이다.


대부분의 리서치, 간단한 제작, 자동화는 AI가 도맡아서 해주는 시대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사고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최소한 이런 오류는 어떻게 잡아야 하지?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지? 비즈니스 성과를 측정하려면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다면 지금은 아주 작은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바로 AI에게 물어보고, 도구가 이끄는 대로 붙잡혀 따라가게 된다. 사고하는 힘이 없어지는 것이다.


AI는 인턴이다. 인간은 모두 마이크로 비즈니스 오더이다. 내가 하는 일의 최종 결정권자. 여러 AI 사원을 데리고 일하는 조직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리더란 사고하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도구가 필요하고 어떻게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하는지, 일의 효율성과 성과 달성을 위해서 어떻게 일을 배분하고 측정하고 개선할 것인지를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작은 ui 디자인 하나. 사소한 기능 개선 하나조차도 ai에 사고하는 힘까지 맡겨버리는 리더는 이젠 살아남기 힘들지 않을까.


이제는 조직 간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개인 간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시대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두 번 다시 업계로 돌아오지 않겠다 했었다. 그럴 역량도, 그럴 기회도 없다 여겼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서 다시 엇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업계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사고하고 판단하고 대안을 탐색하는 힘은 잃지 말자는 생각이다. 결국 앞으로는 인간 본연의 매력만이 경쟁력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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