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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 Oct 06. 2021

발레를 하기 전(2)

운동의 영역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운동'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일 줄 몰랐다.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거나 무언가를 꼼지락대고 만드는 걸 좋아해서

바닥 지박령처럼 자란 나에게 운동은 

쓸데없이 몸을 많이 움직이며 땀을 내고 기운을 소모하는 일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건 좋아해서 서너시간은 너끈히 걸어다닌 덕분에

결혼 전에는 그래도 소량의 근육은 붙어있던 모양인데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그나마 실가닥 같이 붙어있던 근육이 모두 소진된 모양이었다.


결국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른 나는 그제서야

이 운동 저 운동 기웃기웃 해보았다.


1.

먼저 '운동'이라하면 떠오르는 헬스장을 등록해보았다.

트레이드 밀은 고난이었다. 

나는 왜 걷고 있는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이 고난은 언제 끝나는가.


귀에 이어폰을 꽂으면 거추장스럽고

앞에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놓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막을 띄우기엔 걷는 움직임이 빨라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되겠다. 나의 영역은 아니다.


2.

재즈 댄스를 등록해보았다. 빠른 비트의 음악.

무작정 따라하는 동작. 뻣뻣하기 짝이 없는 내 몸.

일단 음악이 정신사나워서 동작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2주째(그러니가 4회차)에 접어들무렵,

나이가 좀 있고 성질이 괄괄한 원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십수년을 가르쳤지만 이렇게 뻣뻣한 회원은 처음이라며

환불을 해주셨다.


3. 

조용하고 차분하고 정적인 게 필요하구나.

요가를 등록했다.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 자세를 바로 잡는 시간.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요가를 다녀오면 머리가 어지럽고 힘들어서 30분이라도 잠을 자야했다.

괜찮은 거 같은데, 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요가학원을 가는 일이

너무나 버겁고 힘들었다.

다녀오면 좋지만 가기가 힘들고, 툭하면 장염이 도져서 요가 학원보다는 병원을 가야했다.


잠시잠시 몸이 풀어지는 느낌은 좋았지만 워낙에 나의 상태가 안좋아서 그런지

몸이 호전되는데는 너무 더디게 느껴졌다.


4. 

수영을 등록했다. 수영은 솔직히 나의 의지는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아파트 헬스클럽에 수영이 있었고, 물에도 뜨지 못하는 나에게

어머님이 권유하셔서 등록하게 되었다.

수영은 두려움의 영역이었지만,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수영 선생님은 내가 소질이 있다고 했다.

발을 쭉 뻗어 흔드는 동작이 단박에 되는게 좋다고 하셨다.

더구나 수영의 마무리는 배영이었는데 배영을 하고 나오면 목과 어깨가 너무 시원했다.

이틀은 두통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접영을 들어서면서 난관에 봉착하고 지지부진해지던 차에,

심한 독감에 걸렸다. 

핑계삼아 조금 쉬는 사이에 수영 선생님이 그만두셨고

새로 오신 분과 기존 회원들의 레벨 구분이 뒤섞이면서 이래저래 소란이 조금 있었다.

그리고 센터가 당분간 닫았다.

쉬다보니 수영이 점점 멀어졌고 겨울을 핑계삼아 더더더 쉬게 되었다.

봄이 되었지만 돌아가지지 않았다.


5. 

자전거를 구입했다.

자전거 타는 법은 한 번 익히면 안까먹는다고 누가 그랬나.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친구들이 가르쳐줘서 혼자 두발자전거를 탔었다.

딱 그 날만.


더블린에서 지낼 때 클래스메이트가 자전거를 끌고와 공원에서 나를 가르쳐주었다.

마침내 혼자 두발 자전거를 타고 돌자, 

그 전에 연신 넘어지며 고군분투하던 나를 보던 공원의 노숙자 무리가 같이 환호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 날만 탔다.


나의 운동 신경은 태초에 탑재되지 않은 모양이었나.

자전거를 사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했다.

딱 그 날만.

남편과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하는 나의 로망은 아주 깔끔하게 접었다.


6.

둘째의 출산후, 몸조리 겸 틀어진 골반과 전체적인 체형을 잡기 위해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딱 한 번 수업해보고 바로 1:1로 바꿨다.

도저히 누군가를 따라갈 수 없는 체력 민폐자였으므로.

필라테스는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운동을 통털어서 가장 좋았다.

별 동작을 격하게 하지 않고 

시끄러운 음악도 없고

사지를 시원하게 쭉쭉 늘려주는 시원함.

단점은, 기구가 없으면 집에서 혼자 연습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금액적 부담이 조금 컸다는거.


7. 

그리고 이제 나의 종착지, 발레를 만났다.

발레를 만나고 나는 사지를 재조립하고 

저세상 시원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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