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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 Mar 02. 2022

리나스 하이

마흔에 시작하는 발레

살면서 '러너스 하이'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운동이란 그저 힘들고 땀나는 무식한 육체고문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운동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무늘보처럼 미동없이 앉아 책만 읽는게 좋은 시절이 있었다.


그나마 20대에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해도 살도 안찌고

딱히 어디 아픈데 없이 그저 몸이 좀 허약체질인가보다- 하는 정도로 살아왔는데

출산 후에 내 몸은 세상 쓸데없는 거대한 살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움직이는 족족 아프고 늘 더부룩하니 소화는 되지 않았고

굽어드는 등과 라운드 숄더 덕분에 목을 타고 오는 통증.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운동을 하라는 한의사 선생님의 굳건한 말을 듣고나서

어기적어기적 무언가 몸을 움직일 만한 걸 찾아보기 시작했으나

이거 조금, 저거 조금하다가 관두는 바람에

시간은 버리고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 몸을 쓰고 땀을 흘리고 

아픈 발과 발목 통증을 무시하고 미치게 빠져들고 있다.

정말 무식하게 말이다.



-

발레를 하면 처음에 몸내부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 웜업으로 매트동작을 하는데

이 시간은 꽤 고통스럽다.

아주 기초적인 스트레칭을 3분만해도 등에 땀이 송글송글 시작된다.


다양한 자세들이 있고 선생님께서 돌아가면서 지시하시지만 특히 힘든 몇가지가 있다.

그랑바뜨망을 정면- 좌- 우- 뒤집기 순서대로 해서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를 8-4-2-1 의 회차대로 진행하는데 지옥이 따로없다.

숨이 차고 땀이 눈으로 들어가고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그 다음은 힘든 건 공운동이다.

아이들이 갖고노는 통통하고 말랑한 공을 발목사이에 끼우고 누워서

다리를 90 도로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아주 천천히 4박자에 맞춰서 올라가고

다시 4박자에 맞춰서 내려오되 땅에 발이 닿으면 안된다.


엎드려 마시는 호흡에 양팔을 벌리고 날아오르는 상체 운동과 플랭크는 양반이다.


이 모든 동작들이 너무너무 싫어서 매트 동작 건너뛰고 바 워크와 센터 동작만 하고 싶은 시간도 있었는데

이 시간을 나 죽었소...... 하고 지나가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숨이 덜 차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은 힘들기는 커녕 이 호흡에 맞춰서 하라고 한다면 한시간도 넘게 거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힘든 동작인데 몸은 가뿐하고 호흡은 안정을 찾아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환희에 가득 찬 상태로 매트 동작을 하고 바 워크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뭐랄까, 내 몸의 척추 하나하나를 곧게 펴서 혈관까지 그 곧음이 쭉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나서부터는 매트 동작이 두렵지가 않아졌다.


그저 내가 느꼈던 그 환희만 기억이 난다.

아마 러너스 하이가 이런 기분이라면

내가 느끼는 건 (발레)리나스 하이 정도 되려나.


여러분, 발레합시다! 

이 좋은 걸! 같이 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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