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그든 아저씨
바삭한 밀가루 속에 달콤한 팥을 품고 있는 붕어빵은 겨울의 일등 간식이다.
오가며 붕어빵을 볼 때마다, 한 입 베어물 때 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다.
살면서 내가 무슨 글을 쓰거든, 아니면 그냥 일기라도
꼭 이 분의 흔적을 쓰고 싶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살아오는 동안 가끔씩 내 지난 기억을 두드리는 분.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후문 옆 담벼락 모서리에서 붕어빵을 파셨던 할아버지다.
그 당시 붕어빵은 하나에 100원이었다.
늘 모자란 용돈이었지만 학교를 오가며 붕어빵을 사먹었기에 할아버지랑 제법 안면을 트고 지냈다.
쉬는 시간에는 낮은 담장 너머로 손을 내밀어 붕어빵을 사먹었다.
가끔은 붕어빵을 사먹으러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보러 갔다.
아니 자주.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주 시덥지않은 얘기들을 제법 많이 나누었고
매일매일 붕어빵을 사먹거나 할아버지랑 얘기하는 즐거움이 컸다.
가끔 할아버지는 내게 공짜로 붕어빵을 주셨는데 한 번도 사양하지 않고 덥썩 받아먹었다.
내 돈 내고 산 붕어빵을 정신없이 먹다가 손가락을 같이 앙 깨물면 천천히 먹으라며 한 마리를 더 놓아주시던 분.
쌍꺼풀이 또렷하고 눈썹이 짙으신 분.
코가 오똑하고 얼굴선이 날렵하셨는데 어릴 땐 몰랐는데 커서 기억을 떠올리면 진짜 미남이셨다.
시장을 오가며 엄마도 붕어빵을 한 봉지씩 사주셨고 그 때마다 할아버지는 꼭 덤을 주셨다.
그러다가 봄이 되고 붕어빵 포차가 한동안 닫혀있기도 했다.
며칠 후에 다시 할아버지가 나와계실 때 안부를 여쭈면 그냥 바빴다고 하시고
또 다시 닫혀 있곤 했던 붕어빵 포차.
그렇게 오락가락하던 시기가 지나고, 붕어빵 포차가 한동안 길게 닫혀 있었다.
그 사이에 6학년이 된 나는 친구들과의 시간에 바빠졌고 점점 그 자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포차도
나와 매일을 수다를 떨며 웃고 웃던 할아버지도 잊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 붕어빵 포차가 있던 사거리 골목 한 복판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소주병과 바닥에 누워계셨다. 대자로.
어린 맘에 할아버지가 왜 죽은건가, 겁이 더럭났고 다가가지 못하고 울면서 그 옆에 서있다가
어른들이 몰려오고 엄마가 뒤로 나를 잡아끌면서 그냥 지나쳐왔다.
소문은 무성했다. 아들이 보러오지 않고 버렸다고도 했고 전과자라는 얘기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화가 났다.
그 사람이 어떻든, 누구든지간에 나에게는 따뜻한 미소를 나누던 친구였다.
어린 아이의 사소한 얘기를 들어주시고 대답해주시고, 뜬금 없는 엉뚱한 질문을 받아주시던 분.
공부 열심히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분이었다.
그 후로 다시는 뵙지 못했지만
어쩐지 나의 마음 한 조각이 늘 거기에 머무르는 느낌.
잘 계시는지.
그 때 힘들었던 시간을 잘 지나오셨는지
늘 마음 한 켠에 아프게 지내시는 그 분.
어린 꼬마친구를 무시하지않고
항상 따뜻하게 들어주시고 웃어주시던 그 미소가 선해서
나의 마음 한구석에 오래오래 웃고 계시는 분이다.
당신을 오래동안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실런지.
그 꼬마가 이제 커서 아들을 둘이나 키우는 아줌마가 되었는데......
내 기억에는 아직 젊은 그 시절 모습으로 남아계시는데,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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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내게 남겨주신 유산이 있다.
식탐이 많은 내가 먹을 것을 나누는 마음을 주셨다.
30분 기다려 산 붕어빵을 들고 신호등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다 팔려버린 붕어빵을 사지 못해 엉엉 우는 아이와
그 아이를 달래느라 안절부절인 아이 엄마와 나란히 서게 되었다.
혹시나 그 엄마가 싫어할 수도 있을까 걱정하면서
소심하게 붕어빵 먹을래?하고 아이에게 건네주었더니
낯선 사람이 주는 붕어빵을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받아준 아이와 고맙다고 말해주는 아이 엄마 덕분에
내가 행복했다.
내가 다른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학원 수업 후에 배가 고파 떡꼬치를 사러 온 한 아이가
카드 오류로 결제가 안되 발을 구를 때
옆에서 선뜻 사줄 수 있는 마음을 나에게 남겨주셨다.
참 별거 아닌 일들이지만,
어린 마음에는 지금 눈 앞의 작은 것이 간절한 순간들이 있다.
나의 친절을 받은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호의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늘 웃음으로 기억되는 붕어빵 할아버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