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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미 Jun 11. 2018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법망을 비켜간 범죄.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



법망을 비켜간 범죄.  

 여기 양육권을 두고 논쟁중인 부부가 있다. 올해 성년이 되는 딸 조세핀은 해당되지 않지만 이제 11살이 된 줄리앙에 대한 권리를 양측 부모의 주장이 팽팽하다. 줄리앙은 자신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싶다는 의견을 엄마 미리암과 변호사를 통해 피력하지만 법은 그 둘의 의견을 모두 듣고는 두 사람의 의견을 절충할 것을 권고한다. 법은 법의 잣대로 봤을때 양측에게 공평해보이는 판결을 내린다. 아버지 앙투완에게 격주로 아들을 만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 비극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 

 법은 양쪽에게 분명 공평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러면서 간과되어진 것도 있었다. 남편 앙투완이 미리암을 구속하기 위해 아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렇게 되면서 줄리앙과 미리암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가해자와 정기적인 대면을 해야만한다. 이 모든 일이 어른들의 선택으로 초래된 일이었기에 어른들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하는 부분은 있다지만 아이의 입장은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생활에 균열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최근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전남친의 스토킹에 시달리던 여자가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마침 현행범으로 남자가 체포되었단다. 그런데 경찰이 남녀사이의 일은 그냥 조용히 당사자들끼리 처리할며 남자를 훈방조치했단다. 그런 사회에서 여자는 그냥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며 살아야하는 걸까? 언제 또 남자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정도가 심해질 경우 목숨에 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우리 사회는 왜 항상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외양간을 뜯어 고치는 것일까?  

 이 영화도 항상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범죄’에 대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아마도 스릴러장르를 표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다정하게 부르는 앙투완의 모습 뒤에 숨겨진 폭력적인 면모가 영화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미리암과 줄리앙은 일어날지도 모를 범죄의 가능성 속에서 공포에 떨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열한살 남자아이가 격주로 아버지와 일대일로 대면하며 느꼈을 공포. 그것은 오로지 아이혼자 겪어내야할 공포다. 엄마가 개입할 수도, 국가나 법망이 개입할 수도 없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어떤 범죄가 일어난다면 이 아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그저 당하는 것 외엔 뭘 더 할 수 있을까? 


주변인물들에 대하여 앙투완과 미리암의 딸 조세핀 

 그녀는 이제 곧 성년이기 때문에 이 가족이 대면한 문제이셔 조금 떨어져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임을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경쓰고 싶지 않아한다. 그녀는 오직 앞으로 자신의 미래에 몰두할 뿐이다. 콩쿨을 준비하고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심취한다. 그녀는 관계자이지만 타인이고 싶어하는 듯하다. 어쩌면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서 있는 조세핀은 혼자 어른이 되어야하는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장 많은 조언과 도움이 필요한 시점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어느정도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가족이 주지 못하는 안정감을 주는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더 가족같았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터기를 하는 조세핀의 발을 카메라가 오래 조망하는 장면이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오픈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조세핀은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이 지옥같은 기존의 감옥을 떠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실 나도 책임지지 못할 결과를 초래해버린 철없는 10대로 생각했지만) 하지만 그녀도 엄마에 대한 연민은 있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 아버지가 왔다는 사실을 알면서 엄마가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엄마를 계속 주시한다던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아니 나서지 않는다기보다 나설 수 없었던 건 아닐까…  


주변인물들에 대하여_ 옆집 사람.  

 예고편에도 나왔던 구멍난 문으로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던 옆집 사람. 미리암과 줄리앙을 절제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준 바로 그 사람. 그 사람은 아마 우리모두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크고작은 폭력들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는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타인의 일이기에 참견할 권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참견하고 싶지 않을지도, 그리고 알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는 것. 그녀의 시선이 딱 그 입장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분명 선의를 베풀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 선의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평온한 내 생활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온 선의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안전과 안위를 걱정해서였을까? 결과가 무엇이었든 그녀는 미리암과 줄리앙을 위기에서 구했다. 딱 거기까지. 그녀는 앞으로도 그 정도의 시선과 거리를 유지하며 적당히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지 않을까?  

 영화가 너무나 많은 질문을 던지고 너무나 ?표인 상태로 엔딩을 맞이하는 바람에 한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끝나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프랑스 영화가 난해하다고, 이 엔딩이 무슨 의미지? 라는 사람들 사이로 엔딩 음악도 흐르지 않는 영화의 엔딩을 맞이한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인 것도 같다.  나는 이 영화가 너무 리얼해서 불편했다. 분명 픽션일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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