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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미 Jul 16. 2018

[영화] 변산

젊음이여. 오래 그곳에 있거라!


변산 

이 영화. 뜨거운 청춘을 지나는 이들의 고군분투 스토리라고 생각하고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사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청춘들의 과거청산 프로젝트였다. 나처럼 부산에서 기를 쓰고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서울 거주 지방민들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영화랄까? 애증의 고향이여…. 주인공 학수에게도 고향은 그런 곳이었다. 


팍팍한 서울살이. 래퍼로 금방 성공할 줄 알았는데 못된 서울에서 월세는커녕 밥 벌어먹기도 쉽지 않다. 고시원에서 지내며 랩을 쓰고, 이런저런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보지만 계에속 떨어지고 만다. 그러던 중 고향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갑자기 변산으로 소환!  


아. 그곳에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있었다. 학교에서 힘 좀 쓴답시고 친구 왕따 시키던 못난 나도 있었고, 미경이에게 말도 못 하여보고 끝내버린 비겁한 첫사랑의 풍경도 있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견딜 수 없던 슬픔도 있었으며, 그런 어머니의 장례식마저 참석하지 않아서 꼴도 보기 싫은 병든 아버지도 있었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볼살 통통했던, 아마 미경이 친구였던 것 같은 선미도 있었고… 학수는 아마 서울 생활을 하며 아직 기깔나지는 않더라도 나는 도시인이다. 나는 지방에서 벗어나 꿈을 좇으며 배 타고 고기 잡는 인생, 혹은 아버지처럼 조직에 몸담은 비열한 거리에 나올 것 같은 인생은 멀리하고 세련된 삶을 살고 있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곳에는 애써 내가 벗어놓고 간 허물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학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심지어. 반가워하면서… 어쩜 이리도 고향은 발을 내딛는 순간 모든 것을 한방에 되돌려놓을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학수가 맞닥뜨린 현실은 사실 그리 만만한 게 없었다. 한때 왕따의 주동자였던 학수는 이제 왠지 피해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 친구가 서서히 웃으며 복수의 날을 갈고 있는 것 같고... 심지어 예전에 지금의 래퍼 심뻑을 있게 한 시 쓰던 실력으로 썼던 잃어버린 노트 속 자신의 시로 신춘문예에 등단해버린 국어선생이 있고, 심지어 그놈은 학수의 첫사랑 미경이랑 열애 중이고… 어쩜 이렇게 다 꼬일 대로 꼬였는가….?  그리고 아버지. 조폭 생활을 하던 아버지. 그래서 신변에 위협이 될 것을 두려워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식장에 얼굴도 안 비췄던 그 원수 같은 아버지가 시한부라니. 학수는 이 모든 사실과 맞닦뜨리며 자신을 이곳에 불러드린 선미에게 슬슬 짜증이 치솟는다.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들, 아니. 모르고 싶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학수를 덮쳤기 때문에… 그런 학수에게 미경은 이렇게 말한다.  

“값나가게 살진못혀도 후지게 살지는 말어.” 

그래 학수는 후지게 살고 있었다. 사실은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들에 눈감고 살아보려 했다. 하지만 사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제대로 된 마무리가 있은 후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미경은 망설이는 학수에게 그런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학수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이곳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소이며, 아마도 학수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학수는 그렇게 자신의 과거와 하나하나 대결을 한다. 


자신의 인생이 아버지 때문에 피해자의 인생이었다고 착각 했던 학수는 사실은 왕따 가해자이기도 했으니 그 친구와의 몸으로 하는 뻘 싸움 화해를 시전 한다.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었던 첫사랑도 원준과 용대의 애정싸움으로 번지며 학수는 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렸으며, 원준에게 빼앗겼던 시. 그 빼앗김에 대해 화가 나지만 아무 말할 수 없었던 사실에 대해 부채의식처럼 남아있던 마음의 빚은 미경과의 노을을 보며 떨쳐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욕하며 병원 마당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언뜻 보면 후레자식 같아 보이는 방법으로 한판 붙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음을… 그렇게 학수는 변산에 돌아와서 자신이 매듭짓지 못했던 일들을 마무리한다. 제대로 끝낸 것이다.  


이제 학수는 무대에서 진짜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써서 써 내려가던 가사는 이제 학수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학수는 그렇게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 변산에 갔다 왔다.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 학수 인생이 그다지 잘 풀릴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고, 이제는 아내가 된 예쁜 선미가 있고, 밉지만 이제 화는 나지 않는 아버지도 있고… 예전에는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과 화해했기 때문에. 이처럼 지긋지긋했던 고향 변산은 학수가 학수 자신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꼭 거쳐야했던 청춘의 통과점이 되었다. 


이준익 감독님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거칠고, 서툴고, 펄펄 끓는다. 변산도 그랬다. 그런 그들이 청춘이어서 더 그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인생이란 것은 이렇게 힘껏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숨이 턱 막힐 때까지 달려본 사람만이 진짜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는 것. 나도 그렇게 치열하게 이 청춘을 살아내고 싶어 지게 만든 영화 변산. 나도 그런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는 것. 젊음이여. 그렇게 계속 푸르게 그곳에 있어라.. 


뱀다리_

김고은과 박정민배우를 한 스크린에서 보게 되어 기뻤다. 나는 그 두 사람과 함께 학교생활을 해서 오며가며 낯이 익다. (학교가 워낙 좁디 좁아서) 그때도 참 반짝반짝 빛나던 두 사람이었는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에서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나랑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걸 본다. 그럴 시기가 됐나보다. 나도 나의 자리에서 나의 글을 쓰며 잘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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