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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Jan 19. 2019

[임신일기 #2] 임신 확정 검진

귤이 엄마 되다

아이가 선물처럼 우리 부부에게 오고 난 후, 나는 일을 급격하게 줄였고 쉼과 쉼, 또 쉼에 집중했다.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몇 달 임신을 시도했었지만, 회사가 안정적으로 어느정도 자리잡을 때까지 미루자 했었다. 처음하는 도전에 성과는 부진했고 괜찮다 마음을 다잡으며 아둥바둥 살았다. 그렇게 2018년 한 해를 보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쳐있었다. 


혹시나 몸과 마음이 지쳐 아이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일 한다고 운동을 게을리 해, 아이를 길러 낼 만큼 몸이 충분히 건강하지 않으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서 더욱 내 몸상태와 휴식에 집착을 했던 듯 하다. 이제부터 쉬느라 묵혀 두었던 임신 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한다. 




2018.12.06


임신 진단기로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 오전 11시로 집근처 병원에 예약했다. 산부인과는 언제나 그렇듯 대기 시간이 길다. 과 특성상 갑작스레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내가 예약한 병원은 접수를 하고 임산부가 스스로 몸무게와 혈압을 잰다. 그리고 상담원과 간단히 상담을 한 후 예약한 선생님의 진료실 앞으로 가 다시 대기하는 시스템이었다. 


'아니, 사람들이 애를 많이 안 낳는다고 하더니 현실은 또 그렇지 않은가봐. 어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접수를 하고 혈압과 몸무게를 쟀다. 첫 임신이라 떨리고 긴장되고 기대되고 설레이고 걱정되고 온갖 감정에 휩싸여 안절부절했다. 긴장해서인지 평소보다 혈압도 조금 높게 나왔다. 마침 겨우 난 대기석을 잡아 앉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신랑은 내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30분 넘게 기다린 후 상담원과 마주앉았다. 


"오래 기다리셨죠? 연말이라 건강검진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몰리네요."


아.. 내가 조금 오해를 했었구나. 부인과에서 꼭 임신/출산 관련 진료만 하는 것이 아닌데 어쩜 이런 오해를 했을까. 역시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하는가보다. 상담원은 내 혈압과 몸무게, 마지막 생리일, 방문 목적을 확인하고 첫 출산에 따라 필요한 지식, 임신 주수, 산모가 알아야할 지식 등이 적힌 브로셔를 건냈다. 조금 의아했다. 어차피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다 할 이야기들인데, 굳이 왜 상담원 시스템을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담원은 첫 진료시에 어떤 검사를 하게 될 것인지, 진료 후에 어떤 일을 하면 좋은지를 알려주었다. 그 중에 꿀팁 하나. 진료가 끝난 후에 임산부 등록을 하고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아 바우처를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응? 그게 뭐야?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다. 임산부를 국가에 등록한다니 완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카드? 바우처? 정신차릴 틈도 없이 곧장 진료실로 향했다. 


진료실 앞에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진료실 앞에서 간호사가 내게 방광을 비우고 오라고 했다. 


"초음파 검사하셔야 하니까 방광 비우고 오세요."


응? 괜히 피식 웃음이 났다. 방광을 비우고 오라니. 살면서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지시를 한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화장실 가서 소변 보고 오세요." 라던가, "화장실 다녀 오세요." 같은 표현은 익숙한데 말이다. 시키는대로 화장실에 가서 방광을 비우고 왔다. 다녀왔더니 내 다음 순서였던 산모가 진료실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 으아니, 조금만 빨리 일을 보고 올 것을. 잠깐 아쉬웠다. 


전화가 왔다. 엄마다. 진료는 잘 받았는지, 결과는 어떤지 궁금하다고. 

"진료 잘 받았어? 내가 다 떨린다."
"엄마, 나 이제 곧 진료실 들어가. 끝나고 전화할게."

입이 근질근질해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이야기 했을 땐, 축하보다는 어떡하냐는 말부터 했던 엄마였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축하한다는 이야기보다 어떡하냐는 말부터하냐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보니 부재중 전화가 2통이나 와있었다. 세 번째 전화에 받았음에도 왜 이리 전화를 안 받느냐 아우성치지 않고 걱정이 되어서 안절부절하는 엄마를 보니 괜히 마음이 찡해졌다.


드디어 진료실 입성. 우리 부부는 선생님과 마주앉았다. 선생님은 내게 마지막 생리일을 다시 물었다. 연 중 몇 달은 매우 눈에 띄게 불규칙한 생리 주기가 문제였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내 임신 주기가 10주는 훨씬 넘어야 할 판이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 한가지. 임신 주기는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마지막 생리 시작일이 임신 첫날이 되는 것이다. 나는 배란일이 임신 첫 날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잘못 알고 있었다. 아주 깨끗하게 자궁이 비워진 그 날부터 임신일로 계산하는 건가? 정확히 언제가 배란일인지 확정할 수 없으니 마지막 생리일로 계산하는 것이겠지? 의학적으로 왜 그 날을 임신 첫날로 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임신이 될 수밖에 없는 그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이기에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 했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11월 14일이예요. 이 날 이전에는 임신이 불가능해요." 라고 이야기 하자 의사가 방긋 웃었다. 그리고 바로 진료실에 붙어 있는 초음파실로 자리를 옮겼다. 



작은 방 하나, 그리고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꼬챙이 하나. 


"애기집이 있네요. 여기 점처럼 뭐 하나 보이시죠? 이게 자라서 아이가 될 거에요. 초음파로 보기에 5주 정도로 보이네요. 5주로 보고 예정일 잡아서 임신 확인서 써 드릴게요." 


기분이 묘했다. 옷을 갈아입고 진료실로 갔더니 신랑 손에 초음파 사진이 들려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신랑이 함께 초음파실에 들어가서 영상을 보고, 선생님의 설명을 같이 들을 것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틱한 상황은 없었다. 신랑과 처음 아기 초음파를 보는 기쁨을 함께 나눌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괜히 좀 실망했다. 선생님은 다음에 올 때 보건소에 가서 산전 검사를 한 후 결과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처음엔 산정검사로 들어서 아무리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알고보니 산전 검사였다. 임신 초기에 하는 소변 검사, 피 검사 등을 보건소에서 무료로 제공한다고 했다. 


진료를 받고 나와서 수납을 했더니, 바로 국민건강보험 임산부 등록 데스크를 안내했다. 첫 진료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임산부 등록, 바우처, 국민행복카드에 대한 매우 빠른 안내로 정신이 더욱 혼미해졌다. 상담원은 내 임신 확인서를 보고 임산부 등록을 위한 데이터 입력을 대신 해주겠다 했다. 그리고는 카드발급에 대한 랩을 하기 시작했다. 삼성카드, 롯데카드, BC카드에서 골라 카드를 발급받고 난 후 바우처 신청을 하면 해당 카드로 바우처가 들어온단다. 그리고는 태아보험에 대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태아보험? 꼭 들어야 하는건가? 생소한 정보를 랩으로 들어서는 도저히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온갖 카드 가입 안내서와 보험 상품 안내서를 받아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것 같다. 아는 것이 1도 없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나름대로 임신, 출산에 대해 관심이 많고 주변 친구들에게 들어 꽤 안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닥치고 보니 그게 아니구나. 책도 사서 읽고 공부를 많이해야겠다. 공부고 뭐고 진료 마치고 배가 너무 고파서 일단 병원 근처 설렁탕 집에 가서 뜨끈한 국물을 한 술 떴다. 


"우리 아기 태명은 뭐로 지을까요?"
"글쎄요. 뭐가 좋을까요?"
"귤이 어때요? 제가 귤 꿈을 꾸기도 했고."
"귤이. 좋아요."


오늘부터 나는 귤이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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