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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Apr 07. 2023

3. 더 짙은 색으로 태어난

나의 사랑의 시작일 뿐

BIG Naughty (서동현) -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Feat. 이수현)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구속하고,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뺏으려 했지만 이번엔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나는 인상을 쓰고 좀 더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여긴 내 공간이며 내 영역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려고 했다. 상대는 나를 무시하고 더 강하게 나왔다. 윽박을 지르고 내 공간의 모든 것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나는 상대에게 다가가 그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때리고 밀쳐냈다. 순간 내 눈에 보인 것은 당황한 상대의 눈빛과 멈칫하는 손동작이었다. 상대는 더 이상 내 공간의 것들을 부수지 않았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며 그 자리에 있었다.


 해냈다. 내가 해낸 것 같다. 20년 넘게 이어진 악몽의 끝이 조금 보이는 순간이었다. 강하게 밀쳐내면서도 혹시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더 이상 내 공간의 어떠한 것도 부수게 둘 순 없었다. 여긴 내게 소중한 것들이 가득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내가 지켜내야 했다. 내 허락 없이는 나의 어떠한 것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몇 주가 또 지났다. 내게 중요한 것을 마주한 순간에 나는 어김없이 악몽을 꾸었다. 반드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누가 봐도 한 명의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고 나의 몫을 살아내고 있었다. 2,3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나와 마주하던 상대는 무표정으로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본인도 울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간만의 악몽 속에서 상대는 나보다 커 보이지도, 강해보이지도 않았다. 여전히 차가운 곳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따뜻해 보였다. 울고 있는 상대를 보았을 때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달려가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품에 꼭 안긴 상대는 내 생각보다 훨씬 작았고, 많이 당황스러워했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작은 온기가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정도의 온기만으로도 우리가 가진 꽃을 피워내기엔 충분했다.




 잠에서 깨어난 후 한참을 울었다. 슬프거나 원망스럽거나, 혹은 후련하거나 감동을 받은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내 생각보다 너무 작은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궁지에 몰아넣던 사슬의 틈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변하지 않는 과거의 기억들은 여전히 이따금씩 나를 괴롭히겠지만, 그럼에도 용서하고 품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적어도 내 공간에서만큼은.


 그래, 나는 나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더 이상 어떠한 사람도, 상황도 내 허락 없이는 내 공간을 부술 수 없다. 이것이 10대부터 30대까지 나를 주저앉게 한 것에 대한 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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