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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Aug 02. 2023

사랑을 보류할 수 있나요

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어가자고

 마음 속 깊이 누군가에게 푹 빠져 진심을 다해 사랑을 했던 내가 낯설다.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나 잊혀질만도 한데 사람은 잊혀져도 사랑을 했던 나의 모습은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에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도 빛났고, 세상에 필요한 건 둘밖에 없었던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음과 상처를 주고받고 반복하다 결국 오늘까지 와버렸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너무 겁쟁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에도 약아빠지지 못했다. 스스로를 탐닉한다는 명분 하에 외부와의 단절을 감행하고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일상에 녹아들다가도 문득 밀려오는 고독과 허망함에 다시금 나를 돌아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 보일 준비가 되었나? 섬세하지 못한 사람에게 받을 상처를 흘려보낼 용기가 있긴 한가?


 그저 사람이 좋아 웃고 떠들고 매일을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던 때가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도 더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우리의 날들을 만들어가자고 약속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찌 해를 거듭할 수록 용기는 사라지고 두려움이 커지게 된건지 누군가의 호의를 받으면 거절하기 어렵다가도 그 호의를 책임질 수 없겠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사양을 하곤 한다. 그러다 어쩌다 몽글몽글 새로운 감정이 피어날 무렵이면 걱정으로 심장이 요동치고 잠이 오지 않는다. 밤의 끝엔 '변수가 없는 혼자일때가 편했다'는 말이 허공을 맴돌다 눈 앞으로 내리꽂혀 새벽어스름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이불을 덮고 마음 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나서야 다시금 졸음이 오고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기에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잠에 빠져든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이런 나를 구원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서 구원을 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한다. 그저 내가 나를 구원해줄 유일한 존재일 뿐이라고 배우고 있다. 모든 글과 그림에서 예능에서까지 사랑을 외치는 요즘, 사랑을 하지 않으면 그저 쓸쓸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아쉽다. 돈이 없어 비싼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안됐다는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것처럼 사랑을 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삶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알지. 사랑하면 삶이 수채화가 된다는 거. 알지 너무 잘 아는데,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수묵화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원래부터 하얀 종이와 까만 먹물이 있던게 아니라, 어떤 색깔이든 낼 수 있는 다채로운 물감이 겹겹이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깊은 검정색이 되어버릴까봐. 그럼 더 비참해질까봐.


 뭐 어쨌든,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을 사랑을 하는 건 잠시 보류해두는 걸로.




tmi1. 사실 퇴근하고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보고와서 센치해진 마음에 쓴 것

tmi2. 서핑하다가 갈비뼈 나가서 요양하는 동안 심심해서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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