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esign begins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종종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내게 하곤 한다.
“전공이 뭐예요?”
“생명공학이에요.”
“네?”
상대방은 눈이 동그래지며 정말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 하고 있는 모션그래픽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전공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전공에 맞춰 일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시각디자인 전공도 아닌, 영상학 전공도 아닌 공대생 출신이 디자인을 하고 있으니 놀랄 만도 하다.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손댄 건 역시 대학생 때다.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필요한 홍보자료를 직접 내 손으로 만들게 되면서부터다. 누가 앉혀놓고 포토샵이라던가 디자인의 원리라던가 가르쳐준 적은 없다. 순전히 내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뚝딱뚝딱 혼자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동아리 공연 포스터, 축제 현수막, 학생회 선거 자료집 등 참 많은 결과물을 제작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학생이 되기 전에도 난 분명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잡지 보며 멋진 것을 스크랩하기 좋아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등학생 때는 다꾸, 즉 다이어리 꾸미기의 일인자이기도 했다. 내 스스로 이런 말 하기 좀 민망하지만, 다이어리를 워낙 잘 꾸며서 다른 반 친구들까지 돌려보기도 했다. 그게 디자인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균형 있는 레이아웃, 센스 있는 컬러 선택,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보면 이게 디자인의 일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프로그래머 출신인 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컴퓨터를 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중학생 때부터 포토샵을 만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보기도 했다. 들어는 보았는가, 나모 웹에디터라고. 추억의 이름이다 정말.
Connecting the dots.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축하 연설에서 한 말. 점이 모여 선이 되듯이, 과거에 한 일들이 이어져 현재를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나의 점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모션그래픽을 하고 있는 나는 우연히 이 길로 들어선 게 아니다. 내가 만들었던 포스터, 자료집, 팜플렛, 영상.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나만의 점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뚝딱 하고 디자인을 뽑아내는 건 아니다. 분명 디자인으로 골머리를 앓던 시기들이 있고 여전히 지금도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해 고민 중이다. 비전공자로서 겪는 디자인에 대한 고충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디자인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고민. “ 비전공자인데 디자인할 수 있나요?” 이 질문은 내가 디자인을 시작하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주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다. 4개월이면 디자인으로 취업이 가능하다는 광고를 띄우는 교육 업체가 등장했을 만큼 디자인은 이제 점점 대중화되어가고 있다. 툴이 많이 발달하기도 했고 디자인 감각에 대한 필요성이 많이 요구되어 그런게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어떻게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이로서 충분히 적었다. 그 이후 나의 디자인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차차 들려 드리겠다. 디자인을 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