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동부 여행 (1) 바리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이탈리아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알면 알수록 어디 하나 지나치기 아쉽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놓칠 뻔한 기차에, 열일곱 100미터 달리기 이후 가장 빠르게 달렸다.
기차를 겨우 타고 한숨 돌리며 생각한다. 다시 와야지, 다시 올 수 있겠지.
3일의 시간이 생겼다.
어디를 갈까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항공권 검색 사이트에 버튼을 눌렀다.
출발 _ 로마
행선지 _ 모든 곳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로 눈에 들어온 곳은 이탈리아 '바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아무 생각 없이 여행하는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찾아보니 꽤 큰 도시였다. 두둥. 역시 나의 무지함이란.
바리는 레체와 함께 남동부의 중심도시이다. 풀리아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바리를 검색하면 대부분 주변 도시나 크로아티아 그리스 가는 방법이 주로 나오는데, 바리만 놓고도 꽤 볼만한 도시다.(물론 나도.. 주변 도시에 가려고 갔지만 말이다 하하)
여행은 바리에서 시작해 마테라, 알베로벨로, 레체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더 욕심나는 도시들이 많이 있었지만 운전이 서투른 관계로 포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변수가 많기에 무리한 일정은 잡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리는 못 봐도 괜찮지, 괜찮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어디 여행자의 마음이 그냥 지나쳐지겠나. 결국에는 바리를 둘러보다 마지막 기차를 놓칠 뻔했다.
네 블록을 피 토할 듯 뛴 기억을 뒤로하고 바리를 소개한다.
바리 공항은 한산했다. 너무나도 깨끗했다.
로마와는 비교 안될 정도의 깔끔함에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보던 것도 잠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방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은 이미 사라짐... 다들 어디 갔어요.....
인포메이션에서 설명 듣고 예쁜 지도를 받고 나가니 봉고차 같은 버스가 한 대 서있다. 출발할 태세의 버스로 달려가 물으니 공항과 시내를 잇는 셔틀버스다. 출발 직전, 간발의 차로 탑승하고 출발한다. 바리로.
풀리야주의 관광지도는 귀엽고 잘 만들었다. 나는 너무 열심히 봐 닳고 닳아 사라졌지만 인포메이션에서 하나쯤 챙기길 추천한다.
바리 기차역 건너편 정면으로는 신시가지가 세네 블록에 걸쳐서 넓고 길게 뻗어있다. 명품 매장부터 웬만한 쇼핑할 만한 매장들은 다 들어서 있다.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휴대폰과 카메라가 동시에 사망하여 내 눈에만 열심히 담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이런 모습의 바리가 딱.
하지만 내가 본 바리의 풍경은 같은 풍경이나 조금 다른 느낌이다. 전문 사진가는 다르구나를 깨달으며,
스트리트뷰로 보여주고자 노력했지만 여기에도 내 눈으로 담은 모습이 그대로 담기진 않는다. 한 길로 쭉 뻗은 길이 깔끔해서 놀랐고,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사람 실력도 좋아서 놀랐던 동네다.
대학이 있어서인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젊은이들이 많았다. 신시가지를 거쳐 구시가지로 넘어가면 그제야 이탈리아 남부 소도시의 느낌이 난다. 구비구비 골목 져 있는 모습과 돌바닥, 그리고 멋진 성당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리의 신시가지가 깔끔하고 도시도시해서 좋았지만, 사람들이 바리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은 두 성당, Cathedral(대성당)과 Basilica di San Nicola(성 니콜라스 바실리카)이다.
성 니콜라스 바실리카는 니콜라스(니콜라, 니콜라오, 니콜라우스라고도 불림) 성인의 유해를 모신 곳으로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에서 찾는 순례지이기도 하다. 니콜라스 성인은 우리에게 산타클로스로 더 유명한 성인이다.
니콜라스 성인은 사회 약자를 돕는 성직자였는데, 그중에 한 사건이 유명해지면서 산타클로스가 됐다. 일화는 이렇다. 한 아버지가 가난에 못 이겨 세 딸을 사창가에 팔기로 정했다. 소식을 들은 니콜라스는 밤에 몰래 세 딸이 출가하기 넉넉한 황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던지고 돌아갔다. 그 덕에 세 딸은 사창가를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수세기를 떠돌면서 니콜라스 축일에는 몰래 선물을 주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가 그린 세 처녀를 위한 지참금이란 작품으로 현재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에 소장돼 있다.
1087년 니콜라스 성인의 유해를 바리로 이전해 예배당을 세웠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성 니콜라스 바실리카가 됐다. 니콜라스 성인의 유해는 지하에 모셔져 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미사 중이어서 조용히 기도만 하고 올라왔다.
성 니콜라스 바실리카 옆 길로 나가면 바로 바다다. 바다에서 바라본 성벽의 모습도 꽤 멋있었다. 길가로 나가니 구시가지 골목길에서 봤던 길거리 음식을 바다 앞에서도 팔고 있다. 바리 구시가지 골목길로 들어서면 흔히 눈에 띄는 길거리 음식이 있다. 어묵? 두부?처럼 생긴 네모난 무언가 였는데 5개에 1유로 이런다. 튀겨서 파는 건데, 나는 현금을 모두 수화물 보관소에 넣어놓는 큰 실수 덕에 먹어보지 못했다. 바닷가 근처니 생선을 으깨 튀긴 게 아닐까 예상하고 있다. 흠, 누군가 먹어본다면 무엇인지 어떤 맛인지 알려주길.
바리는 대성당과 바실리카가 잘 알려져 있지만 차를 렌트해서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여유가 더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나는 못 가봤다. 시간도 없었고 차도 없었고, 다 없었다. 못 가서 아쉬운 마음에 글로 남긴다. 이탈리아 1센트 동전 뒤에 그려져 있는 성, 'Castel del Monte(카스텔 델 몬테)'다.
유로는 각 나라에서 동전을 만들기 때문에 동전만큼은 뒤에 그려진 그림이 다르다. 평소에도 거스름돈을 받으면 뒷 면을 돌려 본다. 이 동전은 어디서부터 구르기 시작했을까 하며. 그런데, 1센트는 잘 안 보게 된다. 왜냐면 1센트니까. 1센트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런 내게 한 점원은 거스름돈 1센트를 건네며 말했다. "자 1센트야. 너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뭐지.. 갑자기 소중해지는 느낌.
카스텔 델 몬테가 제대로 언급된 문서는 찾기 힘들다. 남아있는 기록은 124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가 이 성을 지으라고 했다는 기록이다. 성은 완공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성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성은 팔각형의 구조인데 팔각형은 성 구조로는 잘 쓰이지 않는 구조였다. 하지만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가 설계에 개입하면서, 카스텔 델 몬테는 수학적으로 계산한 배열과 모양으로 지어졌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오래된 성채 'Aedificium'는 이 곳, 카스텔 델 몬테에서 영감을 얻어 그려졌다.
허허벌판,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카스텔 델 몬테는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의 이야기가 얽힌 곳이자 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바리는 바리 중앙역부터 시작한다면, 신시가지를 지나 구시가지가 나오고, 구시가지 사이를 걷다 보면 대성당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바실리카가 나온다. 그리고 그 옆이 바다다. 도시가 크지 않아 반나절 정도면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어디에 얼마나 머무르냐에 따라서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바리 중앙역에는 유인 수화물 보관소가 있다. 저녁 8시 이후는 짐을 맡길 수도 찾을 수도 없으니 시간을 고려해 맡겨야 한다. 요금은 기본요금 + 시간당 요금으로 계산된다.
바리 공항에서 중앙역까지는 셔틀버스로 20분 정도 걸린다.
카스텔 델 몬테는 공항에서 차를 렌트해 가는 법이 편리하다. 버스를 이용하는 법이 있지만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운행을 안 하는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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