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써 본 적이 있나요?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3

by 김선하

1.

나는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 지속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낙서나 메모 어떤 형태로든, 취미나 일 어떤 상황으로든 글과 멀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일기나 쪽지를 제외하고 그동안 썼던 글의 글쓴이는 내 본명보다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던 아이디, 단체명, 회사를 대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순순히 나를 써본 적도 없었습니다.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감정을 정확히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 선을 긋고 가면을 쓴 채 그런 척, 혹은 아닌 척 글을 썼습니다. 삶에 철학과 확신이 없던 젊은 날의 내 글은 그랬습니다.


2.

학교에서는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과제물과 보고서를, 회사에서는 다음 계약을 염두에 둔 채 프로그램과 기획안을, 취미로 가끔 선보이는 홍보문구는 나중까지 계산한 글을 썼습니다. 잡지사에서는 기자 관점에서 개인적인 물의를 빚지 않으려고 사회적인 공공의 입장에서 나의 의견을 감춘 채 글을 썼습니다. 개별적으로 부탁받은 글은 저자 입장에서 나와는 별개로 거리를 두고 쓴 글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이지만 저자 중심보다는 각각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었습니다. 눈치 보기식, 보여주기식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의뢰인의 요구에 맞는 맞춤식 글이었지만, 나라는 확신은 없는 글이었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닌 타인이 주인인 글이었습니다. 쓰는 동안 나의 이런 쓰기 방식에 회의와 헛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상황이었고 그게 맞다고 위로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3.

나는 내가 고심하던 일이나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거나 건네면 일절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후회나 미련을 갖지 않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과 자만,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치 떨리는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원고가 방송이나 잡지에 나간 후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내 글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4.

그나마 나에게 솔직했던 글은 일기와 친구에게 보낸 넋두리 같은 감정의 언어, 하소연하는 편지 정도였습니다. 아무 말 대잔치 하듯 뒷감당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감정 쓰레기통에 넣을 투덜거림 같은 쪽지였습니다. 나에 대해 솔직했고 타인에게 거짓 없는 기록은 이 정도가 다였습니다.


5.

이번 엄마책 <다연출판사에서 지난 4월에 출간한 '눈물나는 날에는 엄마'를 나는 그냥 엄마책이라고 부릅니다.> 은 나를 드러낸 내 이름, 내 본명으로 나온 첫 책입니다. 공저나 논문도 아니고, 거실 책장에 꽂아둔 나만의 책 만들기 결과물도 아닌 내가 세상에 처음 내보인 내 책입니다. 내 이름 석 자가 책 표지에 단독으로 쓰였고, 전국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누군가는 내 책을 읽고 눈물을 흐리고, 서평에 실린 내 이야기와 내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자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책을 낸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겁니다.


6.

에세이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눈 글을 보았습니다. 국어시간에 말하는 규칙은 아닙니다. 꼭 그런 유형으로만 쓰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글의 유형을 말한 글쓴이 말이 이해는 됩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이 세 유형이 단계적으로 변화했음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쪽지와 노트 여기저기 순간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1단계). 그리고 책을 내고자 했을 때는 내 글이 개인의 글이 아닌 사회적인 글이 되어야 합니다(2단계). 그러므로 보는 관점을 확대시킬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내 글을 읽으면서 독자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변화되길 바랐습니다.(3단계)


사람들은 개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명인사나 연예인 셀럽 정도가 되어야 사생활이 궁금할 뿐입니다. 그러니 지극히 평범한 나의 이야기는 타인에게 전혀 궁금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내가 쓰는 글은 달라져야 합니다. 여전히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쥐고 방향키를 바꾸었습니다. 나는 나의 일상이 주는 느낌에서 출발해 당신의 공감과 격려를 얻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나의 글을 읽은 당신이 가는 지금 이 길에 힘이든 응원이든 무엇이라도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7.

<감정의 표현 – 생각의 전환 – 행동 촉구> 이 세 가지 에세이 유형의 발달(아는 작가의 말인데 이론적으로 언급한 것인지 개인의 의견인지 확인하지 못해 이름을 숨깁니다.)은 각각 따로 구조와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니라, 연계적으로 발전하거나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지금 내가 산증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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