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페르소나는 몇 개입니까?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4

by 김선하


1.

"혹시 연애 중이세요? 별밤 듣고 있으면 작가님 분명 사랑하는 사람 있어, 연애 중이시다, 느낌 오거든요?"


20년도 훌쩍 넘었네요. MBC 라디오 작가 시절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줄여서 흔히 말하길 <별밤> 메인 작가 시절, 훅 들어온 질문에 작품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을 염두하고 글을 씁니다! 진짜 답을 숨기느라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아침 출근길 음악 프로그램 <모닝쇼>와 1960년대 <우리 전통음악>을 함께 했습니다.

이 둘은 직장인과 성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라 건조하면서도 현실적인 어투로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별밤>은 청소년과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였기에, 청취자가 지루하지 않도록 새콤 발랄한 글을 써야 합니다. 오프닝을 쓸 때는 아름답고 유쾌한 상상으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콩콩 뛰는 설렘과 우정 넘치는 친구의 티키타카 케미를 추억하며 두어 시간을 이끌 원고가 나와야 합니다.


끝날 때는 따스함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어서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에게 엄마는 나를 빛나게 하는 전극체였고, 나를 감싸는 우주였으며, 나에게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주는 종교적인 그것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니 클로징 멘트는 따스하고 감사한 하루를 닫기에 흡족할 수 있었습니다.


2.

글을 쓰는 동안,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인 나입니다. 하지만, 읽는 독자나 보고 듣는 시청자를 생각한다면 대상을 생각하고 쓰게 됩니다. 내 글을 접하는 대상에 맞는 적합한 비유와 분위기로 써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독자 수준과 상황에 맞지 않는 글은 이해도 공감도 얻지 못합니다.


20대가 쓰는 글은 이십 대 눈을 통해 쓰이지만 독자가 십 대라면 십 대에게 어울리는 비유와 문체, 어투를 써야 합니다. 작가와 독자사이에 매개체를 하나 들이면 좋습니다. 나는 보통 오프닝에서는 내 친구 몇 명을, 클로징 멘트에서는 엄마나 가족을 손환 합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내 생각을 그들의 높이에 맞추어 감정을 싣기 쉽습니다.


글은 쉽게 쓰여야 합니다. 쉽게 쓰인다는 것은 이해와 공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체가 간결하고 정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이 독자를 향해야 합니다. 나는 내식으로 쓸 테니 너희들은 그냥 읽어, 하면 읽지 않습니다. 물론 내가 가진 장르와 문체의 본질은 버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따스한 글을 쓸 때는 내 엄마를, 이성적인 글을 쓸 때는 나에게 유독 독사인 편집장을, 가벼운 글쓰기에는 언제나 자유로운 내 친구를 생각합니다. 그들이 있어 내 글에 감정이 더해집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에서 시작에 사람이 끝을 내는가 봅니다. 어느 광고에서처럼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 합니다.


3.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나의 본질과 정체성, 영역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만 고집하고 표현해서는 안됩니다. 한 사람에게 여러 페르소나가 있다는 것은, 한 얼굴에 여러 가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고 관계를 맺는 게 지혜로운 처신일 수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와 영화관에서 만납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영화관에서 3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토론하자고 하지 않습니다. 쇼핑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신상 유행템 정보를 건넵니다. 물건을 사는 게 취미인 사람을 바꾸어보겠다고 무조건 심플라이프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의 본질을 알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고 반응을 보입니다. 글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을 지니되 그 하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황과 대상에 따라 융통성 있게 변화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본성을 지니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를 규명할 수 있는 나 본연의 자연성, 본질은 지켜야 합니다.


4.

나는 일상이나 모임 때때로 강연에서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내 엄마는 사는 동안 참 다양하고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와 닮았습니다. 크고 작은 일에 솔선수범하며 당당한 대장부인가 싶다가도, 정에 못 이겨 한발 뒤로 물러서는 영락없는 소시민입니다. 타인의 불의에 씩씩거리며 정의롭고 의연한 사자였다가, 자식과 형제자매 앞에서는 한없이 양보하고 희생하겠다고 충성을 다짐하는 진돗개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글은 하나가 아닌 다양한 문체와 장르를 씁니다. 욕심을 내 본다면 멋 훗날 내 글은 장르는 선하, 문체도 선하 하는 선하표가 생겨나길 바랍니다.


나는 여기저기 관심이 많습니다. 내가 접하는 물건 장소 상황을 그냥 보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도 머리끝부터 손가락 하나, 외모와 말투로 보이는 취향까지 스캔합니다. 관심 없는 척, 모르는 척, 아는 척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일단 관심을 보이고 아는 척을 하면, 금세 오지랖이 발동하여 조언인 양 잔소리가 늘게 뻔합니다. 그런 내 반응을 예상해서 보고도 못 본 척, 알아차리고도 그러지 않은 척합니다. 그래야 나도 상대도 편하니까요.


5.

"내가 책을 낸다면 첫 번째 책은 엄마로 하자. 엄마에게 크게 알려주자. 아직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

잠시 쓰는 일을 멈추었다가 다시 글을 쓰고 책을 내자고 생각했을 때, 나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엄마여야 했습니다. 방송 PD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진 후 차선책으로 방송 작가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 광고에도 발을 들였습니다.


"조금만 참아. 그런데 나는 네가 쓴 글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 "

내가 작가 일을 하면서 힘들어할 때 이 말이 나에게는 위로였고 동시에 강압 같은 소리였습니다. 엄마는 힘들면 돌아오라 했지만 그래도 버텨 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온 날, 엄마는 쉬라고 했는데 나는 그 이후로 글 쓰는 일에서 오랫동안 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것은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고 쓰는 동안 엄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힘들고 고된 삶에서 벗어나, 살아보고자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는데 그때마다 엄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서점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내 책장에는 논문 기고문 편집본 다양한 형태의 저자 김선하로 이루어진 책이 있습니다. 기록과 추억을 위해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책입니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존재합니다. 모두 다 나입니다. 이제 나는 그 책들을 밟고 올라가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개된 책을 냈습니다. 나 혼자만의 책이 아닌 나와 당신의 책.


이후 나를 모르고 내 책을 읽은 독자가 인스타에 글을 올렸습니다.

"작가님 글은 따뜻해요. 엄마이야기라서 그런가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해요. 엄마 말고 글을 쓸 때 특별히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 있나요?"


네. 엄마책은 전적으로 엄마를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후 글을 쓸 때는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 안에서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보통 경쾌하고 즐겁습니다. 그러다가 순간 어둡고 애잖하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때로는 밀쳐내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앞섶니다. 그들과 만나고 돌아오면 혼자 미소 짓기도 하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합니다. 애달프고, 보고 싶고, 안아주고, 기대고... 그렇게 다양한 감정으로 남습니다.


글 쓰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글은 한 사람이 쓰지만 그 한 사람은 여럿이 어우러져 물든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지만 나를 구성하는 것은 나와 함께 있는 사람, 당신입니다. 그러니 글이 따스하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주위가 따스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글은 나를 둘러싼 좋은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글이 차갑다면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나는 냉정하지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차갑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당신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과 어울려야 합니다. 권력과 자본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 공감의 힘이 있는 사람 말이지요.


오늘도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나의 글을 씁니다. 오늘 내 페르소나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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