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생각하다가 당신을 썼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11
1.
"
생일이었어요?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말했는데...
언제요?
작년에...
네?
이젠 좀 알아라, 내 생일!
"
2.
학원 아이들과 가족처럼 지냅니다. 선생과 학생보다는 이모와 조카, 엄마와 아이, 동네 누나 동생처럼 그야말로 거침없이 지냅니다. 허물없이 티키타카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웃픈 현실 가족입니다.
스승의 날은 조용히 넘어가지만 학원 개원과 내 생일이 맞물린 7월은 생일 공지로 좀 시끄럽습니다. 아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우깡이 -나는 새우깡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내가 새우깡에 약하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기분이 다운되었거나 부탁할 게 있으면 새우깡 하나 내밀고 그러면 나는 슬쩍 오케이 해줍니다.- 사고 편의점 커피도 사고 스티커나 책도 사 옵니다. 물론 나도 그냥 입 닦는 법은 없지요. 받은 만큼 쏩니다. 아이들은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선뜻 없는 용돈을 털어 선물대령을 합니다.
3.
생일 몇 주 남겨두고 시간차 공격 하듯, 집에 있는 아이에게 달력을 보이며 생일날짜를 고지합니다. '엄마 생일 삼주 뒤다'로 가볍게 건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주 앞두고 '선물은 뭘로 준비할 거야? 엄마 취향 알지? 물론 손편지도 있어야 해' 물리적인 요구에 이어 진정성까지 강요합니다. 생일을 목전에 두면 '주문했어? 생일에 맞추어 도착해야 해.' 생일선물이 무엇인지 제 날짜에 도착하는지 재차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 생일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게 뻔뻔하지 않고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큰 행사 앞두고 리허설을 준비하듯 합니다. 생일밥 먹을 식당을 정하고, 일정을 맞추고, 케이크도 미리 생각해 둡니다. 생일밥은 주로 회집에 서 먹습니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해서 보통 집밥은 회와 생선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생일날 만큼은 나를 중심으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합니다. 케이크도 평소 좋아하는 동네 빵집 초코 시폰 케이크로 몇 년째 고정입니다. 매년 무엇을 고를까 하는 고민을 덜어줍니다. 아, 작년에는 SNS에서 본 수제 케이크에 특정 캐릭터 덧붙여서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케이크 상점에 가서 '이렇게 해주세요' 주문했습니다.
생일에 색다른 취향이나 이벤트를 생각하지 않으니, 해마다 같은 걸을 요구 하니,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고민을 덜 수 있겠네요. 그런 면에서 나는 불편한 요구를 하지 않는 그런대로 무던한 사람입니다. 이번 내 생일은 월요일이라 함께 시간 내서 저녁 먹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함께 저녁 먹는 식구 편하라고 일요일 저녁 횟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가족수에 맞게 회 코스를 주문하니 바로바로 죽과 샐러드가 나오고 뒤이어 스끼다시 - 메인 요리 나오기 전 밑반찬을 나타내는 일본말. 회집에서는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오늘은 일식집이니 나도 이렇게 쓰겠습니다. 스끼다시- 와 국요리가 나왔습니다. 작은 뚝배기 두 개가 동시에 나왔는데 하나는 가자미 미역국입니다.
3.
내가 좋아하는 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가니탕, 나머지 하나가 미역국. 어릴 적 엄마는 일주일 거뜬히 먹을 수 있고 요리하기 쉬운 미역국을 들통에 한가득 끓여 놓았습니다.
바다가 고향인 엄마는 바닷고기와 해산물을 좋아했습니다. 국이나 찌개, 전골 어디든 기, 승, 전, 해산물! 미역국도 소고기 대신 전복이나 홍합을 넣고, 김치찌개는 돼지고기 대신 참치나 먹다 남아 얼려두었던 생선을 넣고 요리했습니다. 육전이나 채소 튀김보다는 해물파전이나 오징어튀김을 즐겨 먹었습니다.
엄마가 큰맘 먹고 끓여준 미역국의 최고봉은 소고기 대신 전복과 홍합을 넣고 푹 끓였던 미역국입니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 생선이나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홍합 미역국보다는 홍합탕 정도로 옛 맛의 그리움을 달랩니다.
들깨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도 충분합니다. 한 숟가락 뜨면 보드라운 미역과 거친 들깨가루가 밥알에 박혀 있습니다. 한 숟가락 넣고 밥을 씹으면 구수함이 입안에 터져 목구멍까지 타고 내려갑니다. 엄마는 들깻가루 넣은 미역국도 좋아했지만 쌀뜨물에 다진 마늘과 조선간장만 넣어 간을 한 뿌연 미역국을 자주 끓였습니다.
특히 엄마 생일에는 당신이 손수 지은 쌀밥에 갈치를 굽고 이 뿌연 미역국을 한 사발씩 들이켰습니다. 생일에는 생일상에 함께 앉은 사람이 잘 먹어주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생일 맞은 사람이 한 해 복 받는다고 합니다.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우리 가족이 생일날 먹었던 미역국은 말 그대로 한 대접이었습니다.
4.
뚝배기에 나온 가자미 미역국. 미리 끓여 놓은 미역국을 뚝배기에 몇 국자 퍼담고 그 위에 가자미 한 마리를 올려 센 불에 다시 한번 끓여서 내왔을 겁니다. 보통 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 푸면 그 위에 김치 한 조각이 올라가고 그걸 큰 입 벌여 넣어 먹습니다. 그렇게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면 산모가 몸조리하듯 등 뒤로 이마 위로 땀이 줄줄 흐릅니다.
5.
내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데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데 엄마 생각에 목이 메어 맛도 모르고 눈물 삼키듯 국을 삼켰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펴고 내 생일을 쓰려다가 미역국 얘기가 거들고 결국엔 엄마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보고파서 이렇게 또 글을 써버렸습니다. 나는 언제쯤이면 그리운 사람을 보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날까요? 그때는 언제일까요? 그때가 오기는 올까요?
오늘은 내 생일날, 메인요리 전에 먹은 미역국 한 그릇 먹으며 엄마 생각한 날이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이 보고파서 생각하다가 그리움에 보고픔에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