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변호사가 되었어요?"
처음에 이 질문을 들었을 때에는 당황하며 잠시 멋쩍게 웃어 보이다가 간신히 로스쿨에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에 쓴 포부를 기억해 냈다. "사회의 근간이 되는 법을 공부하고 싶었고, 그 법이 적용되는 현실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라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막연하게 학부 전공인 '정치외교학'과 '법'을 이어 붙여야만 할 것 같았고, 꽤나 그럴듯한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정의를 위해 일하고 싶다.'거나 '어릴 적부터 꿈이 법조인이었어요.'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으니 이런 이야기는 거짓부렁이었고 허둥대며 변명을 하는 순간에도 아주 순 거짓말은 하지 못 할 만큼 양심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꽤나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제법 그럴듯한 말을 지어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가.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로스쿨을 선택했고, 입학을 하고 보니 변호사가 되어야만 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이 길을 택한 것도 결국은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제는 정말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 4학년 1학기 자정이 다 된 밤늦은 시간 나는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 도서관에 앉아있었다. 곧 교환학생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면 이제는 정말 졸업 후 진로를 찾아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기.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하얀 종이를 꺼내 큼지막하게 글자를 썼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아래에는 막힘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아나운서, 뉴스 앵커. 하지만 타고나기를 불안이 컸던 나는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들을 연달아 적어내려 갔다. “확률이 낮다. 합격자가 적다. 예쁘지 않다. 준비할 돈이 없다.” 하고 싶은 이유에 비해 할 수 없는 이유를 적은 글자들은 좀 더 선명하고 커 보였다. 연이어 쓴 "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내가 잘하는 것을 고민하다 들고 있던 펜에 힘을 주어 딱 두 글자를 선명하게 적었다.
“공부”
살면서 나의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본 가장 큰 경험은 바로 수능이었다. 세상과 연결을 끊고 단절되어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서라도 내 삶을 갈아 넣으면 원 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경험. 그 경험은 꽤나 강렬했고 그만큼 내 생각의 큰 뿌리가 되어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공부라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되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해야만 하는 것"은 하루빨리 돈을 버는 일. 적어도 돈이 들어가지 않는 일. 그러니 준비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나마 하던 초상화 판매마저 사는 이가 없어 손을 놓아버린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달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노트에 한바탕 적어놓고 보니 나는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고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보면 그저 내가 좀 더 좋아하는 일을 위해 도전해 볼 용기가,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도전해 볼 용기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나에게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던 차에 해외 봉사활동에서 만난 지민언니로부터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로스쿨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을 졸업하면 변호사가 되어 대형로펌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렇게만 되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로스쿨은 들어가기만 하면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비용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다 해결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다. 마침 그날은 내가 다니던 정치외교학과의 로스쿨 학회 모집 마감일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모두가 내가 가야 할 길을 향해 빛을 비춰주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 내가 들었던 이야기는 순 거짓부렁이었고. 그렇게 좋아만 보이는 표면 아래에 얼마나 거대한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다고 믿었고, 남들이 보기에 꽤나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싶으니, 지금 당장 내 앞에 길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을 택했다. 그래도 변호사라면 전문직이니까. 졸업만 하면 김앤장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누구라도 부러워할 변호사로 일할 수 있겠지. 나는 딱 이런 마음으로 로스쿨에 갔다.
법학이 좋았던 적도 법조인이 되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그러니 로스쿨에 들어가 어떤 공부를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지, 변호사로 사는 삶은 어떤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내가 처한 현실 때문에 떠밀리듯 이 길을 선택했다고 느끼면서 로스쿨 3년을 버텼다. 나에게는 이 길을 내 손으로 직접 선택했다는 실감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그럴 듯 해 보이는 것을 결정한 일. 지극히 안정지향적인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매우 그럴 듯 한 결정이었다. 망할 리 없고 혹시나 망해도 중간은 갈 것 같은 묘한 안도감. 하지만 이 때는 몰랐지. 중간은 갈 수 있어도 이런 마음으로 선택한 길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른 채로 버티면서만 살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걸.
하지만 로스쿨 3년 동안 내가 안락함을 얻기 위해 버텨야 하는 공부량은 상상 이상이었고, 졸업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 믿으며 버텼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졸업과 동시에 꿈꿨던 안락함 대신 또다시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앞에서 내가 막연하게 붙들었던 묘한 안도감은 점점 대상이 없는 분노로 변해갔다. 그 누가 내 멱살을 잡고 강제로 로스쿨에 입학시킨 것이 아니니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내가 결정해서 온 길인데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려 온 것만 같은 기분. 화를 낼 대상이 없으니 왜 나에게 이런 길을 가라고 했느냐며 누구라도 붙들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왜 이게 좋아 보이는 삶"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 누군가라도 탓하고 싶은 날 선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냈지만 탓할 대상조차 없어 무기력해지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기보다는 버텨냈다.
왜 이 일을 선택했을까. 누군가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말해주었던 억대 연봉, 안정적인 삶,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럴듯한 모습. 이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고, 눈앞에는 사실 그럴듯해 보이지도 않는 것 같지만 그나마 보여짐직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버텨내야만 하는 하루로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변호사가 되고도 수년동안 내가 원하지 않는 이 길을 누군가들 때문에 왔다는 생각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수년동안 일하면서 부딪히고 이직을 거듭하며 내가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나서야 직장도 직업도 아닌 이 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 변호사는 나를 믿고 사건을 맡겨준 사람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구나. 누군가의 삶에 벌어진 문제를 함께 싸워주는 사람이구나. 신기하게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군가에게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왔다고 생각한 이 길이 실은 누구보다도 내가 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그 이유가 억대 연봉, 안정감, 그럴듯함은 허상이었으나 결국 이 길은 내가 택한 길이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거나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이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 이유가 어떠하든 내가 이 길을 택했구나. 그러니 이제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지며 조금은 뒤늦게 내 선택의 의미를 찾아낼 일만 남았구나. 선택의 순간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내가 바라는 것이 있었고, 매 선택의 순간마다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왔구나. 나로서는 최선이었구나.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분명 조금 전과 같은 곳에서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데 한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유함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내가 만들어 왔구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제야 내가 다음 발걸음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나는 이 일을 통해 끝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볼 용기가 생겼다.
나는 계속해서 나를 발전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하나의 직장으로 정체성이 만들어지기보다 내가 하는 일로 정체성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구나. 내가 속한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고,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기여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낄 때 성취감을 느끼고 뿌듯한 사람이구나. 나는 그런 실감을 느낀다면 얼마든지 힘을 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그럴 때 행복하구나. 그래서, 나는 이 길에 왔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자유로워졌다.
어쩌다 변호사가 되었지만, 변호사가 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이 길을 가기로 오롯이 내 의지로 결정했다. 사람들에게 그럴듯해 보여서도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어서도 아니었다. 내가 고를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그럴싸해 보여서도 아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 길을 택했다.
삶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온 것 같다며 이미 모든 삶이 정해진 것 같은 답답함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여기까지 왔고 나는 생각보다 더 내 삶을 걱정하고 아끼며 만들어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삶을 나의 발로 딛고 서서 걸어가고 있다는 실감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한 번 내 삶을 나의 의지로 살기로 결정하고 그 길에 발을 내디뎌본 사람은 그전으로 돌아가기 힘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