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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변호사 May 21. 2020

어쩌다 변호사가 되었다.

이 사실을 내 입으로 내뱉기까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어쩌다 변호사가 되었다. 


내 직업을 밝히고 나면 많은 이들이 "어릴 때부터 법조인이 되고 싶으셨어요?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셨어요?"라고 물어본다. 그럴 때면 대충 "아니요 뭐 꼭 그랬던 건 아니에요 하하"라며 말 끝을 흐리지만 내심  "저는 어릴 때부터 예체능을 사랑했고, 법을 좋아해 본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답니다. 대학시절 내내 법이 조금이라도 관련된 수업은 전부 피해서 들었는걸요 허허"라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늘 조심스러운 것은 마치 내가 변호사가 된 것이 '쉬웠다는 말처럼' 오해가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단언컨대 내가 변호사가 된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아니 한 때 안 좋은 선택을 생각했을 만큼 괴로웠고, 매일매일 울다 잠들어서 눈이 짓무르기도 했고, 이 세상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행복해 보였고, 나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 같은 생각에 괴로웠다.


그러니 여기에서 내가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을 본 그 모든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길을 갑자기 걷게 된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어릴 적부터 하고 싶던 무용이나 아나운서와 같은 꿈을 접으면서 내가 "잘하는 것"으로 진로를 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은 바로 '공부'였다.


이렇게 단순한 이유로 고시공부를 시작했고, 정치학이나 국제정치를 공부할 때면 온몸의 피가 초콜릿으로 바뀌는 것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국제정치나 외국어 공부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외무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 감사하게도 덜컥 PSAT에 합격을 하고 나자 "와 이러다가 정말 외교관이 되면 어떡하지? 나 정말 외교관이 되고 싶은 거야?"라는 질문을 그제야 던지기 시작했고, 독서실 구석에 멍하니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외국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지 않아. 나는 부모님을 두고 나 혼자 외국으로 떠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자 생각보다 결정은 쉬웠다.


그 길로 책을 덮고 독서실 내 자리의 모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 쿨하게.


남은 고시를 살펴보니 행정고시와 사법고시가 남아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내가 왜 '어쩌다 변호사'라고 말하는지 드러나지만 나는 정말이지 법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게 피하고 피해 결국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한창 수험생활을 하던 중에서야 나 자신에게 "너 그래서 행정고시 합격하면 어느 부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야?"라고 물어보았고, 그 질문에 며칠이 지나도록 답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어야 했다.


마침 짧은 기간에 수험생활을 끝내겠노라고 하루에 16시간 동안 핸드폰도 없앤 채로 10개월을 공부를 하고 있던 차라 몸과 정신에 적색경보가 들어왔고, 나는 그 길로 다시 한번 책을 덮고 모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조금은 덜 쿨하게.




그렇게 이젠 무얼 하지 라고 한창 고민을 하던 차에 우연히 로스쿨에 다니고 있던 한 선배와 밥을 먹은 자리. 그 자리에서 선배가 해준 "로스쿨 한 번 준비해봐. 입시에 필요한 스펙이 네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딱 맞아!"라는 말에 귀가 이 따시만 하게 커진 나는 바로 로스쿨 준비 학회에 들어갔고, 그 후로 매번 기적같이 로스쿨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며 나는 로스쿨생이 되었다.


그렇게 비록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것 같은 3년을 보내고 감사하게도 변호사시험에 붙었지만, 문제는 내가 "내가 변호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데? 내가 이 일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데?"라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이 질문을 로스쿨 1학년 재학 중에 던졌고, 그 결과 답을 찾지 못하겠다며 자퇴서를 들고 지도교수님을 찾아갔지만(이런 결정은 대체 왜 이리 신속하게 잘하는 것인가) 교수님께서 설득해주신 말에 마음이 누그러져서 혹은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고 할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렇게 나는 계속 학교를 다녔고, 결국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피했다고 생각했던 질문은 내가 변호사로 일하는 내내 종종 아니 이전보다 점점 더 자주 나에게 날아와 꽂혔다.

"그래서 너 법조인이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건데? 내 목표가 뭔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 일로 어떻게 할 건데?"


더 이상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시점에 다다르고도 좀 더 바쁘게 일을 하고 좀 더 바쁘게 취미생활을 하면서 끝까지 이 질문을 피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을 하는 순간마다 우울했고 점점 더 나는 지쳐갔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질문을 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느끼고서야 오롯이 이 질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은지. 나는 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는지. 나는 어디에서 일을 하고 싶었는지. 내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왜 싫은지. 나는 대학생 때, 즉 지금보다 미래에 대한 선택이 좀 더 자유로웠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내가 말하던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을 기다렸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끝에 이제는 아주 조금씩 그 답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다. 그 목표를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가지고 기여하고 싶었고 나에게는 그것이 공부였다.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게 어떤 방법이든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 전반의 기틀이자 뼈대가 되는 법을 통해 내 목표를 이루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도달했다.


아직도 나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그럼 어떠한 방법으로 그러한 목표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길을 찾고 싶고,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의 다음 발자국은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질문을 피하기만 하는 것도, 혹은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 서서 거대한 질문 하나를 머리 위에 띄워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찾아온 답을 조금씩 더 구체화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다.라는 멋진 결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그저 내가 이렇게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삶의 매 순간 이러한 질문 앞에 떳떳하기를 바라본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기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나도 그들도 계속되는 고민 속에도 지치지 않기를, 그리고 그 고민 가운데 아주 조금씩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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