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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변호사 Dec 11. 2022

단 3개월만이라도 빨리 구치소에서 나갈 수 있다면.

자유의 가치

“사는 것이 감옥 같다. 여기가 감옥과 다를 것이 무어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교도소의 내부 시설 사진과 함께 "내가 사는 곳보다 나은데 수용자가 부럽다."라는 글을 본 적도 있다.


집과 사무실만 반복하며 개인적인 삶이란 없는 일상을 살다 보면 그 말에 순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형사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피의자, 피고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구속'이다. 처음에 형사사건을 다루었을 때에는 '구속'의 무게에 대해 알지 못했다. 통상 법정 드라마에서는 구속된 피의자, 피고인들을 보는 경우가 많고, 형사사건을 쉽게 접할 일이 없는 일반 사람들도 형사사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소위 말하는 "철컹철컹', 구치소, 교도소, 콩밥" 뭐 이런 단어들을 쉽사리 떠올리니까.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은 "내가 너 고소할 거다.", "내가 너 콩밥 먹일 거다.", "이거 하면 콩밥 먹나요?" 따위의 말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지는 말들 때문이었을까. 이 문장들을 들으면서도 그 무게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00 씨죠? 여기 00 경찰서입니다. 00 사건으로 고소장이 접수되었는데요, 언제 조사받으러 나오실 수 있으신가요?" 이 전화를 받은, 그러니까 그 순간 피의자 신분이 되었음을 알게 된 의뢰인들은 본인이 형사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가장 먼저 구속의 위험을 떠올리며 공포에 떤다. 


이는 의뢰인뿐만이 아니다. 형사사건을 담당한 변호인들에게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들이 몇 있으니 그중 하나는 바로 '영장실질심사' (구속 전 피의자심문).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때리면 변호인에게는 짧게는 하루 어쩔 때에는 반나절밖에 영장실질을 준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퇴근을 하다가 불려 가기도, 주말에 신나게 약속 장소로 향하다 억! 소리를 내며 회사로 달려가기도 한다.


몇 년 전. 부지런하게 자기 계발을 해보겠다며 일을 하면서 통번역대학원의 비학위과정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이른 토요일 아침 부지런하게 일어나 공부를 하러 가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며,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달달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띠리링-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 불길하다. '워후. 젠. 뭐지...' 온몸으로 불길함을 느끼며 전화를 받은 순간, 하, 의뢰인의 영장실질이 잡혔다. 우리에게 주어진 준비시간은 반나절.


지금 당장 와줄 수 있겠냐는 파트너 변호사님의 조심스러운 부탁에 "네!"라고 답하며 들고 있던 따뜻하고 달달한 사랑스러운 카라멜마키아토는 '에잇!' 휴지통에 던져 넣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달콤함을 즐기고 달려갈 여유조차 없었기에.


사무실에 도착하자 긴급 콜을 받고 달려 나온 변호사님들이 계셨다. 우리는 전체 목록의 일부분씩 나눠 분배받은 후 사안을 파악하고, 의뢰인의 구속의 필요성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민첩하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멋있었다. 솔직히.) 그렇게 우리는 의견서 출력본을 들고 법원 당직실로 뛰었다. 제출을 하고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변호사들이 또 소름 끼쳐하는 단어가 있으니, (하 이건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You-know-who"와 같은 금기어와 같다고) 바로 "법정구속".


사람들은 형사사건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하면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 그러고 보면 드라마에서 피고인이 불구속 재판을 받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극적인 요소를 위한 것일까) 수의를 입고 옆 문으로 경위의 인도를 받아 법정으로 들어서는 피고인을 떠올리지만, 이는 구치소에 있으면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도 많다.


그러니까 민사사건처럼 자기 옷을 입고 집에서 자고 일어나 회사에 가듯 법정에 와서 방청석에 앉아있다가 사건 번호를 부르면 변호인과 함께 앞으로 나가 잠시 재판을 받고, 선고를 받는 날 전까지는 재판이 마치면 다시 법정 밖으로 나와 영화를 보러 가든, 친구를 만나 술 한잔을 마시러 가든 그렇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설명이 길었지만, 그리하여 법정구속이란 이렇게 걸어와서 재판을 받다가 드디어 재판이 끝나고 선고를 받는 선고기일에 판사님이 "징역 1년"이라고 집행유예 기간 없이 징역형을 내리시면, 재판을 받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방청석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그 입고 갔던 옷 그대로, 들고 있던 소지품 그대로 바로 옆 문으로 끌려나가 구속이 되는 것이다.


법정구속. 하 다른 사건의 법정구속 장면을 보았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판사님 제가 차를 세워두고 왔는데 금방 차만 살짝 빼주고 오면 안 될까요..?"라고 빌다시피 하던 피고인. 방청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이 울며 달려 나가자 법정 경위가 가족들을 막고 피고인은 그런 가족들과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고 울면서 방청석으로 몸을 던지다 경위들에게 제지를 당하고 끌려나가는 모습까지.


의정부지방법원 정문 앞 주차장에는 이렇게 커다랗게 쓰여있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오늘 구속될 것 같은 분들은 차키 맡기고 가세요!"라고... 이 표지판을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렇게 변호사들끼리만 한참을 웃었다고 한다. (그래 우리들만 웃긴 거겠지...)


이렇게 형사사건에서 모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구속이다.


구속 피고인 사건의 항소심 사건을 맡게 되면, 의뢰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 또한 항소심에서 형이 감형되는 것,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것, 이미 살았던 기간 이내로 형이 감형되어 항소심 판결이 나오는 순간 구치소에서 나갈 수 있는 것.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자유다.


이 자유를 위해 형 기간을 3개월이라도 줄여보자고 변호인을 선임하고, 자료를 제출하고, 제출할 자료를 찾기 위해 온 가족이 뛰고, 합의를 시도하고, 변호인이 나선다.


3개월만이라도 감형을 받고 싶다던 의뢰인의 구치소 면회를 마치고 나오던 날이었다. 그 의뢰인은 형이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의뢰인의 구치소 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과 그 가족들은 이 단 몇 개월을 위해 이렇게 간절히 노력하고 있구나. 내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3개월은 어떠한가. 3개월.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빠르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그 시간들.


나는 이 구치소 접견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를 하고, 감옥 같은 일상이라며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자유가 있구나. 과연 그들이 이렇게 원하는 자유를 나는 누리고 있는가. 그들이 바라는 그 자유의 가치를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형사사건을 하면서 자유를 잃어본 이들을 통해 자유와 일상의 가치를 깨닫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생각했던 이 일상의 가치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불만으로 가득했던 이 일상조차 누군가에게는 간절히라는 자유라는 것을. 어찌도 쉽게 잊고 사는지.


이런 일을 통해서야 감사함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죄책감이 들지만, 지금 내 생활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간곡히 바라는 일상임을 떠올리면서 조금 크게 숨을 쉬어본다. 자유로운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특별할 것 없는 이 일상의 순간마다 감사함을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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