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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지향 존재론과 주체지향 존재론

by 소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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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난 소식입니다.(기록 차원에서)

8월 24일 "한국생명생태사상 다시 읽기> 공부모임에서는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OOO, Object-Oriented Ontology)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객체지향 존재론은 “데카르트 이후 철학은 ‘주체–객체’ 이분법적 구조를 바탕으로, 인간(주체)이 세계(객체)를 인식·재현한다는 (문제가 있는) 기본 전제(인식) 위에서 성립되었다”는 성찰적 인식으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먼의 문제의식, 즉 객체지향존재론(물론 이것은 하먼만의 주장이 아니라, 유사한 여러 사상가들의 사상을 통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에 따르면, 객체는 인간에게 드러난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접근 가능한 객체’와는 무관하게, 객체는 그 자체로 “철수된 존재(withdrawn being)”로서 자기-존재성을 갖습니다. 이로써 객체지향존재로는 인간 중심 철학(코릴레이셔니즘)을 넘어, 인간-비인간-사물 모두를 동등한 존재자로 놓고 사유하는 방식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객체지향 존재론을 동학의 관점에서 보면, 동학의 만물관(萬物觀)과 긴밀하게 연결된다(유사성)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해월 선생이 <삼경(三敬)> 법설에서 “인오동포·물오동포”를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즉 “(사람은) 경천(敬天)함으로써 인오동포(人吾同胞) 물오동포(物吾同胞)의 전적이체(全的理諦)를 깨달을 것이요, 경천함으로써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 세상을 위하여 의무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경천은 모든 진리의 중추(中樞)를 파지함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해월 선생의 또 다른 법설 <이천식천(以天食天)>에서 “내 항상 말할 때에 물물천(物物天)이요 사사천(事事天)이라 하였나니, 만약 이 이치를 시인한다면 물물(物物)이 다 이천식천(以天食天) 아님이 없을지니...”라고 한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물물천 사사천’은 은 ‘물’과 ‘사’의 ‘고귀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한울’이라는 점에서 ‘주체’ 즉 능동적 행위자라는 점을 말하고, 이것은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 또는 그것을 포함하는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의 발상과 깊숙이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객체지향 존재론이나 동학의 ‘삼경’ 또는 ‘물물천 사사천’은 모두 인간만이 특권적 주체가 아니라, 만물 자체가 주체성을 갖는 존재라는 인식의 전환 - 다시개벽의 발상이라는 것이 이 글에서 주목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다담 객체지향 존재론은 여기에 ‘가치평가’가 결여되어 있다면, 동학에서는 이를 경‘천’이나 이‘천’식‘천’으로서, “천(天)일원론(=지기일원론)”의 토대 위에서 체계화함으로써 그 ‘고귀함’을 기본조건으로 장착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이 ‘동학의 님 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님의 철학’은 조성환이 제시한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난 간취(看取)되는 바로, 동학의 신관 또는 인간관의 특징으로 천(天 )은 초월적인 신(神)이 아니라 만물의 내재적 근원, 만물의 동일성(同胞)의 근거가 되는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을 선언적으로 말한 것이 “일용행사 막비도(日用行事 莫非道)”라는 말입니다.


서구 근대 철학에서 문제가 된 주체-객체의 이분법이나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하먼(혹은 서구 사상가들)의 사상은 ‘객체지향 존재론’이라고 불리지지만, 이런 점에서, 즉 주체(=사람)과 객체(=物) 모두를 주체로서 간주한다는 점에서 동학의 사상은 ‘주체지향 존재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동학의 핵심사상을 ‘인내천’이라고 하고, 따라서 동학은 ‘만인평등’ 또는 ‘인간의 존엄성의 극대화’라고 이해하고, 여기에는 부지불식중에 동학을 ‘인간중심주의’로 이해하는 성향이 개재(介在)합니다. 그러나 ‘주체지향 존재론’으로서의 동학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만이 특권적 주체”라고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동학사상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동학의 ‘천-일원론’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한울(天)중심주의’이고, 그 천에는 인간과 만물이 동등하게 포함(包含)됩니다. (‘한울중심주의’가 ‘신(神)중심주의’일 수도 없는 이유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만물 중의 하나, “1 / n(만물)”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인간은 만물과 동토이지만, ‘천’을 자각하는 능력으로서, 독특한(특권적..이 아니라)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객체는 결코 그 자체로서 독자적으로, 완전히 (인간에게) 파악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드러난바, 물물천 사사천이라고 하는 내재적 연결망 속에서 드러나는 바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동학의 감응론입니다. 이는 어려서 헤어진 부모와 자식이 만났을 때 ‘직감적’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경우를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확신하기까지는 유전자 검사나, 남아 있는 기억을 대조해 보는 과정을 거치지만, 최초의 느낌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물론 그 ‘최초의 느낌’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 경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먼을 비롯한 서구 사상가(들이 먼저 시작하였고, 오늘날에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매진하는 많은 한국의 철학자들)이 지양(止揚)하려 한 ‘인간-객체 이분법(=근대 서구 사상의 그본 토대)’의 문제를 동학은 19세기 중반에 “천-일원론(=지기일원론)과 만물동포, 이천식천(물물천 사사천) 사상” 등으로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동학은 이를 ‘주체지향 존재론’(이것은 필자의 造語임)으로 한 차원 높였으며 객체의 ‘은폐성’보다는, 존재 간 관계적 개방성과 상호주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 ‘활동적·실천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동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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