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Jun 16. 2024

찌질해서 좋은 <망원동 브라더스>


찌질하고 좋다. 밑줄 긋지 않고 읽었다. 요즘에 읽는 책들은 대게 밑줄을 그으면서 머릿 속에 넣으려고 애쓰는 경제나 재테크 도서들이라 밑줄 긋지 않고 읽는 책이 소중하기도 하다. 내게 책 속 밑줄은 어떤 강박 같은 것. 그런 것 없이 읽어서인지, 그냥 저 찌질함이 편해서인지 쉬지 않고 읽었다.

월세 낼 돈이 없어 보증금을 까먹고 있는 만화가, 아내와 딸은 캐나다에 두고 온 백수 기러기,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을 일만 남은 왕년의 스토리작가, 그리고 만년고시생. 이들이 8평 옥탑방에 모인다. 이 모습에 주인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찬다. 찌질하고 볼품 없는데 그런 상황이 마냥 편하게 느껴진다. 옥탑방에 산 적은 없지만 자취생 생활을 한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내가 촌놈 출신인 때문인지. 역시 난 고급 쪽은 아니다.

사실 작중 찌질이들보다 내 상황은 좋다. 월급 밀릴 일 없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그 덕에 월세도 꼬박꼬박 낸다. 비교하자면 내가 더 상류층이랴. 더 나은 삶이랴. 따위의 비교로 시작된다. 이 책도. 끼리끼리가 더 그런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비교는 중요하지 않다. 앞에 놓인 소주가, 라면이, 삼겹살이, 콩나물 해장국이, 에어컨이, TV가, 야구경기가,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이 소중할 뿐이다.

서점 베스트셀러에 있기에 집어본 책이다. 그런데 2013년작이다. 마침 부산촌놈이 서울로 유학을 왔던 시기다. 첫 1년은 기숙사에 살았고, 다음 해 반년은 자취를 했더랬지. 그리고 곧 입대. 전역 후의 두 번째 자취. 이 책은 그 두 번째 자취랑 향기가 비슷하다. 그건 아마 첫 자취는 빌라에서, 두 번째 자취는 같은 현관을 쓰지만 1층과 2층을 나눠 집을 쉐어하는 오래된 주택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고, 망원동 브라더스의 옥탑방처럼 내 집이지만 나만의 공간은 아니었던. 뭐, 지금은 다른 곳에서 세 번째 자취 중이다.


#망원동브라더스

작가의 이전글 헤리티지(Heritage), 뭐 그럴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