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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Feb 13. 2017

사랑해도 괜찮아.

내가 행복할 수 있어서


닮았었다. 이전의 그 사람과 닮은 구석이 있는 그에게 뭔지 모를 이끌림에 다가갔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호기심에 시작한 호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남자와 사랑을 했던 나였기에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줄 조신한 여자로 봐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귀고 난 후에 통화하던 중 우연히 나온 이 얘기에 그는 수화기 너머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다급함으로 나의 오해를 따끔히 지적해주었다. 분명 화난 소리로 말했는데, 그게 어찌나 멋있던지 볼 때마다 반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한 연애였다. 쉽지 않은 연애일 거라, 힘든 일이 많은 연애일 거라, 그리고 많이 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 연애였다.


평범한 사람이 아녔기에 당연히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연애로 자존감이 낮아진 나를 세상에서 가장 이쁜 말들로 감싸준 그였기에 난 또 누군가를 믿어보고 싶었다.


평범하지 않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일반적인 연애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자유롭지 못하고, 자의로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다. 당장 내일의 일도 예상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내가 그를 100% 알지 못한다. 그의 사랑을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내가 그의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마치 드라마 주인공 마냥 애달프게도 서술해놨구나 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을 제외한 제3자들은 아는 결말이라면, 이 외로움과 고독함에 끝을 알 수 있다면, 그마저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지경이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 사랑한다, 고맙다. 와 같은 달콤한 말보다는 이해한다, 괜찮다 와 같은 어쩌면 씁쓸하고 슬픈 단어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말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책에서 많이 봐왔다.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내가 직접 겪는 상황이 오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이해했다. 그리고 정말로 괜찮았다. 그를 위로하기 위한 입발림이 절대 아니었다. 근데 왜 알지못할 서러움은 새어나와 날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드는지. 자신의 감정 하나 컨트롤 하지 못하고 하루에 수십번의 조울증을 드러내는지. 왜 사랑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의 일이 있는 당당하고 멋있는 여자가 되지 못하는지...


그렇게 수없이도 생각을 하다가 '연애를 못해본 티가 이렇게 나나보다'하고 단순한 말로 스스로 결론을 내리려 애쓰곤 한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기적인 면이 있어 '아니다' 싶은 순간에는 칼 같이 날카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는 내가 정이 많고 상처도 잘 받는 여린 사람인지 몰라준다.(사실 정말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데..) 하지만, 이번에는 정이 많아서도 아니고, 사실은 이기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그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내가 행복하니까 이 연애를 그만둘 수가 없다. 그게 결론이다.  


봄날이 오면 또 걸어야지


 왜 그렇게 아파하면서 까지 이 연애를 이어나가고 싶은지는 내가 헤어지면 알게 될 이유다. 나는, 아직은, 그래도, 여전히, 지금 한때로 지나갈 서러움을 참고 넘기자고 날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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