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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Nov 10. 2018

런던에서 만난 새로운 일상

늘 오른쪽 어깨에 매던 핸드백 대신 양쪽 어깨 가득히 커다란 백팩, 뾰족한 하이힐 대신 편안한 운동화, 

불편한 오피스룩 치마 대신 펄렁한 바지에 티셔츠. 제법 학생처럼 보이는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아침 출근길 직장인들 인파에 섞여서 어학원 가는 길은 이것저것 관찰하고 기억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영어 공부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나를 다독여 주었던 드라마 '셜록' 오프닝 속 풍경. 빅벤과 런던아이의 전경이 어우러진 그 풍경을 보면서 매일 같이 지나다닌 학원 가는 길은 내가 꿈꾸던 런던살이의 모습과도

너무나 일치해서 아직도 꿈이 이뤄졌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자기 덩치만 한 백팩을 메고 뚜벅뚜벅 빨리 걸어가는 사람들 옆으로 아침부터 마라톤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그 옆으로는 자전거 출근 부대가 한가득 지나간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면 자전거들이 경쟁하듯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다. 버스 정류장에선 한 줄 서기의 모범을 보고 감탄했고, 런던 중심가로 들어오면 오전 8시임에도 만석인 카페 속 바쁜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거나, 이미 그곳에서 작은 미팅을 시작했거나, 노트북을 켜고 열심히 무엇인가 타자를 치고 있는 사람들, 블루 수트가 어울리는 멋진 남자들은 열띤 토론을 하고 있고 바쁘고 활기 넘치는 대도시의 삶의 현장이었다.



어학원 첫날은 충격과 공포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을뿐더러, 수많은 언어가 오고 가는 이 현장 속에 앉아있다는 자체로 너무나도 신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을 할 땐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레벨테스트였던 인터뷰에서는 2년 동안 직장생활 틈틈이 공부했던 영어가 무색할 정도로 말을 너무 못해서 멘붕의 연속이었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문법은 맞지 않을지언정 엄청난 자신감으로 마구 쏘아대는 유러피안들의 영어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다. 대부분이 대학 졸업반이거나 대학 가기 전 갭이어를 가진 십 대들이었다. 취업을 위해 영어가 필요해서 런던으로 온 유럽 친구들은 학생으로 살고 싶어 이곳에 왔다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학생 카드에 유럽 나이로 28살. STUDENT라는 글자만 봐도 흐뭇했던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의 생각보다 낮은 레벨에 반이 배정된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쁘지 않다는 자세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좋은 게 좋다고 수긍하는 나와 달리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자신의 레벨을 수긍할 수 없다며 서툰 영어로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유럽 친구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수업시간도 문화충격의 연속이었다. 자유로움 속에서도 체계가 잡혀있었고, 모르는 건 즉시 질문하고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친구들, 그리고 창의적인 생각들. 학생 주도적인 수업방식에서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와 외국의 교육 방식의 차이점을 몸소 느끼며 나의 뇌는 전에 없던 집중력으로 매일매일 수업시간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쉬는 시간이면 우리는 각자의 언어를 서로에게 알려주고, 런던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국에 살면서 유럽을 여행할 때마다 늘 하던 생각은 유럽 사람들은 이런 사회복지제도 속에서,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친구들이 나처럼 런던을 좋아한다는 것은 놀랍고 신기한 것이었다.


스위스에서 온 친구 C는 17살의 정말 예쁜 소녀이다. 금발에 매혹적인 갈색의 눈. 17살 답지 않은 몸매는 누가 봐도 그녀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하길 스위스는 멋진 자연 조용함, 다 좋지만 지루한 곳이라고. 그래서 그녀의 꿈은 런던에서 직장을 얻고 런던에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곳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항상 동경해왔다고 말이다.


독일에서 온 A는 18살의 정말 똑똑한 친구이다. 진지하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유머를 구사하는 독일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그녀는 오늘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브렉시트 같은 정치적 이슈를 토론할 때 가장 빛이 난다. 원래 3주만 머물고 독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런던에서 그녀가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 도시의 매력에 이끌려 더 살아보자 싶어 육 개월을 연장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온 E는 26살. 대학교에서 일한다. 그녀가 사는 도시는 무려 파리였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부럽기 그지없었다. 매일매일 에펠탑을 보고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싶어서. 그녀 역시 런던에 온 이후로 삶의 가치관이 변했다고 한다. 좀 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이직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고, 서른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나이에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런던에 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파리에 대한 자부심도 굉장했지만 그래도 런던을 더 사랑하는 E 였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국 우리는 유럽이나 아시아나 아메리카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익숙한 일상에서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고, 이곳이 아닌 세계를, 지금보다 좋아 보이는 것을 동경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런던이라는 이 공간에 우리가 빠져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몇십 년을 똑같은 일상을 살다가 새로운 환경에 두발을 딛고 서게 되니 저절로 머리와 마음은 열리고,그 열린 문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경험들은 여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들이기에 강렬한 것이 아닐까.


이곳에 오고 나서 아직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카페를 가거나,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걷거나, 마트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너 여행 왔니? 아니면 런던에 사니?”라고 물으면 “여기 살아요”라고 대답한다. 

대답하고 나서도 얼떨떨하지만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린 이곳은 꽤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는 취미라고 말하던 요리, 사진, 글쓰기, 꽃꽂이가 일상이 되었다.

먹고사는 게 낙이라서, 외식은 비싸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밥을 하는 게 재미있고, 하루 종일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의 기억을 글로 기록하고, 방안엔 슈퍼마켓에서 몇 천 원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꽃들로 생기를 불어넣는다. 매일매일 2만 보씩 걸어 다니고, 일을 하지 않아도 하루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적응이라 할 것도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을 했으니까.

스무세살부터 시작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바깥 음식과 스트레스에 몸이 얼마나 힘들었던 건지. 그렇게 달고 살던 변비, 등과 얼굴에 매일같이 올라오던 여드름도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늘 퉁퉁 부어서 무겁던 몸도 너무 가볍다. 고등학교 입시가 끝나자마자 대학교에서도 수험생활, 그리고 바로 이어진 직장 생활. 쉴 틈 없이 이어지던 생존의 시간을 살다가 갑자기 여유가 생기니 몸이 바로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요즘처럼 아무 걱정 없이 살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불편한 것이라곤 인터넷이 느린 것과 와이파이를 마음껏 쓸 수 없다는 것과, 지하철을 타면 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그 정도였다. 



친언니 같은 집주인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오롯이 너를 위해서 산 게 아니었을 거야. “


“아니에요 언니. 가정을 책임진다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하고 싶은 거 하고 여행도 다니고 나를 위해서 산 거 같은데요?”


“물론 그렇게 사는 것도 너를 위한 삶이었겠지만 지금 마음이 훨씬 더 가볍지 않니?”


나는 부인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 미안하지만 정말 엄마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서 안 보이니 마음이 편했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일도 없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했다. 왜 평범하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랄 수 없었는지, 물론 세상엔 나보다도 못한 사람들도 많지만. 평생 자식만 걱정하고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당연히 포기하고 살았던 엄마였기에 그걸 보면서 자란 나는 당연히 엄마를 내가 책임져야 하고 효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부담이 되었고, 책임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기회가 왔을 때, 이번처럼 휴직을 결심하면서도 부양이라는 책임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때. 내가 꿈을 좇을수록 엄마는 나를 존재하는 울타리인 동시에 변화를 망설이게 하는 족쇄였다.



하지만 엄마로부터 9,000km 떨어진 이곳에서, 그 어떠한 책임을 질 것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책임으로부터 탈출한 지금 완벽하게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 


내가 힘들게 벌어서 모은 돈이었기에 매일 열심히 공부했고, 돈을 허투루 쓰는 일도 없었다. 

어렵게 얻어낸 휴직이었기에, 서른 살에 선택한 다시 오지 못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루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걸어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흡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매일매일이 내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멋진 노을이 풍경을 다했다. 내 앞을 걸어가던 청년이 갑자기 노래를 시작한다. 잠깐 당황했지만 목소리가 참 좋다. 옆에 있던 그의 여자 친구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서 걸어간다. 한편에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세워놓고 아름다운 저물어가는 이 시간을 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저 멀리서 쿵쩍쿵적 음악소리가 다가온다. 이층 버스에서는 파티가 한창이다. 파티에 취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손을 흔든다. 지나가던 누군가도 그 음악 소리에 맞춰 흥에 겨워하며 버스 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저문다. 그 저 이 순간을 즐기고 마음에 담고 오래도록 곱씹으면서.

앞으로 런던에서의 시간도 오늘만 같기를 기도하면서.



런던의 푸른 여름이 한창이던 날. 어학원 짝꿍인 17살 소녀 C가 스위스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나를 꼭 안아주면서 그녀가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J. 런던에 있는 동안 후회 없이 다 즐기고 가.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너를 위해서 즐기면서 살아. 너의 삶이야.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너의 삶을 사는 거야. 절대 잊지 마! 여기는 런던이야! “



그래 여기는 런던이다.

온전하게 나로서 살아볼 자유가 허락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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