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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Nov 17. 2018

내가 선택한 후회 없는 오늘

회색의 런던 하늘을 본지가 언제일까. 매일 같이 쨍한 파란 하늘로 맞이하는 영국의 여름. 

습하지 않아서 햇살이 좋으니 빨래가 금방 마른다. 원래 빨래를 한번 하면 완전히 건조되는데 이틀은 족히 걸리지만, 요즘 같은 햇살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따뜻하게 방 안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혼자 보기 아까워서 눅눅해진 배게도 창가에 뉘어 준다.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 것이 오늘 밤엔 잠도 잘 올 거 같다.


달력엔 이번 주에 방문해봐야 할 박물관과 미술관 리스트가 가득하고, 공부는 공부대로 열심히 하고 있고, 노는 것도 열심히 하고 있고, 런던에 와서 지금까지 늦잠을 자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더 바쁘게 지나가고, 하루가 모자라다. 오늘은 일찍 자야 지하고 생각하다가도 책상에 앉아 일기를 적다 보면 새벽 12시, 1시를 넘기기가 일수였다. 주말에는 곧 있을 학원 시험공부를 해보자 마음먹었지만, 방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오니 또 하루가 금방이다. 



오늘 아침엔 한국 회사에서 날아온 부고를 들었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내가 런던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분의 직원이 돌아가셨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접하는 또 다른 부고였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함께 얼굴을 보고 인사하던 직원의 부고는 처음이었다. 

두 분 모두 한참을 사회에서 활동하실 나이였고, 정말 열심히 일 하시던 분이셨는데 그렇게 하늘 저편으로 훨훨 떠나가셨다. 


이곳으로 오기 전 직장이 나에게 있어서 무엇인지, 휴직이 옳은 것인지 숱한 날을 고민했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덕에 엄마와 내가 안정적인 삶을 찾아갈 수 있었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이었기에 어리다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싫었고, 승진은 더욱 밀리기 싫었다.

그랬기에, 나의 이십 대의 전부였던 직장이었기에 선배들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경력이었지만, 고작 6개월의 공백으로 경력을 손해 볼 것을 생각하니 왜 그렇게 그동안 쌓아온 게 아까웠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조직에서 패배자가 되는 것도 싫었지만, 나보다 훨씬 이곳에 오래 머물고 계신 상사들을 보면서 그렇게 조직에 충성하는 삶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모두가 다 그런 것 아니었지만 몇몇 분들의 조직 충성의 끝은 원하던 보직의 쟁취와 동시에 건강검진에서 암을 발견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누가 어떤 가방을 샀고, 옷을 입었고, 주식에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 다음 주에 어떤 직원이 결혼하는데 남편 될 사람의 직업이 이러쿵저러쿵, 누가 땅 사서 배 아프다는 이야기, 누군가의 비밀은 오늘 우리들 식사 반찬거리가 되는 가십거리 가득한 이야기만 오고 가는 대화에도 이미 싫증이 난지 오래였다. 실제로 내가 휴직을 내고 떠났을 때도 한동안 근거 없는 소문들이 무성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잘 모르는 이들이 함부로 만들어내는 소문은 가히 훌륭한 소설이 따로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한때는 나의 전부였던 직장이 점점 돈을 주는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곳이 되어갈 때쯤,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버거워질 때쯤 나는 오늘의 삶을 선택했다. 



언젠가 플랏 메이트가 그런 말을 한적 있다.


"언니, 내가 여기 6개월 있다가 비자 만료돼서 한국 돌아갔었잖아요. 다시 돌아가면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요? 언니는 변했는데, 한국에 있는 언니 일상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거야. 가족도 직장도 주변 사람들도 다 그대로야. 난 그래서 솔직히 돌아가서 실망이 너무 컸어요. 난 이렇게 변했는데 현실로 돌아가서는 언니가 변한 걸 알려고 하는 사람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그냥 다시 내가 거기에 적응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허무해져요. 내가 런던에 살았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니까 언니. 절대로 언니가 돌아갔을 때 많은 것이 변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말고 상처도 받지 마. 기대해서도 안 되는 거야. 난 그게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거지만."



그랬다. 이 생활은 잠깐 일 뿐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곳의 일상이다. 그곳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것보다는 돌아가서 다시 마주해야 할 나의 현실들이 싫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선택한 이 삶도 남들과 달라서 아니라, 그곳에서 견딜 만큼 견디다가 선택한 일종의 “이유 있는 도피”일지도.


돌이켜보면 나의 지난 이십 대에 꿈이랍시고, 목표랍시고 성취해내고 눈물도 흘리고. 그땐 그것을 꿈이라고 생각했고, 꿈을 스스로 이뤄낸 걸 훈장처럼 생각했는데, 그 모든 시간들이 어쩌면 어떻게든 힘든 현실을 버텨내려고 나름대로 아등바등거린 것이었던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 삼십 대에는 이십 대처럼 살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동기부여를 하고 전진하다가도, 그렇게 아등바등거리면서 살 필요가 있나 하고 김이 빠지기를 반복 중이기도 하다.



며칠 전 새로 알게 된 석사 유학생 A는 10년 동안 잘 다니던 인테리어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 온 돈을 털어 런던에 석사 공부를 하러 왔다. 퇴사할 때 주변에서 부러움 반 걱정 반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특히나 남자 나이 서른여섯 살이면 장가를 가야 하지 않냐는 둥. 지금 뒤늦게 석사를 한다고 한들 어떻게 재취업을 할 것이냐는 등의 마치 자신의 인생인 양 걱정해주는 그런 말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고 확신이 있었다. 결혼이니 안정된 삶이니 하는 것은 애당초 그의 삶의 목표가 아니었고 울타리를 벗어난 세상은 생각보다 도전할 만하다고.


어학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스물하나의 B는 요즘 진로 설정에 고민이 한참이다. 그녀의 문제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도. 내가 그녀의 나이일 때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도,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던 채 유일하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지금의 밥벌이를 선택한 지난날을 생각하면 더 넓은 세상인 이곳에서 참으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A도, B도, 나도 매일 같이 반복되는 버텨내는 현실보다 조금은 다를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서 이곳에 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비싼 돈 주고 허울 좋은 명분만 만든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돈을 주고 산 삶만은 아니기에, 현실에서 감내해야 할 것들을 안고 왔기에 변화라는 단어가 반갑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색다른 이곳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도전과 곳곳에 기다리고 있는 모험은 아등바등 버텨낸다기보다는 스스로가 선택한 비싼 모험이기에 후회 없이 도전해본다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부딪혀 보고, 하루하루 달라질 나를 기대해본다.


어릴 땐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살면서 인생이 완성되는 줄 알았고, 대학생 땐 밥벌이할 직장만 잡고 나면 인생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직장인이 되고 나니 돈 벌면서 인생 아무 고민 없이 그렇게 평생직 장만 다니면서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의 삶은 숱한 고민들로 현재 진행형이다. 


처음 이곳에 올 땐 딱 6개월만 살고 싶었던 인생을 원 없이 살고, 당연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만나는 풍경, 매일 같이 일어나는 해프닝은 끊임없이 나에게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하하호호 웃고 즐기고 사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곳에 오고 나서 일기장에 써 내려가는 고민은 더 많아졌다.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 남들이 다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나의 직장도 걱정이고, 직장 동료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실에 만족하는 삶이 맞는 삶인지 아니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게 맞는 삶인지 계속 고민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수많은 고민을 스스로 만들고 살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이 결국 내가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왔다고 믿는다.



확실한 건 나이가 들고, 직장에 정착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감당해야 할 짐은 점점 늘어가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그것이 가족이 되었든, 직장에서의 위치이건, 나의 미래이건. 분명 그 짐은 나 혼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서 쉽게 내던져 버릴 수 없는 책임일 테니까.


그러니 도피일지 모험일지도 모를 이 생활도 열심히 즐겨야겠다.


아는 영어도 당황해서 못 알아 들는 나를 향한 은행원의 경멸하는 표정도,

포크가 필요해서 포크를 이야기했는데  '우리 가게에 고기는 팔지 않아'라는 점원의 답변도

매일 아침 눈뜨면서 시작되는 이곳에서의 오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이곳에서 나는 또 한 번 성장하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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