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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Nov 24. 2018

비행기 옆 자리 독일 남자와의 재회

런던으로 가던 날. 엄마와의 작별 인사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슬픈 것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나선 이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 옆자리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금발의 잘생긴 남자가 앉았다. 우린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고, 영어에 대한 의욕이 넘쳤던 나는 한마디 두 마디 더 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2주간의 휴가를 보내고 독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12시간의 비행 동안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행기가 런던에 다 닿을 무렵 그는 나의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6월에 회사에서 런던으로 파견 갈 일이 있는데 친구가 된 기념으로 맥주라도 사겠다고 하며. 나는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했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그 뒤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영화나 소설 속 흔한 장면을 기대했던 것일까. 약간의 실망은 있었지만 이내 나는 런던 생활에 푹 빠졌고 그와의 만남은 서서히 잊히는 듯했다.



어학원에서의 과정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방학을 기회로 북유럽을 여행 중일 때였다.

안부가 궁금했던 그로부터 4개월 만에 메시지가 왔다. 


“J. 잘 지내니? 아직 런던에 있는 거니? 한국엔 언제 돌아가니? 연락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 그동안 말 못 할 많은 일들이 있었어. 9월에 잠깐 런던에 가려고 하는데 만날 수 있을까?”


“나 지금 여행 중인데, 한국엔 10월 말에 돌아갈 거고, 9월엔 런던에 있을 거야.”


“그래, 여행 잘 하구. 그럼 9월에 만나!”


그때까지 만해도 그를 다시 만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라든지 설렘이라는 것은 없었다. 9월은 이제 귀국을 한 달 정도 남겨놓고 이곳에서의 생활을 하나 둘 정리하기에도 바빴고, 영어 실력을 검증해보고자 신청했던 캠브리지 시험공부에다가, 내가 기대하던 런던예술대학에서의 쇼트코스가 드디어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쨌든 약속했던 그날이 되었고, 플랏 메이트가 추천해준 식당 앞에 먼저 도착해있었던 나는,

단번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런던 방문이 처음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쳤고 그 바람에 장기 병가. 홍콩 출장이며 런던 출장이며 줄줄이 취소. 병가가 길었던지라 여름휴가를 갈 수 없었고  9월이 되어서야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잠깐의 연가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나와 했던 약속이 있기에 뒤늦게라도 온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삼일 동안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런던 곳곳을 누비며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했고, 그 시간들은 내가 런던에 올 땐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건'들이었다.


아무 말 없이 템즈강변 풍경을 바라보다 갑자기 “나는 당신이 좋아”라고 말하던 그에게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잊지 않아 줘서 고맙고,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고. 휴가가 아니라 나를 보기 위해서 런던에 온 것이라 하며 10월에 한국 돌아가기 전 베를린에 한번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에게 꼭 베를린에 가겠노라 약속했다.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한바탕의 꿈같던 시간에서 깨어나고 보니 불안과 현실이 동시에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엔 간단했다. 그냥 베를린에 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나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남자에 대한 기억들일 것이다. 나는 사랑받으면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믿었던 가족마저 깨어져버린 지 오래였고, 내가 하는 연애는 모두 내가 진심을 다해서 사랑했지만 줄줄이 실패, 그리고 그들은 지금 다들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고 나름의 삶을 살고 있다. 그 기억들은 결혼보다는 혼자 살기를 선택하게 된 나의 가치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인지 로맨스 소설과 영화, 드라마 그리고 그런 류의 글도 끔찍이 싫어한다.

 

개인적인 꿈이라든지 도전에 있어서는 실패할 수도 있다며 망설임 없이 일단 시작하고 보는 무시무시한 추진력을 가진 나지만, 특히 연애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헤어짐이 두려워서 상처 받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시작하는 것조차 싫었다. 그래서 이 독일 남자도 지금은 좋다고 하지만 장거리 연애는 안 된다던지, 진지하게 잘해볼 생각은 없다든지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한마디로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 연애의 시점에서 나는 끝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두 번째는 런던에서 남은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이곳의 생활인데, 런던에서 추억을 더 만들어도 모자랄 지경인데 내가 베를린에 갈 수 있는 돈도 넉넉지 않을뿐더러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갔는데 내가 생각했던 결과가 아니라면 그땐 돈도 시간도 너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브라질 친구 부부에게 주말 동안 있었던 일과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물론 그들은 내가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도 나의 부모가 어떠했는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답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You have to go. Take a risky. This is life."였다. 


어떻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바라느냐고. 사랑을 찾아 떠났을 때 원하는 것을 찾았다면 나의 행복이고,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불행해졌다 해도 그 또한 나의 행복이라며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것이라 했다. 덧붙여 내가 그동안 연애에 있어서 많은 실망을 했지만, 이 남자는 다를 수 있고,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충분히 갈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미 나에게 모든 마음을 표현했고, 베를린에 가본 적이 없으니 여행 간다는 마음으로 겸사겸사 가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친구들과 베를린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플랏 메이트가 퇴근하고 집에 와있다. 나의 표정을 읽은 그녀는 함께 산책 가자고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거리를 거닐면서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언니는 다 비우고 산다고 하는데 결국엔 모든 것에 대해서 압박을 느끼고 사는 거 같아요. 운동도, 공부도, 가족도, 사랑도 그렇게 다 책임지려고 하고 결과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게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언니. 사랑도 언니가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상대방한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어때요?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봤자 해결책 없어요. 그저 우리는 위로의 말 밖에 해줄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또 사랑이 흐지부지 끝날 거고 또 그렇게 언니가 해왔던 대로 모든 사람들이 언니 곁을 떠나가는 그 결과의 반복일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는 그냥 다 참고 안고 가지 말고 혼자만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솔직하게 언니 감정을 이야기해요. 미리부터 결론 보려고 하지 말고요. 그냥 그 사랑하는 감정 두근거리는 감정을 즐겨요. 언니는 그게 필요해요. 왜 처음부터 겁먹고 포기를 해요. 실망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건 기대치 높은 우리 성격 탓이니까.”



나는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그에게 내가 가진 고민을 이야기했고, 그로부터 예상 밖의 답장을 받았다. 


그 역시 런던에 오기 전까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은 일단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런던에 가는 것이었다고. 그렇기에 런던에 온 것도, 런던에서 표현했던 그의 모든 마음이 진심이었고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진심이 허투가 된 거 같아 적잖이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곤 앞으로의 일들이 두렵다면 베를린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듣고 말았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곤 또 내 손으로 결국 끝을 보고 말았다는 후회까지 밀려왔다.



그를 런던에서 만난 첫날.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시무룩해진 나를 조용히 안고 토닥거려주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어떤 남자도 나의 이야기를 공감은 해주었지만 이해해주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주 어릴 때 나와 같은 일을 겪었고 그렇게 강하게 커왔기에 이해할 수 있다고

 “힘들었지”라며 나를 토닥여 주었다. 


어쩌면 나도 행복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얻는 행복도 좋지만 평생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혼자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오랜 상처에 대한 변명일지도. 결국 나도 이런 감정에 설레는 평범한 여자이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


언젠가 집주인 언니가 그랬다. 

혼자 있는 자유와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면 자연스레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지고, 결혼도 하고 싶어 지고, 아이 낳아서 평범한 가정 꾸리고 싶어 질 거라고. 그러니까 헤어짐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고, 나도 행복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 걸 잊지 말라고. 


결국 과거에 속박되어있었던 것도,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스스로의 의지였고, 새로운 사람이 다가와도 두근거림과 설렘보다는 그와의 이야기 제일 마지막 장을 먼저 생각하며, 그것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워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밀어내 버리고 그러면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도 나였다.


내가 런던에 온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더 이상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싶어서였다.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거 다해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도전하기 위해 온 것이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온 것이니까. 그러니 사랑도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면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면 최선을 다 해봐야만 했다. 만약 그것이 기대와 달리 실망을 안겨주더라도 이곳에서의 추억으로 남기면 그만이었고, 그 또한 이곳이었기에 어쩌면 낭만적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면 내가 변해야만 했다. 사랑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 오래된 상처와 불신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그 상처 속에서 고통받을 것이라는 것도. 진작에 알았다면 어렵게 감정 소모 안 하고 먼 길을 둘러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 일이 꼬여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2017.10. 베를린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해서 서울에서 혼자 갔던 코인 노래방이 제일 재미있었다는 남자.

엔지니어라서 런던의 수많은 마켓과 관광명소보다는 과학박물관에 더 흥미를 가지던 남자.

춤추는 걸 좋아해서 내 손을 잡아끌고 베를린 한복판에서 춤을 춘 남자.

동물원 원숭이를 괴롭히는 꼬마 아이에게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의엔 아이일지라도 참지 못하는 남자. 

지하철역 가파른 계단 앞에서 유모차와 씨름하고 있는 부인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이 필요한지 묻던 남자.

내가 당신의 기쁨이냐는 질문에 기쁨이자 슬픔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는 마음에 없는 소리는 못하는 남자.


나의 런던 생활 한 페이지의 아름다운 추억이 된 그 독일 남자.


귀국이 이주 밖에 남지 않았던 10월의 어느 날.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내린 공항에 그가 있었다.


노란색과 주황색의 단풍이 가득한 가을이 한창이던 베를린에서의 30시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고,

마침내 나는 내가 만들어낸 오래된 불신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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