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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Dec 01. 2018

런던 워털루 따뜻한 우리 집

불행인지 다행인 건지 나는 서른 살이 되도록 집을 떠나본 적이, 엄마품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학생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던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집 떠나서 사는 자유가 어떤 것일까 하고 늘 궁금해했었다.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집밥 먹고 다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 행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독립해서 살아본다는 것에 많이 설렜다는 것은 숨길수가 없다.


어학원과 대학교 등록도, 은행에서 계좌 정리도, 회사에서 휴직 수속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집을 구하는 것. 아니 '방'을 구하는 것은 내가 런던에 도착하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을 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방을 빨리 구해서 정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숙제였다. 인터넷에 수없이 넘쳐나는 '런던에서 방 구하기' 글들을 보면 한 번에 제대로 된 방을 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구하고 나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로 집주인과의 갈등을 겪는 워홀러들이, 유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예외가 될 순 없기에 런던에 도착해서도 마음을 많이 졸였던 '방'구하기.



물가가 정말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 그중에서도 집값과 교통비, 외식비는 살인적이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스튜디오 하나를 통째로 렌트하는 건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고, 기숙사도 비용이 개인적으로 렌트하는 것보다 비쌌다. 집값이 상상을 초월하기에 이곳에서는 한 지붕 아래에 방을 나눠 렌트하고 주방과 욕실을 공유하는데 이를 플랏(flat)이라 부른다. 플랏에는 집주인이 같이 사는 경우도 있고, 플랏 메이트들끼리만 사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월 단위로 방세를 납부하는데, 주 단위로 납부하는 플랏도 있고, 각종 전기세, 수도세, 카운슬 텍스가 포함이 된 것도 있고 안된 것도 있고. 세탁기 쓰는 것도 하루에 횟수를 제한하는 집도 있고. 난방도 아껴서 해주는 집도 있고. 옛것을 아끼는 영국이기에 몇백 년 된 집들이 대부분이라 화장실 물이 제대로 내려가는지 수압 체크는 물론 쥐가 있는지 없는지까지도 집이 아닌 방을 구하는 것조차도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두 달 동안 영국 부동산 사이트, 한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면서, 내 마음속 기준에 맞는 물건이 나오길 바랬고 마침내 출국 삼주를 앞두고 마음에 드는 방을 발견했다. 위치며 가격이며 계약 조건이며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집주인과 뷰잉 날짜를 잡으면서 제발 한 번에 계약을 할 수 있기를 기도했고, 꼭 이 집이기를 기도했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 드디어 실제로 보게 된 방은 마음에 쏙 들었고, 마음씨 좋은 집주인도 좋았다.

집주인도 일곱 번의 인터뷰 끝에 제대로 된 방 주인을 만났다고 했다. 같이 살 사람을 찾는 것이기에 그녀는 방이 빨리 계약되는 것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그녀의 기준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운이 좋은 것인지 그렇게 될 일이었는지 소원대로 뷰잉 한 번만에 런던에서 6개월을 보내게 될 '방'을 계약했다.



우리 집주인 언니는 런던에 산지 8년이나 되었다. 그녀가 스무세 살일 때, 런던에 어학연수를 왔다가 이곳에 눌러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서 돈을 벌며 대학교 학비를 모아 공부도 하고, 그리고 취업도 했고, 지금의 폴란드인 남편을 만나 런던에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8년을 살고 있지만 아직도 런던이 질리지 않고 여전히 설렌다는 언니. 언니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그런 것들 말이다. 실제로 언니는 그렇게 살고 있었고, 

이런 마음이 통하는 집주인을 만난 것도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그녀는 패션쇼 시즌이라던지, 계약이 한창 성사될 시즌이면 밤낮없이 일했다.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면, 피곤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고 정말 즐기면서 하는 일이기에 더 잘하고 싶고 빠져들어서 하니 재미있다고 말하던 그녀. 


자신이 이십 대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런던에 와서 바닥부터 살아내면서 겪었던 외로움과 불편함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조언과 현실을 꼬집어 주는 말들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의 위치를, 나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던 날 언니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일 년 전 런던에 여행으로 와서는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걷던 거리를 함께 걸었다. 


"언니. 저는요 이십 대 초반엔 빨리 취업해서 돈 벌어서 엄마랑 먹고살만해지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고 나서 이십 대 후반엔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운 좋으면 외국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다 이뤘네요? 


런던에 온건... 그때 못했던 공부도 하고 싶고, 영어도 잘하고 싶고, 무엇보다 이제 앞으로 10년을 살아갈 목표를 찾고 싶어요. 저는 뭐랄까. 목표가 없으면 지루해지고 삶이 재미 없어지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동력이 필요한데... 그걸 6개월 만에 다 이룰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 6개월 절대 짧지 않아. 충분해. 우선 여기까지 온 너 자신을 칭찬해줘. 

넌 그게 필요해. 스스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안아줘. 잘했다고 마음껏 칭찬해줘야 해! 


영어가 꼭 늘어야 한다는 부담도 가지지 마. 영어는 6개월쯤이면 말이 트일 거야. 말이 트일 때쯤 돌아가야 하는 게 아쉽지만 그걸 그대로 가지고 가는 거야. 그냥 여기 있는 동안은 오롯이 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다해보고, 많이 보고, 듣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봐. 


정말 잘난 사람들, 배울 것 많은 사람들이 많아.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앞으로 10년의 목표 그리고 삶의 방향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 찾지 못하고 돌아가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마.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 결국 여기서 보낸 시간도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아닌 보탬이 되는 시간들일 거니까. 지나간 아쉬운 시간을 내려놓는 것도 네가 해야 할 일이야. 그리고 내가 볼 땐 너는 돌아가기 전에 이미 한참 달라져 있을 거야. 고민하는 만큼 사람은 변하는 거니까. 너는 충분히 다 이루고 돌아갈 거야!"


언니의 말이 맞았다.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노을이 아름답게 지던 트라팔가 광장 앞에서 다시 온 게 믿기지 않는다며 호들갑 떨며 나눴던 꿈같은 이야기는 정말 6개월 뒤 현실이 되었으니까. 내가 런던에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나 스스로도 몰라보게 성장했으니까.



우리 플랏 메이트는 이제 스물한 살이다. 내 눈엔 아직 병아리 같은, 

이 힘겨운 타국 살이를 견딜 수 있을까 걱정되는 친구였지만 그녀는 나보다도 더 단단하고 철이 들었다. 


사실 그녀의 배경은 부족한 게 없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서도 살아보고, 고급 스포츠도 배우고, 부모님이 알려주는 길만 따라가면 장래도 촉망받던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그녀가 가고 싶은 길이 있었다. 그렇지만 딸이 편하게 고생하지 않고 살기 원했던 부모님은 딸의 장래희망에 동의해 줄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부모님이 만들어준 길 대신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선택했고, 대학 대신 일찌감치 취업을 선택했지만 너무나도 어린 그녀에게 사회는 텃새와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결국 그녀는 든든한 부모님의 지원도,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도 다 포기하고 런던을 선택했다. 

생활비를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는 그녀는 이곳에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학원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20대를 이곳에 바치고 있다. 잠도 제대로 잘 시간도 없고, 편하게 놀러 나갈 시간도 없고, 가끔은 코피도 쏟지만, 가끔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런던에서 꿈꾸는 대학에 입학해서 원하는 전공을 졸업하고 멋지게 취업해서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될 거라고 했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자신의 선택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 생각 하나로 오늘도 코피가 흥건한 휴지를 쥐고 아침 출근을 나서는 그녀였다.



어쩌면 그녀를 만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같이 산책도 다니고, 가끔은 내 방 의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함께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집주인 언니가 한 달 동안 집을 비웠을 땐 우리 세상이라며 매일 같이 함께 요리도 하고, 여러 사람을 초대해서 함께 놀기도 하고, 나보다 철이 더 든 그녀여서 연애 상담이든 인생 상담이든 마음속에 있는 어떤 이야기든 다 할 수 있었던 시간들.


그녀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교통비 아껴보려고 하루 종일 런던 북쪽에서부터 집이 있는 남쪽까지 여행 삼아 장장 8시간을 걷던 날, 배가 고픈데 밥 먹기엔 어중간해서 마트에 들려서 감자칩 6개가 든 1파운드짜리 감자칩 묶음을 사서 집으로 오는 길 위에서 다 먹어치우며 그래도 오늘 너무 행복한 거 같다고 깔깔거리던 날일 것이다. 돈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추워도 그냥 마음 맞는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도시를 걷고 있는 시간 자체가 나에겐 소중했으니까.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그녀는 종종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주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로 맛을 낸 파스타. 그녀만의 레시피를 몇 번이고 어깨너머로 공부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아무리 따라 해 봐도 그녀의 손맛은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도 토마토를 볼 때면, 파스타를 만들 때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이 생각나고, 그녀가 보고 싶어 진다.



내가 3주간 여행을 간다고 집을 비웠을 때, 그녀는 내가 없는 동안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일도 힘들었고, 친언니처럼 의지하던 내가 없으니 내가 한국에 아예 돌아가버리고 적응하는 기간처럼 느껴졌다고. 나 역시 여행을 하면서 그녀가 해주던 요리가 그리웠고, 매일 밤 함께 보던 영화가 그리웠고, 

함께 먹던 감자칩이 그리웠다. 


신발이 두 켤레뿐이었던 나에게 여행하는 동안 발이 편해야 한다며 비싼 운동화도 빌려주고, 옷이 별로 없는 나에게 여행 가면 사진이라도 잘 나와야 한다며 옷도 빌려주고, 데이트를 하러 가는 날엔 이것저것 입혀보며 코디를 해주기도 하고, 내가 속이 쓰린 날이면 어떻게 알고 먼저 문자를 보내서 술 먹자고 이야기해주고, 어떤 날은 내가 좋아하는 것 사 왔다며 깜짝 선물을 내밀기도 하고, 그렇게 우린 정말 친자매처럼 지냈다.



런던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하나둘 마무리를 향해 달려갈 때쯤. 어느덧 집주인 언니에게 마지막 방세를 납부할 날도 왔다. 파운드 값이 오르기 전에 은행에서 미리 출금해서 봉투를 6개 만들어놨었는데, 그때 생각하길 마지막 방세를 내는 날이 올까? 기분이 어떨까? 생각했는데. 그날은 속절없이 오고야 말았다.


이 집을 만난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나에게 행운이었다. 뷰잉 한번 만에 마음씨 좋은 집주인 부부와 쿵짝이 맞는 플랏 메이트를 만나서 6개월 동안 집 문제로 곯머리 썩는 일이 없었고, 바깥에서 놀다가도 여행을 가서도 집에 빨리 가서 뭐뭐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뜻했던 우리 집.



내 방 침대에 누우면 매일 아침 보이던 파란 하늘,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바람, 집 앞 큰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는 게 참 이뻤던 내 방 큰 창문, 열쇠를 두 번 돌려야 열리는 우리 집 현관문, 집 바깥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 워털루 역에서 기차가 출발할 때마다 들리는 레일에 기차가 끌리는 소리, 매 시간 정각마다 바람에 실려오는 빅벤의 타종 소리. 사람들이 붐비는 게 좋았던 워털루역, 걸어서 오분이면 닿을 수 있었던 런던아이와 빅벤 그리고 집에 오려면 꼭 거쳐야 했던 템즈강변, 분홍색 노을이 예쁘던 우리 동네. 


좁았지만 즐겁게 요리하던 주방, 오후 7시쯤이면 퇴근해서 돌아 올 플랏 메이트와 집주인 언니의 발소리를 기다리고, 밤이면 내 방에서 감자칩을 안주삼아 예술에 지식 많은 플랏 메이트가 골라주던 영화를 보면서 나도 공부하고, 감성 자극도 받고. 거실이 없어서 항상 현관 앞 신발장 옆에 서서 집주인 언니, 나, 플랏 메이트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고받던 서로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



가끔은 런던에 정착한 집주인 언니를 보면서, 런던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플랏 메이트를 보면서 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알아갈 땐, 내가 누리고 있는 한국에서의 삶이 소중하고, 편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때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우리 가족들과 보낸 시간보다 이 짧은 시간 만났던 가족들과의 시간이 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시간들.


런던이 나에게 준 또 다른 축복은 바로 워털루 우리 집,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에 꼭 다시 돌아오겠노라 말했고, 그것은 어느새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 되었다.


" J. 방 보증금 언제 줄까? 미리 줄까?"


"언니 절대 안 돼요!! 나 떠나는 그날 주세요. 

그 돈으로 크리스마스 때 올 비행기 표 살거에요.그전에 주면 다 써버릴지 몰라요."


2017년 12월 23일. 나는 런던을 떠난 지 두 달 만에 다시 워털루 우리 집을 찾았다.


내가 6개월 동안 살던 방은 이제 집주인 언니 부부의 옷방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큰 창문은 그대로다. 두 달이 2년 같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내 원래 쭉 살았던 것처럼 편해졌던 우리 집.


런던에, 내가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나를 반겨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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