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ARANTH Dec 08. 2018

지구 반대편 나의 선생님, 나의 친구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선생님을 좋아해 본 적은 없었는데, 어학원에서 한 달이 지나고 레벨이 바뀌어 

선생님도 바뀌었는데 그때부터 어학원에 가는 것이 전보다 더 기다려졌다.


내 눈엔 훈훈하고, 푸근하고, 인자한 선생님. 수업시간에도 그의 목소리와 영국식 발음에 푹 빠져서 똘망똘망 눈을 반짝이며 격하게 반응하면서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서  "Teacher"라고 부르면 "YES, Stupid student."라고 대답하시며, 자신은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이자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를 우리에게 전파하는 사람이고, 본업은 웹디자이너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에서는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무례할뿐더러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름을 부르기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그래, 한국 문화는 알지만, 그래도 여긴 런던이잖니?"라고 이야기하시던 선생님. 나이가 제법 있으셔서 "아빠 같아서 좋아요."라고 이야기하면 인상을 찡그리며 결혼도 안 한 남자에게 아빠라니!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동거 문화가 흔한 이곳에서 그가 와이프 대신 나의 여자 친구가~라고 이야기할 땐 나뿐만 아니라 유럽 친구들도 적응이 안되긴 했지만.



날씨 좋던 런던의 여름 어느 날, 학원에서 보트를 빌려서 크게 파티를 하던 날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검은색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멋진 구두를 신고 나타난 선생님.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 반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셨는데,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심을 가득 담아 푹 안겨보고, 그날 함께 찍은 사진 속 나의 모습을 본 플랏 메이트가 

"언니 눈에서 꿀 떨어져"라고 할 정도로 짝사랑 같은 것을 했던 나.


그는 실제로 수업도 정말 잘 이끌었다.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들도 입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 선생님 너무 좋다고 칭찬을 했고, 급기야 런던에서 잘 나가는 우리나라의 축구선수 부모님의 영어 교습을 위해 개인 교사로 뽑혀 가기도 했다. 비록 선생님은 웨스트햄 팬이었지만 업을 위해선 토트넘을 포용하겠노라 하시며.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나의 영어 실력은 단시간에 상향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스스로가 이 레벨에서는 더 이상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선생님에게 레벨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도 없이 " J 너는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해. 그곳에서도 충분히 잘 해낼 거야!"라고 격려를 해주셨고,


내가 스피킹이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고 고민하니, 반 친구들 앞에서 특정 문법을 설명을 하고 이해시키라는 미션을 주시기도 했다. 수업을 하라는 숙제에 그 전날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 계기로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7월 나의 생일엔 친구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신 것도 모자라, 자신의 제2외국어인 스웨덴어로 노래를 불러주셔서 잊지 못할 생일의 추억을 만들어주셨다. 


또 한 번의 레벨을 변경하고 나서는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서 플랏 메이트와 함께 선물을 고르고, 카드를 손수 만들어 이벤트를 준비했다. 한 땀 한 땀 그동안의 고마움을 다 적기엔 선생님으로서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다 표현하기에는 모자랐지만, 선물을 받아 들고 놀라서 환하게 웃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선물 카드 만들기


그렇게 어학원에서의 15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내가 어학원을 떠날 시간이 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수업시간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선생님으로부터 파이널 리포트와 수료증을 받아 들 때도 마지막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의 리포트엔 구구절절 긴 선생님의 코멘트가 적혀있었다. 당장 읽어 보고 싶었지만 연애편지인 마냥 집에 돌아가서 혼자 읽어보고 싶었다. 나의 것은 왜 이렇게 긴 것이냐며 친구들의 시기 어린 질투를 받았을 땐 내가 그래도 특별한 제자였구나라는 생각에 내심 좋았다.


작별은 선생님이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따뜻하게 안아주실 때서야 실감이 났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땐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선생님과 헤어져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목표한 레벨로 마쳤다는 홀가분함과 정든 친구들과 헤어짐, 런던 생활의 한 페이지가 끝이 났다는 서운함 등 그동안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오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진 것만 같았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선생님은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셨고, 방황하던 그의 갈색 눈썹과 파란 눈동자는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가 가르쳐 준대로, 그에게 열심히 배운 만큼 구구절절 멋진 문장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가득 찬 눈물을 겨우 진정시키고 할 수 있었던 말은

 "당신은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었어요!"였다.



집으로 돌아와 집주인 언니와 플랏 메이트와 함께 파이널 리포트에 적힌 코멘트를 읽었다.

언니가 말하길 이건 정말로 신경 써서 써준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선생님에게도 내가 특별한 학생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짧게 머물다가 떠나고 한국인들처럼 정이 많지 않은 친구들 사이에서 수업시간마다 열심히 듣고 따라와 준 나를 그도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그래서 아마도 이건 그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이다. 


나를 가르친 건 당신에게 행운이었다는 것과 나의 미래에 많은 행운을 기원한다는 마지막 줄 코멘트는 정말 별말도 아닌데도 지금도 나를 눈물짓게 만든다.



선생님과 수업이 두 달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우리 반에 브라질에서 온 새로운 친구들이 왔다. 

둘은 부부였고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언니, 오빠였지만 우리들은 금세 친해졌고, 런던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공부에 대한 열정도 커서 셋이서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신문을 가지고 스터디도 하고, 좋은 공부 자료가 있으면 공유하고, 런던 유명 서점을 찾아다니며 하루 종일 여러 종류의 책을 접해보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녔다. 


내가 행복할 땐 나를 꼭 안아주며 내가 행복해 보여서 너무 좋다고 말해주기도 했고, 슬픈 일이 있으면 혼자서 울고 술 먹지 말고 언제든지 전화하라며 시내 나가서 같이 술 마시자고 이야기를 해주었고, 내가 독일 남자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을 땐 친여동생 생각하듯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누구보다 내가 런던에 온 이유를 제대로 이해했던 친구들이었기에 내가 런던에 온 본연의 이유를 잊고 한눈을 팔고 있다 싶으면 따끔하게 바로 잡아주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이었을 거다. 


친구들은 내가 돌아가기 전에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맛있는 빵집이 있으니 빵 좋아하는 나를 데리고 꼭 가고 싶다며 초대를 했다. 나도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고민을 했다. 브라질 친구 부부는 런던에 머문 시간이 5개월에 접어들었음에도 부부가 함께 찍은 제대로 된 사진이 없었다.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즐겨하는 것이 사진 찍기. 

작별 선물로 그들을 위해 스냅사진을 찍어 앨범을 만들어 선물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마지막 런던 나들이. 맛있는 빵도 실컷 먹고, 비틀즈가 걸었던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보고, 런던 곳곳을 누비면서 우리들의 추억을, 부부의 추억을 사진으로 하나 둘 남겼다. 


지나가던 길에 아기자기한 기념품 상점을 마주쳤다. 

바깥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내 손을 잡아 이끈다. 그리곤 나에게 액자 하나 들어 보여준다.



"FRIENDS FOREVER. NEVER APART. MAYBE IN DISTANCE. NEVER IN HEART."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져서 그 앞에서 그녀를 안고 펑펑 울었다. 친구도 같이 울기 시작했다. 서로 헤어지는 게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다. 런던이라는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이자 추억이었으니까. 


내 손을 꼭 잡고 그녀가 이야기했다.


" J. 내가 어학원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언제인 줄 알아? 너랑 조이스랑 빅토리아랑 이안 선생님 클래스에 있을 때, 그때 제일 많이 배웠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어. 너를 만나서 고마웠고 런던에서 행복한 시간 만들어줘서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런던이 이렇게 좋지 않았을 거야. 한국에 돌아가서도 네가 무엇을 하든 잘 될 거야. 하고 싶은 것하고, 살고 싶은 삶을 살아. 울지 마. 네가 우는 걸 보면 내 마음도 아파. 눈물 흘리는 일보다 행복한 일들만 너에게 가득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야! 우린 네가 런던 떠나는 날 공항에 같이 갈 거야! 작별인사는 그때 하는 거야 알았지?"


런던에 혼자 왔듯이, 떠나는 날도 이 많은 짐들과 추억을 다 들고 혼자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친구 부부 덕분에 런던을 떠나던 날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았다. 



내가 런던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런던 정착 초반에 만나서 떠날 때까지 인연을 이어온 선생님과 브라질 친구 부부. 

언어가 달라도, 완벽한 영어가 아니라도 사람이기에 서로가 진심이라면 우린 감정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6개월이란 시간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에서처럼 나의 소소한 일상과 인생 고민을 공유하고 편하게 가족처럼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고,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언젠가 우리 집 플랏 메이트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 런던에서 너무 좋은 사람들만 만난 거 같아."


"그건 언니가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장소와 좋은 사람 모든 것이 공존한 거야. 

그게 언니 본연의 모습인 거야."



2018년 7월 내 생일 즈음에. 우편함에 런던에서 날아온 카드가 도착해있다. 

파리에 사는 친구 E가 런던이 너무 좋아서 올해 여름 다시 그 어학원으로 돌아갔었다.

내 생일을 잊지 않았던 그녀는 내 사랑 그 선생님을 찾아가 곧 내 생일이니 한마디 적어달라고 했더란다.


"J.  이안한테 너 생일 축하한다고 써달랬더니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글자를 적어줬어. 

그가 왜 그랬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어쨌든 생일 축하해!"


하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그의 제2외국어인 스웨덴어였다.


생일날 아침. 한창 회사에서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영상통화가 울렸다. 

브라질 친구 부부였다.


"나 지금 회의 중이야! 나중에 전화할게!"


" J! 너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려고 전화했어! 생일 축하해!"


런던에서 맞이했던 서른 번째 생일도, 

일 년이 지난 한국에서 맞이하는 서른한 번째 생일도,


지구 반대편 나의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