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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Jul 01. 2019

9급 땐 동이 싫었어

<부서진 직장생활의 로망>


스물두 살의 임용 시험도 미역국만 실컷 마시고, 하반기에 머리도 식힐 겸 지역의 아주 큰 국제 행사의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기로 했었다. 당시 발대식을 시청에서 했는데, 그때 시청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했던 생각을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나도 크고 높은 천장을 가진 건물,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목엔 공무원증을 걸고 보안 출입구를 지나는 장면을 보며, 언젠가 나도 이 건물에서 저렇게 멋지게 차려 입고 일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칸막이가 있는 모던한 느낌의 책상에 내가 좋아하는 사무용품을 한가득 올려놓고, 나만의 공간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직장생활에 대한 로망이었다.


하지만 로망은 로망일 뿐. 합격을 하고 나니 시청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방 일반 행정직은 소속 구청을 배정받는 순간부터 그 구에서 퇴직할 때까지 있어야 한다. 시청이나 행정안전부 등 상급 기관으로 가려면 전입 시험이라는 것을 쳐야 했고, 그 마저도 8급이 되고 나서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야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에는 내가 자발적으로 전입 시험이나, 인사교류를 신청하지 않는 이상 정년 때까지 구청과 동주민센터(현재는 행정복지센터라 부름)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9급에겐 구청도 그림의 떡이다. 지자체 별로 다르지만 대부분의 9급 행정직은 동주민센터로 첫 발령을 받게 되고, 8급 승진 전까지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출근 첫날. 나와 16명의 동기는 구청에 들려 마지막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그리고 동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 담당자를 따라나섰다. 구청 앞에 주차되어있던 낡은 파란색 1톤 포터(이것을 동차라 부른다.)를 타고 동으로 향했다. 첫날이라고 예쁘게 머리도 하고, 정장도 차려입고, 구두도 신었는데 이 낡은 동차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몇 분을 달려 도착한 동 주민센터. 나의 오랜 로망이었던 시청 건물과는 턱없이 대비되는 곳이었다. 작고 낡았고 내부는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칸막이가 있는 모던한 책상 대신 다 낡아서 내려앉은 나무 서랍 책상, 얼마나 중요한 걸 넣어 놓는 건지 그 낡은 서랍 앞에 커다랗게 달려있는 분홍색 철제 자물쇠, 책상 위는 온갖 편람과 법령집 그리고 민원서류 서식으로 가득 차 키보드 하나 겨우 놓을 공간이었고, 처음 보는 모니터 본체 일체형 컴퓨터,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전기선들, 사방을 둘러싼 복사기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고대 서류 가득한 모빌렉. 말 그대로 어수선하고 전쟁터 같은 이곳이 나의 첫 직장이라니. 그냥 믿고 싶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오래된 청사들이 리모델링을 하고 내구연한 지난 집기들을 교체해서 요즘은 한결 좋아졌다.)



<현타>


나의 첫 업무는 인감증명서 발급이었고, 동기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업무이거나 등초본 발급을 맡았다. 동 주민센터의 업무분장은 그 동의 인구수에 따라 공무원 숫자가 달라지며 그에 따라 업무 분장도 조금씩 다르다.


보통 동 주민센터에 가면 앞에 앉은 주민등록팀(앞 다이라 부른다.) 그리고 칸막이 뒤에 앉아있는 일반 행정팀(뒷 다이라 부른다.)과 복지팀으로 나뉜다.


업무는 일반 행정직이 하는 것만 큰 단위로 구분해본다면 주민등록팀에서 9급은 등초본 인감, 8급은 전입신고, 선임 8급과 7급의 경우에는 주민등록증, 출생 사망 업무를 보게 된다. 이것도 요즘은 통합민원제도를 채택하는 동이 많아서 구분이 무의미하기도 하다.


일반 행정팀은 구에서 시달되는 공문을 주로 처리하고, 동 자체 일반 사무를 전담한다. 8급은 서무회계와 통반장 관리 그리고 환경정비(라 쓰고 허드렛일이라 부른다.)와 새마을단체 관리, 7급은 주민자치 업무와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담당한다. 요즘은 행정복지센터로 명칭이 바뀌고 복지 기능이 강화되면서 복지직도 굉장히 동에 많이 배치가 된다. 겉으로 보기엔 연차에 따라 아주 합리적으로 배분이 된 업무 분장이지만 임용 초반 9급 신규들의 현타는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임용될 당시 우리 동기 중에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사표를 썼다. 나름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고 스스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동 주민센터에 앉아서 민원인으로부터 온갖 폭언을 들어가며 단순 반복된 업무를 하는 것에서 자괴감이 온 것이었다. 인사팀에서는 언니에게 한 달만 더 참아보라며 달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언니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사표는 수리되었다.


복지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8급 때 함께 일하던 복지직 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도 6개월 정도를 일하고 나서 사표를 냈다. 본래 복지관에서 일을 하다가 복지직 시험을 치고 공직에 입문했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복지와 너무 다르고 민원 강도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죽하면 버스에서 내려서 사무실이 보이기 시작하면 숨이 막혀서 도저히 출근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복지관에서는 복지사님이라 불리며 그래도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나면 보람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니 까짓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다짜고짜 생계비를 내어놓으라는 사람들에게서 매일매일 욕만 배불리 먹고 회의감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임용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우리가 정말 이러려고 여기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업무에 필요한 건 창의력도 아니고, 대단한 기술과 지식을 요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속 정확하게 법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 눈앞에 있는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공부했던 국어, 영어, 국사, 행정학, 행정법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었다. 가끔씩 법에 규정하는 대로 집행하다가도 안 되는 걸 요구하는 민원과 부딪힐 때는 욕을 먹을 준비와 자존심 상해도 견딜 멘탈이 필요했다.


하루는 배우자 인감을 대리로 발급하러 온 민원인이 있었다. 그런데 대리 발급의 필수 요건인 배우자의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나는 발급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분은 계속해서 발급을 요구했고, 정 배우자 신분증이 필요하면 나보고 직접 배우자를 찾아가서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요즘 은행을 가도 고객님, 고객님 하고 직원들이 고개를 조아리는데, 니 까짓 공무원이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군림하려고 들어?"


그 당시엔 그래도 어렸던 나로서는 정말 충격적인 한마디였다. 어디에서도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충격은 두 배로 다가왔다. 법에 규정된 대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는 것인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고 저런 말까지 들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깥에서 만났으면 욕이라도 실컷 할 수 있겠지만 무작정 듣고 있어야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동 사무장님이 직접 그분의 배우자를 만나러 직장을 찾아가 신분증을 받아와서 해결이 되었다. 그땐 그렇게 해결된 게 너무 억울하고 분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해진 규정대로 업무를 처리하려 했던 나의 뚝심을 존중해주면서 민원인의 요구사항일 해결해주시려 했던 사무장님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친한 동기는 이해관계인 초본을 발급받으려는 신용정보 회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난 직원이 사무실 유리창을 깨고, 동기를 위협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나기도 했다. 40대의 아이 둘의 엄마인 동기는, 사실조사를 위해 세대 방문을 했다가 반려견이 달려들어 팔을 물리는 웃픈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였다. 나는 살면서 동 주민센터를 딱 두 번 밖에 방문한 적이 없는데, 매일 같이 평균 방문객이 100명 가까이인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주민등록서류는 왜 그렇게 종류가 많고, 발급 사례도 다양하고 공부해야 할 게 많은지 업무 익히느라 법령 공부하랴 하루는 정말 빨리도 흘러갔다. 6시가 되어 동사의 셔터를 내리고 나면, 산 떠 미처럼 쌓인 전입자 인감대장과 신규 인감대장에 주소 도장을 찍는 작업을 했다. 잘못 발급된 서류의 수입증지를 오려서 결손 처리하고, 수입 결산 대장에 풀로 붙이고 앉아있노라면 퇴근하시던 사무장님이 "집에 안 가고 공작 시간 하니?"라고 묻기도 하셨다.


그리고 신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선임들 눈치 보랴, 말 한마디 잘못하면 실시간 인터넷을 통해 옆 동은 물론 구청까지 전파되는 신규 직원 미담사례에 이름을 올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움츠렸고, 공무원은 9시부터 6시까지라고 들었는데, 신규는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해야 적당한 시간인지, 선임들은 편하게 입고 다니는데 신규도 그렇게 입고 다녀도 되는지 그런 쓸데없는 고민도 참 심각하게 했다.


눈치를 많이 보다 보니 신규 때 의지 할 곳은 동기들뿐이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임에게 물었다가 혼날까 봐 동기에게 슬쩍 전화를 해서 너는 어찌 해결했냐 묻기도 하고, 한 달에 한번 모임을 하면 자기네 동 민원이 평균 몇 명이고 증지 수입이 얼마라며 서로 누가 더 많이 일하는지 겨루기도 하고, 선임들 흉을 보고, 각 동의 뒷 다이 문화에 대해 비교를 하는 것이 낙이었다.



<앞 다이의 서러움>


동 주민센터에만 존재하는 ‘앞 다이 뒷 다이 문화’도 사실 참 웃픈 것이다. 요즘은 앞 뒤 구분 없이 교대조만 남겨두고 점심도 함께 먹는 문화가 많아졌지만, 당시엔 철저히 점심도 앞 다이는 앞 다이끼리, 뒷 다이는 뒷 다이끼리 먹는 문화였다.


앞 다이에 아무리 민원인이 밀려있고, 큰 소리가 나도 어지간해서 뒷 다이에 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에 행사가 있어서 뒷 다이가 바쁘게 뛰어다녀도 앞 다이에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동장과 사무장을 모시는 것은 뒷 다이의 몫이고, 앞 다이는 민원업무만 끝나면 퇴근할 수 있지만, 뒷 다이는 밤에 회의가 있는 경우가 꽤 많고 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정시 퇴근이 쉽지는 않았다.


동에서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본래는 네 명이서 민원 업무를 보다가 출산 휴가로 한 명이 공석, 그날 하루 연가를 낸 직원이 있어 두 명이서 업무를 보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방문 민원이 두 배로 폭증해서 점심시간이 왔음에도 도저히 교대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점심도 거른 채 숨넘어갈 정도로 민원을 처리했다. 뒷 다이는 진즉에 12시가 되자마자 "아이고~ 오늘 사람 많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었는데, 그 당시 공공기관 에너지 절감 정책으로 더워도 에어컨을 틀 수 없는 제도가 시행 중이었다.


배는 고프고 땀은 뻘뻘 흐르고, 눈앞에 민원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덥다고 아우성치거나 자기 순서는 도대체 언제 오냐고 항의하는 사람들 속에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에어컨 스위치를 켰더랬다. 본래 에어컨은 뒷 다이 서무만이 조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일단 저지르고 보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나 뒷 다이가 돌아왔다. 서무는 사무실에 들어서 마자 "누가 허락 없이 에어컨 들었어?"라며 바로 에어컨을 꺼버렸다. 자기네들은 시원한 식당에서 배부르게 밥 먹고 들어와서는, 눈앞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에어컨을 꺼버리는 행동이 여간 얄미운 게 아니었다. 이래서 더러우면 승진하고 출세해라는 말이 몸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9급 때는 그렇게 앞 다이에 앉아서 민원서류 발급하는 게 싫었고, 뒷 다이에 앉아서 나도 제대로 된 기안문과 보고서를 써보고 결재도 받아보고 그런 직장인이 하는 "일"같은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9급~8급 때는 앞 다이 탈출을 위해 인사가 날 때마다 호시탐탐 뒷 다이로 갈 수 있나 없나를 노리는 신규들이 제법 많다. 물론 상부 기관으로 떠나는 시기도 민원 업무를 보는 9급~8급 때 가장 많다.



<9급땐 동이 싫었지만...>


10년의 세월을 조직에서 보내면서 네 곳의 동을 거쳤다. 승진을 하면 자동적으로 동에 다녀와야 하는 시스템이기에 주민등록부터 민방위, 환경정비, 서무회계, 주민자치까지 행정직이 하는 업무는 다 경험을 해보았다. 동별 주민 특성과 지역 규모에 따라 업무 강도가 다르긴 했고, 뒷 다이에 있느냐 앞 다이에 있느냐에 따라 응대하는 민원인의 종류도 달랐다. 그렇지만 몇 년을 주기로 동에 갈 때마다 느낀 것은 민원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진 다는 것이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조금 더 융통성 있게 민원 편의를 봐드리려고 했고, 나이 든 어르신들과는 서류가 발급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잔뜩 성이 난 민원을 달래거나 거기에 맞게 대응하는 눈치도 제법 늘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동기들과 우스갯소리로 9급 때 민원 보던 시절이 좋았지 하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당시엔 이 짓하려고 들어왔냐는 회의감에 시달리던 업무였는데, 이제 짬도 쌓였고, 바뀐 법령만 숙지하면 되는 것이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고, 상사 눈치를 덜 보고, 무엇보다 민원인을 마주하는 것이 이제는 불편하지 않기에 이만한 업무가 없다.


지방행정직 공무원은 행정의 최일선에서 주민과 마주하는 것이 주 임무이다. 그래서 동을 벗어난다고 해서 각종 민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구청에 오게 되면 단순 서류 발급에서 벗어나 조금 더 큰 행정 범위의 민원사항을 마주하게 된다. 그 민원은 담당자 선에서 끝이 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여러 부서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9급 때 동에서 하던 일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주민등록업무가 특정 부서에 발령받지 않는 이상 크게 도움이 될 업무는 아니다. 하지만 그때 다양한 사례의 민원을 처리하면서 만든 내공은 공직생활에서 계속해서 만나게 될 민원 응대에 훌륭한 자산이 된다. 또한 동 마다 다른 지역 특성을 경험하는 것은 앞으로 구청에서 더 큰 업무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정말 기초적인 지식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시간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동의 실정을 알고 일을 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정말 크다.


여전히 좋은 스펙의 인재들이 9급 공무원으로 들어오는 시대이다. 내가 속한 구청에도, 지방직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연고대는 물론 in 서울 출신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직원도 있다. 이중에는 행정고시부터 시작해서 7급도 잘 안 돼서, 9급까지 오게 된 사연도 있고, 사기업을 다니다가 워라벨을 찾아 뒤늦게 공무원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출신 배경이 다르기에 업무에 대한 만족도도 다르고, 생각했던 공무원 생활과 같거나 다르기도 하다. 출신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의 시작은 9급이고, 행정의 최일선인 동으로 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계절에 의미가 있듯, 세상 모든 일이 계절처럼 변해가 듯이, 공직의 여러 계절 속 동에서 보내는 9급의 계절도 분명 필요한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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